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32장 1절
이 모든 충성된 일 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에 들어와서 견고한 성읍들을 향하여 진을 치고 쳐서 취하고자 한지라
제가 1995년도에 케냐 나이로비에 갔을 때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많았습니다마는 특히 그때 김종덕 선교사, 윤종수 선교사가 비자가 없어서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그때 우리가 케냐 현지 교회 목사님이 비자를 주선해 줘서 우리가 다행히 있을 수 있었는데 95년도에 케냐 나이로비에 갔을 때 그 현지 교회 목사님이 나를 만나고자 요청을 했습니다.
만나자는 소식을 들으면서 내 마음에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 하면 ‘아프리카의 어떤 목사님들과 같이 이분도 나에게 돈을 요구할건데 그럼 내가 과연 돈을 줘야 할 거냐? 주면 얼마를 줘야 하느냐?’ 그런 심각한 고민 속에 젖게 되었습니다.
만나자는 그날 아침 저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리는 중에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말씀하시기를 ‘케냐 나이로비에 김종덕, 윤종수 두 선교사를 보낸 분이 누구냐? 굿뉴스미션이냐? 박옥수 목사냐? 아니면 하나님이냐?’ 그렇게 제가 생각하는 동안에 내 마음에 있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만일에 케냐 나이로비에 그들을 보낸 분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면 아무도 쫓아낼 수 없겠다는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 내가 돈을 주지 않아도 되겠구나. 그분에게 매이지 않아도 되겠구나.’ 아주 담대한 마음으로 아침을 먹고 그쪽 목사님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그 목사님이 다른 여러 목사님들과 같이 있으면서 저한테 이야기했습니다. 케냐에 많은 선교사가 있지만 굿뉴스미션 선교사들이 제일 뛰어나다고. 또 박옥수 목사도 내가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말 훌륭한 사도 바울 같은 사람이라고. 그런 식으로 저를 칭찬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었습니다. 잠시 후에 그분이 나에게 이야기하기를 “내가 예배당을 짓는데 35만불이 필요하다. 그중에 박목사님이 얼마를 좀 담당해 줬으면 좋겠다. 또 우리가 빈민굴 전도를 하는데 15만 달러가 필요하다. 그중에 얼마를 지원해 줬으면 좋겠다.” 그런 협박에 가까운 요구를 제가 받았습니다. 그분의 요구는 “돈 안 주면 쫓아낸다. 당신 선교사들 쫓아낸다. 알아서 해라.” 그런 의미가 다분히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분의 이야기가 끝나고 난 뒤에 제가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미국인 선교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미국인 선교사들이 아프리카에 돈을 뿌렸기 때문에 아프리카 사람들은 선교사를 볼 때 돈, 달러박스로 생각하지 않느냐고. 내가 이야기를 이어나갔습니다. “왜 당신들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느냐?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지 아니하시느냐? 나는 지금까지 내게 역사하고 도우시는 하나님을 알리러 왔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 것을 나는 아프리카에 보여주러 왔다.” 제가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나한테 이야기하기를 아 과연 듣던 대로 박목사는 훌륭한 분이라고. 그런 이야기를 했지요. 내가 떠난 뒤에 그분이 경찰에 전화를 했습니다. “윤종수, 김종덕은 우리 선교사가 이상 더 아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우리가 케냐에 종교 등록을 얻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셨고 일을 행하신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하나님 앞에 감사한지 내가 말로다 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저는 주님 앞에 참 감사한 게 내가 이 IYF를 하고 월드 캠프를 하고 글로벌 캠프를 하고 이런 일을 할 때 하나님이 돕는 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어렵고 곤고하고 힘들 때도 역시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서 나를 도우시고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걸 너무너무 분명하게 볼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구약에 열왕기하 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의 왕과 함께 있어서 왕을 지키고 아람이 쳐들어올 때마다 “어디로 쳐들어옵니다. 주의하십시오. 방비하십시오.” 이런 방법에 의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는데 그런데 6장 마지막에서 아람 왕이 쳐들어와서 사마리아 성을 에워싸니까 성이 크게 주려서 합분태 4분의 1갑에 은 다섯 세겔이고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 그리고 자기 자식을 삶아먹는 그런 비참한 일들이 일어나게 된 것이죠.
문제는 우리가 좋고 고마울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려울 때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정작 이스라엘은 그런 어려움 속에 있을 때 전혀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입지 못하는 사실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역대하 32장에 히스기야 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히스기야가 유대의 왕이 될 때 그 앞에 왕들이 나라가 다 망한 것입니다. 군인들이 12만 명이 죽고 20만 명이 사로잡혀 가고 나라가 더 이상 망할 수 없을 정도로 나라의 병력이나 권력이나 이 모든 것들이 다 죽고 이제 완전히 망한 상태에서 히스기야가 왕이 되었습니다.
원년 정월에 예루살렘 성전 문을 열고 성전을 정결케 하고 히스기야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그 모양을 성경은 우리에게 자세히 이야기를 하지요. 그래서 이제 나라가 점점점 부강되어 가고 있는데 더 중요한 것은 그걸로 끝이 아니라 오늘 읽은 말씀을 보면 “이 모든 충성된 일 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에 들어와서 견고한 성읍들을 향하여 진을 치고 쳐서 취하고자 한지라.” 이제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를 멸망시키러 쳐들어 왔는데 32장 1절부터 자세히 읽어보면 히스기야의 힘으로 앗수르 왕 산헤립을 당할 아무 힘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와 함께 계셔서 앗수르 왕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그 모양을 우리는 역대하 32장을 통해 자세히 읽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은, 저는 제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주님이 내 마음 안에 계셔서 내가 어떤 어려움을 어떤 문제를 당해도 주님이 아름답게 해결해 주시는 걸 보아왔기 때문에 이 하나님을 생명보다 귀히 여기고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으로 내 마음에 섬길 수밖에 없다는 거지요. 여러분 그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고 어려울 때마다 도우시는데 그래서 이제는 제 삶속에 어려움이 닥치면 ‘아 이 일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겠다. 하나님이 도우시겠다.’ 마음에 믿음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막상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그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의 도움을 입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정말 많은데 이제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을 당할 만한 힘이 없지만 히스기야가 말하기를 7절에 보면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 좇는 온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하는 자가 저와 함께하는 자보다 크니 저와 함께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하는 자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인하여 안심하니라.”
사람들 마음에 믿음을 심어주고 소망을 심어줘서 그 하나님을 의지해서 앗수르 왕을 이기고 은혜를 입게 하는 히스기야의 모양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허황된 신이 아닙니다. 살아계셔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는 신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의 믿음이 좋을 때 말고 어려울 때 무슨 일을 당할 때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믿음으로 담대하지 못한다면 그는 믿음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정말 절박한 가운데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담대함을 얻고 정말 하나님으로 승리를 얻어서 만방에 그 이름을 떨치는 그런 귀한 종이 되었는데 우리도 우리가 당하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역사하시기를 믿는 믿음으로 달려가서 여러분 두려움이나 염려에 잡히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으로 가득 채워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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