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 대해 많이 알고 계신 것 같군요.
분명히 복음은 `범죄의 용서` 가 아닙니다.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케 하여.."(벧전1:21)
죄때문에 하나님과 단절되어 있던 우리 영혼이 거룩함을 얻고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범죄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본질상 죄인의 신분과 속성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 육체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근본적인 죄뿐 아니라 범죄에 대해서도 이미 심판이 치루어 졌고(십자가위에서),
앞으로 지을 죄도 우리를 하나님앞에 죄인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이제 죄를 위하여 드릴 제사가 없는거죠. 죄와 상관없이 두번째 나타나실
예수님을 기다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누군가 `범죄의 용서`만 이야기 한다면 잘못된 복음입니다.
저희 교회의 누군가 `범죄의 용서`만 이야기 했다고 생각하시면 오해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많은 교회에서 원죄는 사해졌고 자범죄는 계속 회개해서 사한다는 교리를 이야기하고 있고
칭의 즉 우리는 의롭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의롭게 봐주신다고 이해하고 있기때문에,
이미 미래의 죄도 모두 사해졌고 우리는 완전한 의인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인쇄된 문서나 본 홈페이지의 구원간증문에 `미래의 죄`에 관한 정형화된 문장이
눈에 거슬렸다면 아마 그 글은 자범죄에 매여 새벽마다 부르짖는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특별히 채택된 글일 것입니다.
저희 교회에서 최근에 여러분들이 구원을 받고 주일마다 구원간증을 했지만
미래의 죄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듣지 못했습니다.
히브리서 속죄제사에 관한 말씀은 우리가 의롭게 되었다는 것을 전달하는데,
참 효과적인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상대성이론보다 훨씬 쉽고 30분 만에 다
설명할 수 있지만 효과는 상대성 이론보다 뛰어 납니다.
그러나 저희 교회 누구도 히브리서나 레위기를 모르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믿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정말입니다.)
로마서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에 관한 말씀으로 복음을 설명하고, 율법에 관한 말씀으로
복음을 설명하고, 히브리서에서 속죄제사로 복음을 설명하는 것을 읽을때 참 훌륭한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복음을 왜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할까 그냥 믿으라고하면 될텐데라는
생각이 드십니까?
이사야 53장의 말씀에서 시작하여 복음을 전하는 빌립의 전도나, 성경에 능했고 예수에 관해서도
자세히 가르쳤지만 요한의 세례밖에(:회개) 알지 못했던 아볼로에게 하나님의 도를
자세히 풀어 설명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복음전도법이 훌륭하지 않습니까?
나는 앞의 자매님 간증처럼 다른 교회에서 어설픈 복음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수십년을 죄로
고통하다가 저희 교회에서 자세히 풀어 설명하는 복음을 듣고 거듭나서 기뻐하는 사람들을
참 많이 보았습니다. 제가 다른 모든 교회를 가본 것은 아닙니다만 내가 아는 많은 교회에서
사람들이 사회적 친분을 위해서 이생에서 복받기 위해서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저희 장인어른과 장모님도 그러시니까요. 우리 교회의 형제 자매님들처럼 순수하게 복음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을 찾아 보기가 힘듭니다.
복음은 `죄에서 구원`받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를 너무 간단하게 다루어서 `의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의롭다하신 이는 하나님이시지만 스스로는 의롭다고 하지 못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주의 이름을 부른다고 다 천국가지는 못합니다.
그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분이고, 호리라도 죄가 있으면 지옥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죄와 범죄의 문제를 사소하게 다룰 수 있습니까? 누가 책임을 집니까?
법률적으로만 의인입니까? 하나님의 재판은 의롭지도 않은 사람을 의롭다고 합니까?
하나님이 법률적인 용어를 사용했다면 확증이고 변치않는 사실이기 때문이 아닙니까.
로마서7장의 바울의 탄식 이후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중략)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합니다. 그가 우리의 범죄함때문에 내어줌이 되었고 우리를 의롭다하실려고
살아나신 사실을 이야기 합니다.
어떤사람이 다음과 같은 신앙을 합니다.
`죄인임을 인정합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합니다. 내 안에 들어 오십시오`라고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마음에는 여전히 죄인입니다. 내가 정말 천국갈 수 있을까하는 의심하는
마음은 신앙이 조금만 어두워져도 찾아옵니다. 언젠가 더 좋은 그리스도인이 될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 아닙니다.
`영접 곳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 영접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나니.` :마음으로 믿은자는 의에 이릅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자냐?
그럴 수 없느니라.` : 그리스도안에서 죄인으로 나타나는 법은 없습니다.
변론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만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은 이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