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3장 5절
룻이 시모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 하니라
때때로 우리가 복음 안에 살다 보면 우리는 그냥 우리 기준에 맞는 내 생각을 따라 사는데는 별 무리가 없지만 내 생각에 맞지 않는, 또 나하고 다른 어떤 길을 선택해 가라고 할 때 굉장히 마음에 부담과 무리가 되는데. 룻의 시모 나오미가 룻에게 말하기를 "내 딸아 내가 너로 복되게 하여야하지 않겠느냐." 그 부분에는 룻이나 나오미가 마음이 동일한데, 나오미가 하는 이야기가 너와 함께 하던 시녀를 둔 그 보아스가 오늘 저녁에 보리를 까부는데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옷을 입고 가서 잠자리를 봐 두었다가 보아스가 잠잘 때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들어가 누워라 하는 그런 지시를 나오미가 했습니다.
어느 여자라도 그런 이야기 들으면 `아이고 저 보아스가 나를 어떻게 보겠나, 이 여자 환장한 여자가 아니냐, 남자 자는데 그 이불 밑에 들어가다니 말이 안돼.` 아마 그런 기준들이 참 많이 있고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부담스럽고 내키지 않는 일인데도 룻의 마음에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는 그 말이 너무 귀하고 아름답다는 거지요. 물론 이것은 어머니를 믿는 믿음에서 일어났고, 두 번째는 자기 자신의 모든 생각을 버린 상태에서만이 가능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 속에 매일매일 성령으로 역사 하시고, 하나님이 나타나시고, 그 은혜 베푸시기를 참 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 그런 은혜를 나타내시기 원하시는데, 문제는 우리 마음이 그 하나님의 마음과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할 때마다 부담스럽고 어렵다는 거지요.
오늘도 제가 선교학생들과 이야기하면서 사도행전 9장에서 아나니아에게 너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을 만나라 했을 때 그건 너무 부담스러운 일이었고, 그 다음에 여기 룻에게 시어미가 `너 가서 보아스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들어가 누워라.` 이건 너무너무 부담스러운 이야기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거지요. 그런데 이 성경에 보면 "룻이 시모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이건 어머니와 마음을 같이했고 자기 생각을 버리고 마음을 같이한 사람들 속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라는 거지요.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했을 때 노아가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왜 방주를 만들지 못했고 왜 방주에 들어가지 못했습니까. 그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각과 자기 주관을 믿었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우리는 이론적으로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내 생각을 잘 벗어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한 번은 한 형제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부산에서 집회하고 교제를 하면서 `형제, 형제 아들이 어느 정도로 악해야 버리겠느냐` 내가 물어봤어요. 아버지를 때린다든지 나쁜 짓 한다든지 허랑방탕 한다든지 그렇게 할지라도 쉽게 아들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없을 거예요. `저놈의 자식, 나가라 이놈아. 너는 내 아들이 아니야.` 그러면서도 또 한 쪽으로는 저게 좀 변해 오기를 바라고, 그 아들에게 마음을 다 버리고 아예 아들을 포기하는 것이 절대 쉽게 되어지지는 않습니다. 내 쫓고 나면서도 돌아오기를 바라고 또 마음을 돌이켜 돌아오지 않나. 그 아들에게 진짜 넌 이젠 마지막이라고 말을 해도 진짜 마지막으로 아들을 버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 내가 저 놈을 버려야하는데 왜 내가 저걸 믿었던고.` 그런 수없이 많은 후회를 반복하는데 그래도 아들에게 미련을 가질 수 있는 건데, 우리가 우리 아들을 버리는 것처럼 내 자신을 버리는 것도 그냥 단순하게 `아, 내 육체 괴롭다. 더럽다.` 깨달아서 그냥 버려지는 건 아닙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내 육체를 봤을 때, 아 이 육체는 정말 이건 안돼. 이 놈은 진짜 안돼. 이건 진짜 나를 망하게 하는 거야. 육체가 하나님을 거스르고 대적하는 그것을 충분히 경험하고 정말 안돼, 안돼 그러면서 여러차례 이제는 정말 더 이상 내 육체에 기대를 안 가질 거야 그러면서 또 기대를 가지고. 그러기를 수없이 한 뒤에 드디어 내가 이젠 뭐라 그래도 육체의 생각은 안 따를 거야. 그러면서 자기 자신을 부인하게될 때 그런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전부 부인하게 될 때 그때 어떤 말이 나오냐면 룻이 시모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그 말이 중심에서 입에서 나오게 되고 그 때 정말 자기 생각과 달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고, 그럴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우리 생각들이 하나님을 많이 거스르기 때문에 힘있게 하나님 믿는 믿음으로 달려나가지 못하도록 사단은 계속해서 우리 속에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냐면 내 자신에게서 깡패아들을 두었을 때 그 아들에게 수없이 고통을 겪고, 속고, 그러면서도 아들에게 기대를 두고, 또 변할 것을 기다리고 그런 것처럼 우리도 쉽게 우리자신을 꺾지 못하고 우리 자신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또 이번에는 될 것 같고, 이번에는 기대를 둘만하고, 그렇게 속으면서 수없이, 수없이 많이 속고 속으면서 이젠 진짜 내가 육체를 못 믿겠다는 그런 마음이 들어 내 육체를 부인하게 되었을 그때 비로소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게 되고 무슨 말씀을 하든지 그대로 다 행하리이다` 그런 일이 우리 속에 일어나 진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육이 악한 줄 알지만 아직까지 육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육을 사랑하면서 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룻은 자기가 육을 버렸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어떻게 시모에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자기 자신의 생각을 다 버렸을 때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그리고 그 날부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서 정말 복된 가정의 보아스 아내가 된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우리의 삶 속에서도 정말 내 자신의 육의 많은 것을 그냥 흘려버리지 말고 육의 악하고 추한 것을 깨닫고 진절머리를 내고 거기 기대를 끊었을 때,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서 그때부터 성령의 역사가 우리 속에 힘있게 일어날줄로 믿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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