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4장 19절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여러분 이 말씀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시몬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예수님이 깊은데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했을 때에 베드로가 고기를 잡고 난 뒤에 말했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말씀을 하신 뒤에 시몬 베드로의 삶을 보면 어느 면을 봐도 그가 사람 낚는 어부가 될 만한 그런 위대하거나 그런 게 전혀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그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그런 일이 있은 뒤에 그가 실망을 하고 갈릴리 바다에 다시 고기를 잡으러 갔을 때 예수님이 그를 찾아가시고 또 예수님이 부활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뒤에 그때 이제 시몬 베드로가 하루에 삼천 명씩을 인도하는 그런 사람 낚는 어부가 된 걸 우리가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고 말씀하신 그 뒤부터 어떤 과정이 흘러갔든지 그 모든 건 과정에 불과하고 시몬 베드로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가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요셉에게 “너는 치리자가 되리라.” 하는 것을 꿈으로 보여줬지요. 요셉이 꿈을 꾸니까 꿈에 곡식 단을 묶는데 자기 곡식 단은 일어서고 형님들 곡식 단이 절하는 그런 꿈을 꾸었습니다. 그 뒤로 요셉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많은 문제들이 있었지만 우리가 볼 때 ‘이런 문제는 어려움이다. 고통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을는지 몰라도 정확하게 알면 그것은 요셉이 총리가 되는 한 과정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요셉이 총리가 되는데 총리가 되는 그 과정으로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도 했어야 했고, 감옥에도 갇혔어야 했고,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의 꿈도 해석해주고, 결국 왕의 꿈을 해석해줘서 결국 이제 총리가 되어서 애굽 사람들을 기근에서 건져낼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 자기 자손들을 살리는 그런 놀라운 일을 이루는 것이지요.
결론적으로 그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없이 요셉이 총리가 될 수 없기 때문에 그가 형들에 의해 팔려가는 것도 필요했고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하는 것도 필요했고 또 보디발의 아내에게 유혹을 받아서 모함을 당해 감옥에 가는 것도 필요했고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의 꿈을 해석하는 것도 필요했다는 거지요. 그러나 우리가 그 과정만 봤을 때는 총리가 되거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처럼 전혀 보이질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그 모든 일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볼만한 눈이 없기 때문에 우린 현재 눈앞에 닥친 것만 봐서 우리 속에 일어나는 일이 무슨 일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 당시에 어려우면 어렵다고 표현하고 좋으면 좋다고 표현하고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럽다고 표현하고 절망스러우면 절망이라고 표현하고 우리는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결론적으로 보면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불문하고 여러분 그런 일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저희들 교회에 최근에 제가 오래전에 알았던 분이 저하고 막 가까워져서 복음의 말씀을 듣고 하다가 어느 날 천리만리 떨어져버렸습니다. 왜요? 그분이 이단이라는 비난을 듣고 오해를 한 거죠. 너무너무 감사한 건 ‘이야 이제 끝이구나. 이제 저분하고는 다시 상담하기 어렵겠구나. 다시 만날 수 없겠구나.’ 그랬는데 이상한 인연으로 그분이 다시 마음을 열고 와서 이제 우리를 대하는 걸 볼 때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은 정말 우리가 다 알 수가 없고 이해할 수가 없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가운데 한 가지는 뭐냐하면 주님께서 “내가 너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셨으면 현재 내가 당면한 일들, 현재 내가 부딪히는 일들, 내게 닥친 일들이 어떤 일이든지 불문하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가는 과정 속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땅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처럼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하면서 첫 사람 아담은 땅에서 났으니까 흙에 속했고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나셨다. 우리 이 육체는 아담의 형상을 따라서 땅에서 났고 우리 속사람은 예수님의 형상을 따라 하늘에서 났기 때문에 우리가 아담과 같은 몸을 가지고 태어났으면 아담도 우리처럼 손이 있고 눈이 있고 귀가 있고 그런 아담인데 우리가 아담을 닮으려고 해서 닮아진 게 아니라 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는 아담을 닮을 수밖에 없는 게 우리라는 거지요. 그러면 우리의 육체가 아담을 닮은 것처럼 우리 속사람은 예수께로부터 났기 때문에 예수님을 닮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 볼 때 아니죠.
자주 이야기합니다만 배추벌레가 “네가 얼마 있으면 나비가 될 거야.” “아이 그건 말이 안돼요. 내가 어떻게 나비가 돼요? 내가 어떻게 날수가 있어요? 난 그렇게는 안 될 것 같아요. 나를 위로하는 말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몰라도 그런 소리하지 마세요. 나비가 될게 따로 있지 나는 나비가 될 수 없어요.” 배추벌레는 틀림없이 그렇게 이야기할 거예요.
여러분 우리도 우리 자신을 바라보면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뤄?’ 불가능하고 안 될 것 같지만 어느 날 배추벌레가 허물을 벗고 나비로 변하는 것처럼 우리도 영광스러운 그날에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모양으로 변하도록 만들어져 있는데 나비로 변한 뒤에 볼 때 나비 같지 배추벌레로 있으면 나비가 된다는 게 진짜 이해가 안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군이 된다고 했을 때 진짜 우리가 인해가 안가는 거예요.
단기선교사들이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런저런 문제 속에 빠져있던 학생들이 변화되어서 단기선교사로 나가는 게 너무 신기하고 놀라운 것처럼 어제까지는 배추벌레였는데 어느 날 갑자가 나비로 되는 게 얼마나 신기합니까? 물벌레가 잠자리가 되고 굼벵이가 매미가 되는 것처럼 자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어가도록 만들어진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부인을 해도 이제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이 사람 낚는 어부가 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그 삶을 보면 ‘어떻게 저래? 베드로는 아니야. 주님이 잘 모르고 그러신 거지 베드로 저런 사람이 어떻게 사람 낚는 어부가 될 수 있어? 안 돼.’ 다 불가능하게 여기고 베드로 자신도 ‘나는 그럴 수 없어.’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결국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구속함을 받은 이후에 우리는 현재 우리가 보기에 어떠하든지 간에 예수님의 형상을 입었고 그와 같은 모양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현재 눈에 보는 그걸 믿지 말고 살아있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내가 보기에 어떠하든지 간에 사람 낚는 어부가 된다고 하면 사람 낚는 어부가 되는 것입니다. 총리가 된다고 하면 총리가 되는 것이고 주님이 다윗을 보고 왕이라고 하시면 그는 왕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보고 많은 민족의 조상이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이 현재 자식이 하나도 없어도 그는 결국 많은 민족의 조상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눈에 보는 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도록 우리는 만들어져 있습니다. 배추벌레가 지금 자기의 모양을 보지 말고 나비가 된 모양을 보듯이 우리도 믿음의 눈을 가지고 말씀을 읽을 때 지금 내가 아닌 정말 변화된 새사람의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고 또 그 일을 이루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베드로에게 “너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신 것처럼 주님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모양으로 이끌어간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우린 그 모양으로 되어질 줄을 확실히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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