기쁜소식선교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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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소식선교회가 전하는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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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온 세상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다. 그래서 선교회에서는 ‘어떻게 죄인이 그 모든 죄를 온전히 씻음 받아 의롭고 거룩해질 수 있는가?’하는 복음을 전하는 것을 가장 큰 사명으로 삼고 있다. 또한, 자신에 대한 모든 기대를 버리고, 전적으로 그분의 구원의 손길만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 참된 회개에 이른 사람이며 이런 분들에게 성경에서 약속하신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단번에 우리의 모든 죄를 영원히 사하셨다’는 이 약속을 믿고 전하고 있다.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

성경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성경의 주제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과 부활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하늘나라에 갈 수 있게 해준 은혜의 복음(福音)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기록된 구약성경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에 기록된 신약성경은 구약에 예언된 대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는데, 모든 성경의 정점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분명하게 서 있다.

물론 성경에는 천지와 인간의 창조, 노아의 홍수,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나 예언, 표적이나 종말, 천사, 사후의 세계, 사랑과 소망, 축복과 은혜 등에 대한 말씀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통틀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음은, 사단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을 영원한 저주와 멸망에서 구원하시려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그들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어주심으로써 그들의 죄 값을 온전히 치르시고, 의롭게 해주신 은혜와 사랑의 기쁜 소식이다. 그래서 이 복음은 하나님을 떠나 죄에 빠진 인간들을 사랑하사 그들을 용서하시고 멸망에서 구원하시려고 그들을 찾도록 찾아다니시는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과 참된 은혜를 증거하는 복된 소식인 것이다. 그 은혜와 사랑의 정점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라는 이름의 성경적 의미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보면 ‘예수’라는 이름의 의미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이다. 이 이름 속에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근본적인 목적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요일2:12)

예수님께서 오신 근본적인 목적은 죄로 말미암아 저주와 멸망을 받아야 할 우리 영혼을 그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다.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요일3:5)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요일4:9)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의 죄를 사함 받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것이다.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눅1:77)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주시려는 구원, 성경이 약속한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가 생각하는 구원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2. 구원(救援)

‘구원받았다(salvation)’는 말 자체의 의미는 어디엔가 스스로는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빠져 있는 사람(피구원자)이 전적으로 구원자의 손길로 말미암아 건짐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 영혼을 죄에서 구원하실 구원자로 오셨다. 만일 인간이 무엇을 해서 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에겐 굳이 구원이 필요 없다. 또한 구원자도 필요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분명히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라고 말씀하신 것은, 어떤 인간도 스스로의 노력이나 수고로는 결코 죄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 없는 인생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구원은 전적으로 구원자에게 달린 것이므로 피구원자의 행위나 노력은 전혀 필요치 않다. 전적으로 구원자의 수고로 말미암기 때문에 이것은 온전한 은혜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에서 십자가의 강도나 누가복음 10장의 강도 만난 자, 요한복음 8장의 간음 중에 잡힌 여자나 요한복음 5장의 38년 된 병자가 구원받는 마음의 위치를 보면 피구원자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위치, 다만 하나님의 온전한 은혜와 긍휼밖에 바라고 의지할 수 없는 위치에 도달했을 때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찾아오시고 구원의 은혜가 임하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구원을 받은 사람은 구원받기 전과 같은 모습, 같은 상태로 있을 수가 없다. 물에 빠진 사람이 물에서 건짐을 받고 나면 물 밖으로 나와 안전한 곳에 있게 되듯이, 예수님이 정확하게 자기를 죄에서 건져주신 사실이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죄 가운데 빠져 있을 수 없고, 죄에서 벗어나게 된다. 죄에서 건짐을 받고, 죄에서 벗어나 죄와 상관없는 상태에 도달한 사람이 구원을 받은 사람이므로, 아직 마음이 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죄에 빠져 있고 죄에 얽매여 있는 사람은 당연히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다. 그러므로 ‘(죄에서) 구원받은 죄인’이란 말은 ‘물에서 건짐 받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에 빠져 있는 사람’이라는 말처럼 이치에 합하지 않는 말이다. 죄 가운데 빠져 있는 죄인은 구원을 받아야 할 사람이고, 죄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은 모든 죄에서 벗어나 죄와 상관없는 의인의 위치로 옮겨진 사람이다. 죄인이 천국에 가는가, 의인이 천국에 가는가? 당연히 의인이 천국에 간다. 성경에 누가 죄 사함을 받아 의롭게 되지도 못한 채 죄를 가지고 그 거룩한 나라에 간 사람이 있는가?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마13:43)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마25:4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히7:26)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호14:9)

 

그래서 우리 선교회는 ‘어떻게 죄인이 그 모든 죄를 온전히 씻음 받아 의롭고 거룩해질 수 있는가?’하는 복음을 전하는 것을 가장 큰 사명으로 삼고 있다. 그럼 이제 우리가 어떻게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지를 성경에서 살펴보자.

 

 

3. 죄와 회개

성경은 우리 인류가 죄인이 된 것은, 우리 개개인이 출생 후에 범한 죄 때문에 죄인이 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든 인간이 사단의 음성을 듣고 사단에게 속아 하나님을 떠나버린 첫 사람 아담 안에서 출생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담과 하와가 사단이 넣어주는 거짓된 음성과 생각을 받아들인 것은 그들 안에 속해 있는 온 인류에게도 동일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롬5:12)

“한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롬5:15)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롬5:16)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롬5:19)

 

우리 모든 인간은 다 아담 안에서 나왔고, 아담 안에 속해 있기 때문에, 한 사람 아담의 운명 안에 모든 인류의 운명이 들어 있었고, 한 사람 아담의 불순종 안에 온 인류의 불순종이 들어 있었다. 사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당시에는 전 지구 위의 모든 인류는 모두 2명이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한 몸이었다. 그러므로 아담의 범죄는 온 인류의 범죄였으며,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한 것은 온 인류가 하나님을 불신한 것이었고, 아담이 하나님을 떠난 것은 온 인류가 하나님을 떠난 것이었으며, 아담에게 사망이 온 것은 전 인류에게 사망이 선고된 것이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고전15:22)

 

그래서 이 한 사람 안에 속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는 온 인류의 죄를 담당할 한 사람의 구원자, 죄 없는 한 사람의 대속이 필요했고, 하나님은 그 구원자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한 사람의 죄를 해결하는 데는 한 사람의 죽음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고, 한 사람 안에 속한 죄를 해결하는 데는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완벽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 모든 인간은 이렇게 하나님을 떠나 범죄한 아담, 사단에게 속아 그의 종이 되어버린 아담 안에서 출생했기 때문에 우리의 후천적 행위와 상관없이 아담과 동일한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말하자면 우리는 아담호 열차를 탄 승객인 것이다. 그래서 아담의 운명은 아담 안에 있는 나의 운명이 되었다. 이제 아담이 자기 영혼을 죽인 영혼의 살인자 마귀의 자식이 되었을 때, 아담 안에 있는 우리 모두는 마귀의 자식으로 출생했고, 사망과 저주 아래 있게 된 것이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나니,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요8:44)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51:5)

 

우리가 우리의 몇몇 가지 잘못한 행위를 고치고 회개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근본적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역설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을 떠나 마귀의 종이 되어버린 아담 안에서 태어났고, 죄와 허물로 죽었기 때문에(엡2:1), 행위를 개선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그러한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정확하게 발견하고 자신의 길에서 돌아서야 한다. 자기의 소속과 신분, 자기 영혼의 주인이 누구였는지를 밝히 깨달아야 진정한 회개가 되어지면서 간절히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가 죄로 말미암아 이미 사망이 확정된 자임을 안다면, 그에게 필요한 것은 그의 행위나 노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과 긍휼임을 깨닫게 된다. 마음에 사망이 오지 않은 사람은 여전히 자신의 행위와 노력에 기대를 두며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힘쓴다. 그러나 마음에 사망이 선고되고, 그 심령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망이 임한 사람은 그의 모든 수고와 노력이 전적으로 무익하며, 이제 그가 기대할 것은 자기 자신의 노력이나 선한 행위가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마음 안에 있는 값없는 은혜와 긍휼뿐인 것이다. 이것이 회개의 시작이다. 재판장의 판결이 선고되기 전이나 형(刑)이 확정되기 전에는 죄인의 수고나 노력이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이미 최종 판결에서 사형이 선고된 사람이라면 그의 노력이나 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제는 그의 행위가 자기의 운명과 생명에 전혀 유익을 줄 수 없는 것이며, 이미 확정된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그런 상태에 있는 자기 영혼의 모습을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입혀 주시는 값없는 은혜와 긍휼 외에는 다른 구원의 길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에만 전적인 기대를 두게 되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모든 기대를 버리고, 전적으로 그분의 구원의 손길만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한없이 낮아지고 가난해지게 된다. 이런 사람이 참으로 회개한 사람이다.

 

4. 율법을 주신 목적

그런데 인간들이 이러한 자기의 모습을 깨닫지 못하고, 마음을 낮추어 하나님의 은혜 앞으로 나아오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이 바로 율법(律法)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율법을 오해하여 율법을 잘 지켜나가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에 이르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율법을 잘 지켜 나가려는 노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참 마음을 발견하는 일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이 율법을 지킬 수 있는지 없는지,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분명하게 모르고, 막연하게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다 실패하고, 또 율법을 지켜보려고 도전하다가 실패하는 삶을 거듭하고 있다. 사실 십계명을 비롯한 여러 율법들은 우리가 지킬 수 있는 법이 아니며, 하나님은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게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계신다.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갈3:11)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요7:19)

 

사도 바울은 로마서 3:20이나 28절 등에서도 우리가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우리가 지키지도 못할 율법을 주고 지키라 하셨는가? 사실 모든 인간은 율법이 내려오기 전부터 이미 하나님을 떠나 영적으로 죽어버린 아담 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의 행위는 이미 사망 안에 있는 우리를 의롭게 하는 데는 전혀 무익하다. 율법이 내려오기 전부터 인간들은 이미 사단에게 속한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들의 행위와 상관없이 이미 저주 아래 있게 되었고, 멸망의 길에 서 있었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자신들의 모습을 모르고 있었다. 바로 그러한 인간들의 모습과 상태를 비추어 주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해 내려온 법이 율법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은 ‘우리가 악하고 죄가 많으니까 하나님께서 이 율법(계명)을 잘 지켜 점점 선한 사람이 되어 구원받으라고 주셨겠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율법은 악한 우리를 선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기 위해 내려온 법이 아니라, 사망 아래 있는 우리의 모습을 비추어 주기 위해 내려온 법이다. 율법은 ‘지켜서 의롭게 되고, 행하여 구원에 이르라’고 주신 법이 아니라, ‘지켜보면 너는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죄인이요, 연약한 인간임을 깨달으라.’고 주신 법이다. 율법은 우리를 의에 도달시켜 주는 법이 아니라, 우리의 의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이게 하는 법이다. 율법은 우리를 생명에 이르게 하는 법이 아니라, 사망 아래 있는 내 영혼의 상태를 가르쳐 주는 법이다. 이처럼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 율법을 주신 목적을 정확하게 이해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할 말이 없는 죄인이 되고,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긍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약속만을 의지하게 된다.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간음 중에 잡힌 여자는 마음이 그런 위치에 내려간 죄인이었다.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의가 선물로 주어진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남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3:21~22)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는 의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주어지는 이 하나님의 의를 증거하는 것이 참된 복음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롬1:17)

 

마르틴 루터도 바로 이 하나님의 의를 발견하면서 구원을 받았다. 은혜의 복음이 빠진 다른 모든 종교는 하나같이 ‘자기의 의(義)’를 세우라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참된 복음은 인간의 의를 버리고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이라고 하신다. 기독교 역사에 빛나는 위대한 그리스도인들, 훌륭한 복음 전도자들의 간증을 보면 하나같이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게 될 수 없고, 자기의 열심과 노력으로는 결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었다. 사도 바울이 증거한 로마서의 복음이 그렇지 않은가? 마르틴 루터가 “나는 참으로 경건한 수도사였고, 엄격하게 수도원의 규율을 지켰다. 나는 기도, 단식, 철야, 추위를 참는 일 등으로 고문 받는 듯한 괴로움을 겪었다. 만약 수도사가 자신의 행위와 노력으로 수도원에 들어갈 수가 있다면 나는 충분히 들어갔을 것이다.”라고 간증한 것처럼, 그는 자기의 의, 자기의 행위로는 결코 의롭게 될 수 없다는 분명한 자각이 온 사람이었다. 그 때 그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의’였고,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그 의(義)를 값없는 은혜로 그에게 주셨던 것이다. 루터는 그렇게 해서 구원을 받았다. 감리교회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나 찰스 스펄젼, 존 번연이나 존 뉴톤, 허드슨 테일러나 D. L. 무디 같은 복음 전도자들에게는 다 그러한 마음의 간증이 있다.

 

 

5. 율법과 복음

이 세상에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모든 사람은 율법을 범했다. 그래서 율법의 저주와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율법은 사람들에게 두 가지 요구하는 것이 있다. 율법의 첫 번째 요구는 ‘온전히 다 지켜라. 그러면 너는 의롭게 되고, 영생을 얻게 될 것이다.’라는 것이다. 율법의 두 번째 요구는 ‘만일 네가 모든 율법 중에서 단 한 가지라도 어기면 반드시 저주를 받고, 그 죄의 대가로 사망을 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율법의 첫 번째 요구를 이루어 줄 수 없다. 그래서 두 번째 요구에 따라 저주와 형벌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의 두 번째 요구에 따라 심판을 받고 사망을 당하게 되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당연히 율법을 어긴 죄의 대가로 죽어 지옥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저주를 받고 영원한 멸망에 떨어지는 것을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 우리 영혼을 사랑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무서운 저주와 영원한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해 주시려고 보내신 구원자가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우리가 받아야 할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갈3:13)

 

흠도 없고 점도 없는 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벌레 같은 우리 인간들의 죄 값을 갚아 주시고,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온전히 받아주신 사건이 바로 십자가의 죽음이었다. 우리가 지킬 수 없는 율법의 저주를 대신 받으시기 위해, 우리가 못 박혀야 할 그 부끄러운 십자가에 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못박혀 주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이제 우리 죄의 삯은 완벽하게 지불되었으며, 율법의 저주는 영원히 끝이 났다. 이로써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영원한 사랑이 확증된 것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롬5:8~9)

 

그래서 우리는 모든 죄와 저주에서 온전히 해방되어 의롭게 되고, 영생을 얻은 것이다. 그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 값을 온전히 갚아버린 분명한 영수증이며,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자에게는 천국의 문이 열려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義)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10:4)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롬8:3~4)

 

그리스도는 온 인류의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으로써 율법의 모든 요구를 온전히 이루셨고, 이제 우리는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은 은혜 아래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전한 것은 바로 이 은혜의 복음이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 예수 그리스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13:38~39)

 

이 복음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율법주의자들은 언제나 바울과 같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율법을 폐한다고 비방하며 이단으로 정죄했다.

율법은 우리가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율법의 요구는 그리스도만이 이루실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가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 보려고 애를 쓰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이룰 수 없는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 주심으로써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신 것이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2:16)

 

6. 영원한 속죄 제사

하나님은 구약 성경에서도 이 복음을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증거해 오셨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히1:1~2)

 

그 대표적인 예가 레위기 4장에 나오는 구약 시대의 여러 속죄 제사에 관한 규례들이다. 구약 시대의 속죄 제사에 있어서도 어떤 죄든지 그 죄를 사함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율법을 어겨 범죄한 인간이 죄를 깨닫고 자기의 죄 값으로 피를 흘리고 대신 생명을 버려줄 흠 없는 대속물을 의지하여 제사장 앞에 나아가, 그 죄를 대속물의 머리에 안수하여 그 죄를 담당시키고, 그 대속물의 피로써 죄를 사함받았다. 구약 시대에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게 되는 이 흠 없는 양이나 염소 같은 대속물은 장차 온 인류의 죄 값으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레위기 16장에서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죄를 사함받기 위해 드리는 제사에서도 반드시 흠 없는 대속물에게 그 죄를 넘겨주어 피 흘림과 죽음을 통해 죄가 사해졌다. 이 모든 속죄제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흠 없는 대속물로 오셔서 그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영원히 사하실 것에 대한 그림자였다.

 

“율법은 장치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아니므로”(히10:1)

 

그림자가 있으면 실물이 있게 마련이고, 모형이 있으면 실체가 있다. 구약 시대의 속죄제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에 대한 모형과 그림자라면, 참형상과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의롭게 되어 영생을 얻게 되는 이 복음(福音)이다. 구약 시대의 속죄제는 우리의 죄를 근본적으로 사해 주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루어질 영원한 속죄를 깨닫게 하는 데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 시대의 속죄제에서처럼 그 때 그 때 범한 죄를 사하기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 아담 안에 속해 있는 전 인류의 모든 죄, 온 세상의 모든 죄를 남김없이 담당하시고 그 죄 값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우리의 영원히 죄를 사하기 위해 당신의 모든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으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신 뒤 돌아가셨다. 주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것은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었다. 인류의 죄를 사하는 일을 다 이루었다. 우리의 모든 죄값을 다 갚았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죄가 없는 의인으로 거듭났으며,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났고,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의 세계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는 화목되었고, 하나가 되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6:14)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1:7)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그래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약속하셨다.

 

“또 저희 죄와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히 10:17~18)

 

이제 다시는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흘리신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영원히 씻어주셨다. 성경이 분명히 증거하는 대로 모든 죄가 영원히 사해졌고, 죄에 대한 심판이 완전히 끝났기 때문에 사망도 끝이 났고, 우리는 값없는 은혜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이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2)

 

우리는 성경에서 약속하신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단번에 우리의 모든 죄를 영원히 사하셨다는 이 약속을 믿고 전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선교회가 성경 그대로 전하는 구원의 복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