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1장 16절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제가 이런 성경을 대할 때마다 내 마음에 감격스러운 게 참 많은 것이 고린도 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우린 안 그런데 하나님은 새것이 되었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우리는 거룩하지 않은 것 같은데 하나님은 거룩하다는 거예요. 우리는 추한 것 같은데 하나님은 씻었다 그러고 우린 의롭지 않은데 하나님은 의롭다는 거예요.
왜? 사단은 우리에게 선악을 아는 나무 열매를 따먹게 해서 우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는 그런 세계를 믿도록 만들어 버렸지, 신비한 영적인 세계에 믿음이 가도록 우리 마음의 구조가 잘 안 되어 있어요.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좀 전에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물벌레가 잠자리가 되고, 배추벌레가 나비가 되고, 굼벵이가 매미가 되는 이런 현저한 변화가 우리 마음 안에서 일어나진 것이거든요.
그래서 여러분 이 하나님의 말씀에는 보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았을 때 우린 예수 그리스도와 완전히 하나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세계에서 예수님이 하시는 그 마음하고 내 마음하고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에서 예수님과 하나로 결합되어서 하나기 때문에 이제는 어느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와 나를 나눠놓을 수가 없다고 하셨고 어느 누가 봐도 우린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데 다만 육신의 눈으로 볼 때는 여전히 나는 추하고 더럽고 연약하게 보일 따름이라는 거지요.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가 아는대로 예수님께서 소경을 보고 "내가 너를 낫게 할 줄 믿느냐? 믿음대로 되리라." 하는 그 말은 예수님이 그 소경을 낫게 하시는데 믿는다는 말은 그 예수님과 같은 마음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그 마음 속에서 성령이 역사해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가루, 그건 예수 그리스도 아닙니까. 처음 익은 곡식가루, 그 예수 그리스도, 그 처음 익은 곡식가루와 우리가 함께 뭉친 떡덩이라면 우리도 거룩하다, 그러하다. 그러하다는 말은 뭐냐하면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가루와 같다는 거지요. 예수 그리스도와 같다는 거예요. 그러하다.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그러하다는 거예요.
자 우리가 보고 느끼기에는 우린 예수님하고 너무 다른 거예요. 우린 예수 그리스도하고 진짜 너무 다른 거예요. 우리가 우리를 볼 때 연약하고 추하고 더럽고 가증한데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실 때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아닌 거예요. 우리가 거룩하고 의롭고 진짜 깨끗하다는 거예요. 그리고 능하다는 거예요. 또 변했다는 거예요.
자 우리가 구원을 받을 때도 우리가 볼 때는 죄인인 것 같은데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신 그걸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과 똑같이 구원받은 후에 우리의 삶도 우리가 느껴지고 우리가 아는 이 지혜 말고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뭐라고 말하느냐? 그게 사실이라는 거지요.
사람들이 참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고 그러는데 사람들이 `나는 안 변했어.` 하나님의 말씀에는 우리가 변화되었다고 분명히 이야기를 하는데 사탄은 갖가지 이유를 들어가지고 우리가 변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갖도록 만들어 버려서 변화된 것을 믿는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참 많이 사탄이 일을 한 거예요. 그리고는 우리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서 확인된 그 사실을 보고 믿도록 그렇게 만들어요. 우리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확인된 그걸 믿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 그 말씀 이 자체를 믿는 거거든요.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다"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거룩하다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가 가졌던 그 생명이 내 생명이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가 가졌던 그 의가 내 의가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가 가졌던 그 능력이 내 능력이 되었고, 예수님이 가졌던 그 모든 게 다 나와 하나가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상 더 옛날의 우리가 아닙니다. 참 많은 사람들이 그 중간에 섰어요. 그 중간에 서서 좀 달라진 것 같으면 `어 내가 좀 변했는가 보다.` 아니면, `에이 그렇지. 내가 뭘 달라졌어?` 중간에서 그런 걸 보고 있기 때문에 사탄은 자꾸 우리 생각 속에서 변하지 않은 것, 육신의 추한 것, 더러운 것, 그런 걸 자꾸 들추어내서 `너는 아니야. 너는 아니야. 너는 변하지 않았어. 너는 여전히 그래. 네가 뭘 변했어? 그런 소리 하지마.` 그러면서 우리가 믿음으로 달려가 살지 못하도록 했다는 겁니다.
저는 이번에 잠실 집회하면서 `하나님 작년에 오천 명이 왔는데 이번에는 만 명이 오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만 명이 오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기도를 드렸지만. 이런 걸 어떻게 해석을 해야하는가? 내가 기도하면 다 들으시진 않는 것인가?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이번에 집회를 하면서 어떻게 했느냐 하면 성막 이야기를 처음에 전하려고 생각을 안하고 열왕기하 서를 말씀을 준비했는데 우리가 토요일날 임원회를 하면서 `집회에 무슨 노트를 하나 만들면 좋겠다.` 그래 형제들이 노트를 만들었는데 제가 잠실 집회를 마치고 난 뒤에 후속 집회를 해야하는데 노트에 이어서 했으면 좋겠는데, 죄송하지만 저는 설교준비를 윤곽만 잡아놓고 항상 설교 직전에 준비를 하거든요. 그런데 노트를 만들려고 하니까 두 주간 할걸 다 쓸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 그 날 대전엘 갔다가 저녁 늦게 돌아와 가지고 밤에 피곤해서 일찍 자고 그 이튿날 새벽에 하다가 다 쓸 수 있는 건 성막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성막을 그 이튿날 새벽에 일어나서 만들어 가지고 형제에게 넘겨서 형제가 그걸 디자인 해가지고 또 인쇄하는 형제가 마음을 써서 노트를 만들었어요. 저는 솔직히 본의 아니게 성막을 설교하게 되었어요. 사실 열왕기하 서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그래 그것도 주님이 하셨다는 마음이 드는 거예요. 내 생각이 어떠하든지 간에. 주님이 나를 이끌고 계시고 그래 이번에는 첫날 저녁부터 그냥 복음을 전했어요. 첫날에 제단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제단이 아카시아 나무가 놋을 뒤집어썼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심판을 받았다." 그 이야기를 하니까 복음이 안 나올 수가 없고 그 좋은 복음을 뒤에 전하려고 미룰 수도 없겠더라고요. 그냥 복음을 전해버렸어요. 내 본의가 아닌데 하나님이 인도하셨다고 믿는 거예요. 참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더라고요.
돌아오면서 나를 보면 나는 여전히 약한 거예요. 나는 여전히 부족한 거예요. 나는 여전히 목사로서 참 많은 약점을 가진 인간인데 그러나 내 안에 예수님은 약한 분이 아닌 거예요. 내가 예수님으로 살지 나로 말미암아 사는 게 아니라는 거지요. 나는 죽었다는 거지요.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어떠한가? 그분이 거룩하면 나도 거룩하고 난 그분의 안에 있는데, 그분과 하난데, 그분에게 속했는데. 그런데 우리는 자주자주 속아서 막 내가 거룩해지려고 애쓰잖아요. 구원 안 받은 사람이 구원받으려고 애쓰듯이 이미 다 되어 있는데. 동역자 여러분 이 사실을 마음에 믿는 것입니다.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도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다."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거룩하다"가 아니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다." 그 거룩하다는 말과 그러하다는 말이 다른데 그러하다는 말은 뿌리와 같단 말이거든요. 예수님이 얼마나 거룩한지 가지된 우리도 그러하고 처음 익은 곡식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다. 그러하다는 말이 예수와 같다는 말인데 그 말이 너무너무 좋은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와 같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속에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가 육체의 이끌림을 받을 때도 있지만 우리 속에 하나님이 주신 그 생명은 예수님처럼 거룩하고 의롭고 깨끗하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능력과 생명이 똑같이 우리에게 있다. 이걸 믿는 것만큼 주님이 일하실 줄을 믿습니다. 동역자 여러분 그 믿음 안에 거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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