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3회] 박옥수 목사 6월 8일 영상교제 말씀

에스더 5 1절입니다.

 

제 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 뜰 곧 어전 맞은편에 서니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대하여 보좌에 앉았다가

 

에스더는 교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특히 에스더를 보면 교회에 관한 그림이 많이 나와 있는데 즉 교회, 그리스도의 신부, 여기 두 사람의 신부, 두 사람의 왕후의 이야기가 나오죠. 그런데 5 1절에서 에스더가 왕 앞에 나갈 때 어떤 마음으로 나갑니까? 유대인들이 다 죽게 되어 유대인들을 살리기 위하여 왕 앞에 금식하러 나가야 하는데 왕이 계신 그 어전에 아무나 들어갈 수 없고, 누구든지 들어갔다가 왕이 금홀을 내밀지 않으면 죽게 되는데 만일에 어전에 왕이 없고 왕이 다른 곳에 가 있으면 에스더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바로 죽임을 당하는 그런 두려움도 있고, 그 다음에 왕이 있다손 치더라도 금홀을 안 내밀면 어떡하지? 그러기 때문에 에스더가 삼일동안 금식한 것도 금식한 것이지만 왕의 은헤와 긍휼을 구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문을 열고 어전에 들어간 것입니다.

 

정말 감사한 것이 하나님께서 왕이 어디 앉아 있느냐 하면 어전에서 어전 문을 향하여 앉아 있기 때문에 문이 열릴 때 왕이 깜짝 놀라 누가 문을 열고 들어오지? 그냥 들어오면 죽는데 누구야? 왕비 에스더가 아니야? 에스더가 죽음을 무릅쓰고 오는 이유가 뭐지?’ 왕이 깜짝 놀라 너무 사랑스러운 왕비를 보고 금홀을 내미니까 에스더가 금홀 끝을 잡았습니다. 왕이 에스더에게 묻죠.

왕비 에스더여, 그대 소청이 무엇이뇨? 그대의 요구가 뭐뇨? 나라의 절반이라도 내가 줄지라

 고 했습니다.

 

5 1절에서 2, 3, 4절 이어지는 동안에 에스더의 마음에는 왕을 향한 마음, 말할 수 없는 긍휼과 은혜와 자비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은혜와 긍휼을 구하다가 정말 왕이 금홀을 내밀고 에스더가 금홀의 끝을 잡고 왕이 말하기를 왕비 에스더여, 그대 소청이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도 다 준다고 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 에스더 마음에는 말할 수 없는 감격과 기쁨과 감사가 넘쳐 흘렀습니다.

 

그런데 1장에서 와스디는 어떻게 했습니까? 와스디는 왕비가 됐는데 왕이 왕비의 옷을 입고, 면류관을 정제하고 아름다움을 보이라고 하니까 가기를 싫어해서 가지 아니하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똑같은 그리스도의 신부가 있는데 한 신부는 부자집 딸로 얼굴도 예쁘고 모든 데에 완벽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마음 한번 꺾을 일이 없이 모두 존경해 주고 위해 주고 사랑해 주었기 때문에 높은 마음을 가지고 왕비가 되어서 자기 마음대로 자기 뜻대로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와스디의 모양을 이 에스더는 정확하게 그렸고, 반대로 에스더는 포로로 잡혀와서 그 이스라엘에서 바벨론까지 포로로 오는 동안 걸어서 왔는데 엄마도 없고 아빠도 없고 친척들에 의해서 오면서 그 많은 길을 걸으면서 쓰러지고 고통하고 괴로워하고 슬퍼하다가 바벨론에 왔습니다. 와서 왕비가 되기 위하여 아하수에로 전 앞에 나갈 때까지 참 많은 생각에 눌리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가운데 있다가 왕비가 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어렵지만, 힘들지만 그 수많은 유대인의 목숨을 위하여 왕 앞에 나가야 하는데 자기 생명을 걸고 나가는데 긍휼과 은혜와 자비를 구하는 간절한 마음이 에스더 속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가지 신부의 모양을 보여주고 있는데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사는 삶 속에서 요즘처럼 평안하고 정말 요즘처럼 살기 좋은 시대가 어디에 있습니까? 사람들이 양식이 부족해서 밥을 굶습니까? 입을 옷이 없어서 걱정을 합니까? 좋은 아파트에 대부분 좋은 차에 아프리카나 다른 나라에 가보면 참 어렵게 사는 나라들이 많은데, 우리 교회 안에서도 정말 잘 삽니다. 그러기 때문에 에스더처럼 고생을 하고 어렵고 힘든게 아니라 와스디처럼 늘 남들에게 존경받고 대접받고 인정받는 사람이 되니까 왕 앞에 나갈 때 와스디는 정말 왕의 은혜나 긍휼을 구하는 마음이 전혀 없고 오히려 거만해서 왕이 오라고 해도 오지 않고 자기 삶 속에 빠진 와스디 모양을 볼 수 있는가 하면, 에스더는 정말 왕 앞에 긍휼과 자비를 얻기 위하여 왕 앞에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그 마음을 에스더는 정확하게 이 에스더 성경은 우리에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저희들 교회 성도들은 와스디가 많은가? 에스더가 많은가?

저희들 교회 성도들은 그렇고 나는 좀 어떤가? 여러분 저도 옛날에 저도 어려울 때가 있었습니다. 세월이 좋아지면서 제가 밥을 굶을 일이 없고, 여비 떨어져서 기도해야 할 일이 별로 없고, 그래도 억지로 여비를 길가에 던져버리고 기도할 수 도 없고, 그러면서 그냥 바쁘게 일을 하다 보면 내 마음도 편안한데 젖어서 하나님 오늘 여비를 주십시오. 오늘 하나님 양식을 주십시오. ‘ 그런 하나님을 구하는 애절함과 간절한 것 보다는 그냥 하나님 감사합니다.’ 식사하고 차 타고 다니고 그렇게 삽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일에 점점 서툴러져 가고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일에 서서히 와스디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을 많이 느끼곤 합니다. 그렇다고 당장 있는 것 다 버리고 그렇게 할 수도 없고 그런데 성경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은 정말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왜 로마시대때 교회가 그렇게 핍박을 받았으며, 유대시대때 그 교회가 핍박을 받았습니까? 어려웠지만 신앙에 도움이 되는데, 최근에 저희들을 비난하는 사람도 있고 또 거짓말로 저희들을 비방하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이런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우리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겠거니하고 심지어 형제, 자매들이나 저를 보는 눈빛이 곱지 않을 때 제가 참 곤욕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너무 감사한 것은 제가 오늘 강진과 광양에 다녀 왔는데, 참 곤욕스러운 일도 많이 겪어서 오면서 주님 앞에 너무 감사했습니다. 형제, 자매들이 모여서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감사했고, 차 안에 같이 왔던 전도사님 한 분이 아주 나이 어린 전도사님인데 제 아들 나이쯤 되는 전도사님인데 목사님 우리 찬송해요.” 차 안에서 목이 터져라 우리 셋이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나에게는 모르는 것, 못 가본 곳이 많아도 단 한가지 아는 것은 내 맘 속에 살아계신 주 하나님’.

찬송을 부르고 내가 믿고 또 의지하는 것은 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그런 찬송이 우리가 너무 너무 행복했습니다.

 

여러분 때때로 제가 형제들에게 이야기합니다. 나이가 들면 근육이, 점점 일을 안 하면 근육이 줄어 들어서 팔이 가늘어지고 다리가 가늘어 지는데, 저는 나이가 들기 때문에 하루에 몇 차례씩 틈이 있을 때 마다 안방에 맨손으로 운동을 합니다. 다리에 근육이 죽지 않도록, 팔에 근육이 죽지 않도록, 허리에 근육이 약해지면 허리 뼈가 상할 수 있으니까 허리 근육도 위해서 운동을 해주고, 목 근육도. 그래서 밥을 많이 먹는 것입니다.

 

신앙의 삶도 그냥 안일하고 평안히 사는 것보다 이런 어려움을 주면서 정말 에스더가 왕 앞에 나가는 자세하고 와스디가 왕 앞에 나가는 자세가 너무 다릅니다. 우리가 평안하고 인정을 받고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으며 와스디 모양으로 닮아가고, 낮고 겸비해지면 에스더 모양으로 닮아 가는데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어렵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지만 이러는 것이 더 싫은 것만은 아니라는 거지요.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로 말미암아 감옥에 갔을 때 얼마나 보디발의 아내를 원망했겠습니까? 얼마나 정말 불평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되는 것인데 예수님 안에 사는 우리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에 우리가 무슨 일을 만나든지 어떤 일을 당하든지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일들이 우리 속에 가득 가득 있다는 것을 말할 수가 있습니다.

 

에스더서에 두 왕비가 있습니다. 마음이 높아 자기 마음을 꺾지 못하고 자기 하는 고집대로만 해야 하는 왕비, 반대로 다른 한 왕비는 마음이 낮아져서 왕의 긍휼과 자비를 구해야만 하고 왕의 손길이 필요한 그 왕비,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어떤 왕비가 되어야 할 것을 에스더서는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다듬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 어려움도 주시고 고난도 주시는데 이런 은혜 가운데 거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할 때 참 감사 드리고 여러분, 주님이 때로는 고난을 줄 때 기뻐하십시오. 어려움을 줄 때 기뻐하십시오. 그리고 정말 주님이 우리를 이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그 마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달려나가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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