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보고 제 마음에 있는 것을 글로 올립니다.
저도 킹제임스 성경이 참 좋은 번역인 줄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보면서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자요" (히5:13)
여기보면 의의 말씀을 경험한다는 것이 나옵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힘이 있습니다. 운동력이 있어 꿈틀대며 우리 마음에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거듭난 후 말씀을 대하면서 그 말씀이 제 마음의 있는 것을 드러내며, 주님의 마음을 가르치며 일하시는 것을 수도 없이 경험했습니다.
의의 말씀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성경을 대할때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가득한 마음의 통로로 느껴지게 될 것입니다.
저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배웁니다.
임태님이 적은 글을 보면서, 정말 의의 말씀을 경험했으면 말씀에 대해 이런 자세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그 글을 보면 개역성경에는 거짓말이 섞여 있다고 하는데, 의의 말씀을 경험한 자(성경을 통해 주님의 마음을 전해 받은자)들에게는 문제가 안되지만 그렇지 못한자에게는 결국 성경을 불신하게 하는 일을 하는 글입니다.
하나님을 성경을 통해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고, 주님의 마음을 흘러받는 자를 기뻐하지, 말씀을 보존할려고 하는 자를 기뻐하지 않으실 겁니다.
왜냐하면 말씀이 내가 보존해야 하는 불안한 것이라면 어떻게 말씀에 자기를 의지할 수 있겠습니다.
법궤가 쓰러질 것 같아 붙들은 웃사를 치신 하나님을 생각해 보세요. (삼하 6:6)
개역성경을 히브리어와 헬라어 성경를 다 살펴 번역된 겁입니다.
번역이 다르게 된 데는 이유가 있겠죠.
하지만 쓰러져가는(?) 성경을 붙드는 마음은 흠없이 완벽한 것을 찾더라도 믿음을 가질수는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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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님이 작성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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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마가복음 1장 2절이 과연 이사야서의 인용인가에 대한 퀴즈를 드린적이 있었는데 응모하시는 분이 없어서 해답을 공개합니다.
마가복음 1장
2절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3절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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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에는 마가복음 1장 2절의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 내용은 이사야서가 아니라 말라기 3장 1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3절은 이사야서 40장 3절을 인용한 것이구요.
그렇다면 2절의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3절의 "기록된 것 같이"는 무엇인가 앞뒤가 안맞습니다.
왜 그럴까요?
개역성경이 아닌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은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가 아니라 "선지서들에 기록된 바와 같이"입니다.
2절을 말라기에서 인용했고 3절을 이사야서에서 인용했다면 상식적으로 보아도 "선지서들에 기록된 바와 같이"가 맞을 것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이 보더라도 말입니다.
본문을 개역에 따라 강해하시는 목사님은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시게 되고 하나님을 거짓말장이로 만들게 됩니다.
이렇게 된 것은 단순히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 더 깊은 영적인 전투가 성경기록과 사본에도 미쳐 있음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개역으로 구원받고 주님을 섬기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고 공언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요.
복음도 가지고 있으면서 보존된 말씀도 귀히 여긴다면 주님은 더 크게 역사하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부담에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