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3장 4절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사도행전을 저희들이 볼 때마다 감격스러운 게 뭐냐하면 사도행전 속에 일어나는 여러가지 역사들을 보면 그 역사들이 전부다가 인간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시작된 역사라는 거지요. 사도행전 처음에 오순절날 성령을 받은 그 일부터 시작해서 그 다음에 앉은뱅이가 나음을 입는다든지, 또 베드로가 가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든지, 이런 일들을 우리가 자세히 보면 그 모든 역사들이 어떤 인위적인 것이 아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9장에 사울이 다메섹에 올라갔을 때에 인위적으로 시작되었지만 하나님이 그걸 바꾸어서 예수님을 만나고 그 다음에 아나니아가 상상치 못했던, 사울이 구원받는 이야기를 듣고 가서 사울에게 기도하고 그 외에 그 다음에 일어나는 그 모든 일들이 하나같이 인위적인 것이 아닌 하나님에 의해서 되어진 일이라는 거지요.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보면 하나님은 없고 인간들이 나와서 그 모든 일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는 잡음도 많고 문제도 많고 그렇다는 거지요. 자주자주 해마다 우리 교회에 많은 역사가 있고 구원받는 사람들도 있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참 좋기도 하지만 그러나 어떨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하나님께 얻은게 참 많지만 또 그 사이에 잃어버린 것도 참 많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처음에 우리 교회가 복음 전도하고 할 때, 그때는 형제자매들이 막 금식을 하며 기도하는 시간들이 참 많았어요. 어떨 때는 제가 선교학생들을 데리고 밤에 산에 올라가서 밤새도록 기도하고 내려오고 어떨 때는 또 며칠씩 금식하면서 기도하고 어떨 때는 낮에 일하고 밤에 철야 기도를 하고 그런 기회들이 정말 많았는데, 우리에게 자꾸 많은 일들이 일어나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시간들이 많이 빈약해지고 그러면서 형제자매들이나 그 다음에 우리 사역자들도 마음에 영적인 인도가 빈약하기 때문에 인간적인 면으로 계속 흘러가는 그런 영향들을 참 많이 볼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옛날부터 그런 걸 좀 느끼긴 해도 잘 몰랐는데 이번에 저희들이 가을에 전국적으로 일일금식기도를 한번 했는데 우리 교회에서 일일금식기도하고 난 뒤에 형제자매들이 너무너무 기뻐하는 거예요. 직장에 있는 형제자매들도 하루종일 금식하며 직장 생활을 했고 어떤 자매님들은 밤 12시까지 기다렸다가 12시가 되는 걸 보고 밥 잡숫고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런 이야기들은 참 은혜롭더라고요. 그래 형제자매들이 자주 이런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그것도 형식으로 되는게 아니고 우리 마음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시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거든요.
우리가 기도를 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가 없이는 우리가 어떻게 일을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나 성령으로 우리를 이끌어주지 아니하시면 우린 지극히 합리적이고 인간적인 방법이나 수단을 쓸 수밖에 없는 거예요. 여러분이 육신적으로 흘러가고 싶어서 육신으로 흘러가는 게 아니고 또 정욕에 빠지고 싶어 빠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이끌어주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이 인도해주지 아니하면 내가 가만히 서 있을수만은 없으니까 나도 모르게 인간적인 방법으로 길을 걸어가고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다는 거지요.
사도행전 13장은 안디옥 교회에서 일어난 일인데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함께 모여 금식하고 기도를 했는데 성령이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말했고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그러니까 바나바와 사울이 가는데 어떤 선교회 본부에서 가라, 아니면 누가 가라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분명히 성령이 그들에게 안수를 해서 보내라고 했다는 거지요. “이들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그러니까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일을 하는 것하고 내 인간의 수단이나 방법으로 일을 하는 것은 정말 다르다는 거지요. 우리 사역자들이 목회를 하고 선교를 하고 복음을 전하는데도 결국 보면 1년이나 2년이나 몇 년이 지난 뒤에 하나님의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한 일들은 사역자들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니까 어떤 문제가 생겨도 믿음이 되는 거예요. 이건 내가 시작한 것이 아니니까 하나님이 하게 한 것이니까 너무 감사하다는 거지요.
만일에 여러분이 어느 큰 부자집의 종으로 있는데 주인이 여러분에게 집 산에다가 땅콩을 심으라고 주인이 말씀을 하신다면 여러분이 그 땅콩을 심는다면 주인이 심으라고 했을 때 땅콩을 심었다면 잘 돼도 주인의 문제고 못 되어도 내가 걱정해야 할 것이 없는 거예요. 그러나 반대로 주인이 땅콩을 심으라고 했는데 내가 땅콩을 안 심고 ‘아이 거기 무슨 땅콩을 심어? 거긴 목화가 잘 되는데...’ 하고 목화를 심어놓으면 이제 잘 되어도 문제고 못 되어도 문제라는 거지요.
그러니까 진짜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로 말미암아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잘 되든 안되든 감사하고 주님에게 책임이 있고 자기는 쉬니까요. 그리고 이건 하나님의 뜻이니까 이룰줄을 믿는 마음에 담대해지고 또 이런저런 문제가 일어나는게 사실이지만 그럴지라도 그런 모든 문제를 주님이 다 해결하시니까 너무 은혜롭다는 거지요. 그러나 우리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이끌림, 하나님의 말씀이나 영의 인도가 없는 사람들은 불가피하게 내 인간의 방법으로 일을 하다보니까 일이 잘 안 되고 어려워도 문제고 잘 되어도 그게 문제가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금식하고 또 말씀에 깊이 젖고 하는 그런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 믿음의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 건 두려워서 감히 일을 하지를 못하고 하나님이 내게 보여주시는 그걸 가지고 일을 해야하기 때문에 정말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구하고 찾고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거지요.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기도의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저런 일로 바쁘고 이래서 기도가 줄어들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이 줄고 그러면서 우리 마음에 믿음이,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가 내게서 멀어지면서 그때 우리 속에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하면 내 인간의 방법이 일어나고 내 수단이 일어나기 때문에 여기 말씀대로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그 이야기가 없어지고 “내 인간의 수단이나 방법을 따라” 로 변하는 거예요.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로 내려간 게 아니고 그들이 참 편리해서, 좋아서 그들의 방법으로 실루기아로 내려갔다면 그 뒤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주님의 책임이 아니고 자기 책임인데 반대로 주님이 모든 걸 맡으셔서 인도함을 받는다면 진짜 평안하고 복된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거지요.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금년에 저희들 선교회에 참 큰 행사들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연말에 북경 칸타타뿐 아니라 다녀와서 한국내 칸타타가 있고 단기선교사 훈련도 있고 대학생 캠프도 있고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있는데 여러분 많은 일들이 있지만 여러분이 하던 일을 좀 두고 정말 하나님의 뜻을 묻고 기도하고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 여러분이 일을 한다면 너무너무 복되고 은혜로울 줄을 믿어서 사도행전 13장 4절에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이 말씀을 여러분에게 전했습니다.
이 바울과 바나바만 말고 우리도 선교회에서도 가라고 하지만 성령께서 여러분을 인도하는 그 음성을 듣고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서 살고 이끌림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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