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식물의 반대는 젖입니다.
젖이란 아기가 일반 음식을 바로 소화하지 못하니까 어머니가 먹은 것이 아기가 소화할수 있는 음식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처음 구원받았을 때는 성령의 인도를 잘 모르니까 장성한 그리스도인이 말씀을 풀어줘야 합니다.
사무엘이 처음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치 못하다가 엘리의 인도로 알게 되었죠.
장성한 자는 지각을 사용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이 그리스도인을 지도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말씀의 인도로 선악을 분변하는 것이죠.
저는 성경의 정설을 얘기할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한때 성경을 대할때 정확한 해석이 무엇인가에 초점이 맞춰있은 적인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자세로는 말씀이 내게 아무 일을 할수가 없었습니다.
사도바울은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는 이사야서의 말씀을 받고 이방을 향해 복음을 들고 갔습니다. (행13:47)
이것이 이사야서의 정확한 해석으로 말미암은 것입니까?
이것은 "정확한 해석"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죠.
제 간증을 하나 하죠.
제가 전에 직장(세정 인디안모드)다닐때 수양회 때문에 기도하는 중이었는데, 말씀을 보면서 이런 말씀을 보았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14:14)
그 말씀이 제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제 마음을 이끌었습니다.
제 상사가 수양회를 허락지 않았습니다.
저는 말씀에 따라 다른 인간적인 방법을 쓰지 않았습니다.
저는 허락을 받지 못했지만 수양회에 갔다왔습니다.
그후 부장님은 나를 징계하기 위해 계속 인사팀에 찾아갔습니다.
그때도 말씀이 계속 위로해 주었습니다.그런데 갑자기 구조 조정이 되어 그 부장님은 퇴출당하고 나는 다른 부서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받았던 말씀만 의지하고 나갔는데, 말씀이 일을 하셨습니다.
의의 말씀을 경험한 것입니다.
또, 부산에 살때 한번은 이사를 해야 했기에 집을 보러 갔습니다.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교회와서 말씀 읽는 중에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눅10:7)
는 말씀을 읽었습니다.
저는 도저히 그 말씀 앞에서 이사할 수 없었습니다.
그후 한달이 못되어 대전으로 옮겨야 되게 되었습니다.
말씀이 인도해 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정확한 해석으로 말미암지 않은 것입니다.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임태님은 의의 말씀을 경험하신 간증이 있습니까?
전에 허구연이란 유명한 야구 해설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정말 해설을 잘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야구 감독에 스카웃 됐습니다.
잘 했을까요?
형편없었습니다.
해설을 잘하는 것과 야구를 잘하는 것은 다르죠.
신앙은 의의 말씀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의의 말씀을 경험하는 기초는 말씀에 자기를 던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씀이 불안해서 어떻게 자기를 던지겠습니까?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히1:3)
말씀이 지금도 만물을 붙들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