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장 19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저는 이번에 염주 체육관에서 38년 된 병자에 대한 말씀을 전했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 38년 된 병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38년 된 병자 그가 물이 동하는 걸 보고 물이 동할 때 먼저 들어가면 자기의 병이 낫는다는 걸 알면서도 들어갈 수가 없었고 움직일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 성경을 보니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 사람이 어떻게 자리를 들고 걸어갈 수가 있었습니까?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거지요.
그런데 요한복음 5장 1절에서 9절까지 사이에 38년 된 병자가 병 낫는 이야기가 나온 뒤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 속에서 예수님이 여러 번 “나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하는 그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 이야기가 병자의 이야기하고 너무 같은 거예요. 병자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고 더더우기 안식일이기 때문에 다 아무 일도 안하고 있는데 그는 자리를 들고 걸어가고 있잖아요.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잖아요. 그것처럼 우리 주 예수님은 아무 것도 하실 수가 없는 분인데 이 병자를 고치고 있잖아요. 죽은 나사로를 살리고 있잖아요. 풍랑을 잔잔케 하고 있잖아요.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
이런 말씀을 읽으면서 내가 뭘 느끼느냐 하면 주님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분인데 어떻게 능력 있는 하나님의 일을 하실 수가 있었습니까? 그러니까 주님은 하나님의 능력 있는 일을 하기 위하여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시는지 어떤 일을 하시는지 그걸 보고 하신다는 거지요. 여기서 “아들이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하고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지금 아버지가 하신 그 정확한 일을 알고 그 뜻을 알았을 때 아버지는 그 일을 이루시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 일을 하면 할 수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이 바로 그런 일이라는 거지요.
제가 한번은 귀신 들린 여자를 만났습니다. 그 귀신 들린 여자의 머리에 안수를 하면서 기도를 했는데 제 마음에 어떤 마음이 드느냐 하면 이 여자는 미쳐가지고 막 어떡할 수가 없는 여자였는데 그 머리에 안수를 하고 기도를 하면서 내 마음에 ‘이런 여자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아이들의 마음이 어떨까?’ 그 마음을 내가 생각해 봤어요. ‘다른 아이들은 학교에 갔다 와서 기뻐서 “엄마!” 하고 뛰어 들어오면 엄마가 안아주고 맛있는 음식도 주고 또 닦아주고 그러면서 엄마하고 즐길 수 있는데 이 집 아이는 학교에 갔다 와서 미쳐있는 엄마를 보면 그 마음이 어떨까? 또 이런 여자를 아내로 두고 있는 남편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하니까 너무너무 불쌍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 나는 이 여자나 그 아이나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 적어도 불쌍한데 우리 주님의 마음은 이 여자에 대해 어떠실까?’ 주님도 이 여자를 낫게 하기를 원하시겠다는 마음이 들고 ‘그러면 내가 기도를 드리면 낫게 하시겠구나.’ 그 마음이 내 마음에 들더라는 거지요. 그러니까 그 이후에도 제가 병든 사람이나 이런저런 기도를 하다가 자주자주 내 위치에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은 정말 이걸 기뻐하실까? 하나님은 이걸 정말 원하실까? 하나님은 만족해하실까?’ 그걸 제가 보는 거예요. 보다가 ‘아 이건 정말 하나님이 만족케 하시겠다. 기뻐하시겠다.’ 그렇다면 내가 기도가 부족해도 내가 연약해도 이 일이 이루어지겠다는 마음의 믿음이 생기고 그 귀신 들린 여자가 나아지고 병이 낫는 경우를 여러 번 제가 보았거든요.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형편이 이러냐, 저러냐?’ 그게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냐, 안하시느냐?’ 그것을 제가 찾는데 마음을 많이 기울였어요. 형편을 볼 때는 전혀 불가능한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면 그건 틀림없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내가 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이루는 분은 하나님이시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면 그 일은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 아니냐는 거지요. 예수님이 그러시다는 거지요.
예수님이 나는 아무 것도 나는 스스로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고 30절에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은 예수님이 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하니까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모든 것을 쓸 수가 있는 겁니다.
자 이제 38년 된 병자가 걸어갈 수 있는 것은 주님이 원하시기 때문에 걸어갈 수 있는 것이고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주님으로 말미암아 되어질 수 있다는 거지요. 우리도 그러하다는 겁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우리를 다듬고 가꾸어서 내가 잘해가지고 어떤 일을 이루려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 나는 할 수가 없고 예수님이 내 안에 와서 일하실 때 일이 되어진다는 거지요.
38년 된 병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도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38년 된 병자가 걸어간 것처럼 우리가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을 알고 그걸 행한다면 우리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일을 하면서 일 앞에 주저한 적이 참 많았습니다. 선교학교를 시작할 때도 주저했고 수양관 땅을 살 때도, 방송을 할 때도, 책을 출판할 때도, 해외 선교사를 보낼 때도, 뭐하나 될만한 것이 없었지만 다만 이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복음을 위해 하고 있는 그 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고 있는 그 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이라면 아무리 형편이 좋아도 그냥 그만두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인지 아닌지 잘 이해하지 못할 때 일을 중단하고 기도하면서 말씀을 펴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지만 ‘아들이 아버지의 하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예수님 당신 자의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정확히 보고 안 뒤에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정확히 알고 깨닫게 되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이 하시려고 하는 기뻐하는 뜻을 알지 못하고 대충 알아서 애매한 가운데 일하는 사람은 그땐 될 것 같아도 아무 것도 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하시는 그 일을 볼 수 있는 눈이 뜨여지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시는 그것을 볼만한 눈이 뜨여지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그 일이 내 일이 되고 그럴 때 그 일을 하나님이 이루셔서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걸 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Reply 윗 글에 대한 답글입니다.
3개월이 지난 글은 덧글 입력이 불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