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간증)
몇개월 전 어느 학회에서 보내온 한글 킹 제임스 성경 소개
책자를 받아 읽어 보았다.
그 곳에는 "루터와 칼빈 .요한 웨슬레. 찰스 스펄전. 찰스피니.
조나단 에드워드. 허드슨 테일러. d.l 무디.빌 선데이.죠지 뮬러 등이
이 성경을 읽었고,
우리가 읽는 한글 개역 성경과 30.000군데가 다르다고 써놓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다르다는 35곳을 예를 들어 개역 한글 성경과 비교해 놓았다.
그것을 자세히 읽어보니 참고는 되었다.
표현이 다른 곳이 있었지만 그 본래의 뜻은 성경 전체의 흐름을 살펴보아,
성경을 기록하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능히 그 뜻을 이미 정확히 이해하고
이미 풀리었던 내용들 이었다.
한글 개역 성경이 성경을 기록하신 성령님의 지혜와 감동으로 번역 되었다고
확신하는 증거를 나의 체험을 살펴보아 확증하게 된 사실을 간증하고자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고 부터 처절하게
영원한 진리를 찾아 헤매었다.진리를 찾을까하여 세계 고전문학.철학.
번역된 불경까지 구해 읽고 단전호흡과 선을 수행하여 무아(寂滅)의
경지에 들기도 했다.
이 경지에 들면 세상은 고요하고 아무 생각없고 눈앞에
아무 상도 보이지 않는 조요한 옅은 회색이다.
육신의 아무 감각없고 완전한 휴식이다.
나라는 관념도 없고 육신의 감각도 없다.숨쉬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이고
숨은 코끝을 스치는 적은 양으로도 충분하다.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느끼지 못하지만 내가 존재 한다는 인식만 남아 있을 뿐이다.참으로 평안하다.
그러나 내가 깨어나고 싶을 때에는 언제든지 깨어날 수 있다.
각성하고 나면 몇시간 같은 자세로 좌선한 다리가 굳어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직조공장 돌아 가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고 세상 생각이 몰려온다.
그것도 허무한 일이다.신기하여 몇달 즐기다가 그만 두었다.
불경에 탐닉하기도 했지만 석가모니는 수행자의 결혼을 단호히 금했다.
우주만물이 음양이 있고 결혼해서 사는 것이 우주의 질서인데
그것을 거역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아 읽든 불경도 태워 버리고
그 후로 신약성경을 한번 읽어 보기도 했다.
대학 2학년 때에는 40일 여름방학동안 40권의 책을 읽고
밀턴의 "실락원" 단테의 "신곡"같이 분량이 많고 좀 난해한
책은 새벽까지 읽기도 했다.
또한 선하고 의롭게 살려고 노력했으며 친구들도 나를 정의파라고 불렀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했다.(어머니께서 교회에 나가 시니까
나도 몇달 교회에 나가기도 했음).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기도 했다.
"하나님! 저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십시요. 그러면 많은 사람에게
전하겠습니다."라고,
돌이켜 보면 하나님은 그 기도에 성실하게 응답하셨다.
지금부터 23년전에 죄사함 받은 간증을 쓰고자 하는데 그
전 후를 자세히 쓰자면 요약해서 쓴다해도 100장은 써야 겠지만
죄사함 받은 순간을 중심으로 간단히 써 보고자 한다.
120분짜리 영화중 10분정도만 보아서는
그 전후를 다 이해 하기는 불가능 하지만 다같이 이해할 수있는
죄사함의 순간을 써보겠다.
어느 날 저녁 기도하든 중 십자가에 양팔을 벌리고 못밖혀 피흘리고
있는 예수님의 환상을 보았다.
`저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데..... 죄가없는 분이라는데.....인류를
구하기 위 해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 주시고 우리를 부르고 있지않은가!`
그때 중학교때 읽은 "의사지바고" 라는 책에서 읽은 시 한구절이 떠올랐다.
"하고 많은 인류의 죄를 감당키위해 십자가의 양극으로 손을 뻗치셧는가!"
나를 간절히 부르는 주님 사랑의 심령이 내 영혼속에 비춰 들어왔다.
그리고 진정한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5살때 부터 19살까지의 죄된 모습들이,까맣게 잊었고 그
이후 한번도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일들이
그때 그때의 장면과 느낌도 생생하게 영화 필름돌리듯 차례차례 펼쳐져 나갔다.(시 50:21)
그때 제 심장은 두려움으로 얼어 붙어 멈추는듯 긴장하고 숨을 죽였다.
"저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세포하나 피 한방울 머리카락 하나까지
죄 덩어리요. 어쩔수 없는 행악의 종자입니다."
"저를 영원한 지옥에 던져 넣는다해도 하나님을
조금도 원망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라고 실토했다.
어쩔수 없는 내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하였다.
"내 영혼을 영원히 하나님의 손에 맡깁니다.내 영혼을 받으셔서
하나님 뜻대로 하옵 소서!"라고.
그 때의 상황과 느낌을 자세히 쓴다면 글이 꽤 길어질 것이다.
그후 내 영혼에 빛을 비춰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충만한 기쁨이 있었다.
그 후로 나는 13년간이나 참으로 의롭고 선하게 살려고 최선을 다해 살았다.
아내와 함께 백일된 딸을 데리고 삼각산 제일 기도원에서
초교파로 여러 목사님들이 주관하는 연합집회에 1주일간 참석하기도 했다.
그후 전도 소책자도 수천권씩 몇번 만들어 전국교회에 발송하기도 했다.
그때 낸 책자중에 "십자가의 진리" 라는 제목의 책도 있었다.
그 책을 읽고 그때 한국신학대학장 김정준 박사께서 답장을 보내 주셨다.
"보내주신 `십자가의 진리` 잘 받았습니다.하나님 말씀을 중심하고
쓰신 귀한 글 이라 믿습니다.널리펴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구원의 복음을 얻기를 바랍니다."라고 답장을 보내오기도 했고
김장환목사님등 여러
목사님들이 감사와 격려의 답장을 보내왔다.
지금 읽어 보아도 이론적으로는 흠잡을 데없는 복음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때까지 죄사함을 받지 못했었다.
그 때에는 인권옹호 주간이 있었고 세계 인권의 날 행사도 크게했다.
그 주간에 우리군에서 경찰 한명 .검찰직원 한명.교사 한명 이렇게
상을 받게 되었는데 교사중에서는 내가 상을 받게 되었으니
나오라는 것이다.
학생수업을 않고 상을 받으러 갈수 없다고 가지 않았다.
그 날은 다른 선생님이 대신 받았단다.
그 이튿날 교육장님이 검찰지청장으로 부터 협조하지 않았다고
책망을 들었다고 나오라고 하여 교육청으로 가 학무과장과 함께
검찰청으로 가서 상장과 부상을 받아왔다.
그때는 지청장이 세게 인권옹호협회 대한민국 우리군 지부장이었었다.
그렇게 의롭게 살려는 노력은 계속되었다.
그러든중 어느날 광고를 보고 복음을 전하는 집회에 참석하게 되고
교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한결같이 내가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몇개월간 교회를 인도하는 분과 논쟁을 벌였다.
이론적으론 내가 우세한듯 하기도 하였다.
나는 "만약 나같은 사람이 구원받지 못했고 천국에 못 간다면
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 나는 나의 의와 성경 지식을 내세워 고집했다.
그 인도자는 지쳐서 나를 돌려 놨다.지금 말하면 왕따가 된 것이다.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어느날 저녘 욥기을 읽게 되었다.
그 의로운 욥이 마음에 들어 몇시간인지 탐독하여 읽었다.
"내가 내 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일평생 내 마음이
나를 책망치 아니 하리라."(욥 27:6)는 대목과 32장에서
자기 의를 주장하는 대목은 더욱 마음에 들었다. 나와 같다.
죽 읽어 가는데 끝에 가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 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 하나이다."
다 읽고 나는 눈물을 흘렸다.
나도 의롭게 살을려고 노력은 했지만 욥만은 못하다.
그런데 욥은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지 않는가!
내가 얼마나 교만하게 나의 의로 하나님을 도전 했던가.
깊이 뉘우치고 회개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반석과 같은 말씀을 믿음으로
구원 받은 적이 없지 않은가?"
그러나 한편 기뻤다.
실마리를 잡은 것이다. 그렇다. 말씀의 터 위에 서야 한다.
그 다음 날 아침 나는 이불속에서 손에 머리를 묻고 기도 하며 묵상했다.
그때 나의 지난날 긴세월 찾아 헤매이며 방황했던 일들이 뇌리를 스쳐 갔다.
`속았구나. 감쪽같이 속았구나.`
나는 흐느껴 울고 또 울었다.
얼마 후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감쪽같이 속은 나의 모습이 너무나 우스웠다.
누가 들으면 돌았다고 할까봐 이불을 뒤집어 쓰고 실컷 웃었다.
아침 밥상 앞에서도 웃음을 참느라고 애썼다.
`내가 지금 죽으면 지옥에 가겠구나!`
가슴속으로 부터 온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지옥의 문턱에 서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두려웠다.너무 긴장되어
손에서는 식은 땀이 번져 흘렀다.
그렇게 고통하기를 며칠 겨울 방학이 끝나갈 무렵 2월 4일
당직이라 학교에 갔다.
책상에 앉아 생활기록부를 쓰고 있는데.....
아주작고 부드럽고 세미한 소리가 분명하게 내 왼쪽 귀에서 전파와 같이
나의 머리속 골수를 물결같이 조용히 진동 시키며 뚫고 지나갔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그때 내 눈앞에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예루살렘 성을 나오시는
예수님의 환상이 또렷이 보였다.
그 순간 나는 알게 되었다.
`예수님이 지신 저 십자가 저것이 세상죄(온세상죄.온 인류의 죄)구나`하고
`그렇다면 내 죄도 저기에....!`
다음 순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라는
말씀이 내 머리에 번개처럼 떠올랐다.
아! 내 어깨를 짓누르든 내 어깨에 응어리졌든 죄가 벗겨져 흘러 내렸다.
긴장이 풀렸다.
손에 힘이빠져 도저히 펜을 쥘 힘도없다. 나는 생활 기록부를 덮고
숙직실로 갔다.
그리고 숙직실에 드러누웠다.
아! 이평화 이 포근함.흰구름에 싸여 푸른하늘에 떠있는 듯한 이 평안함!
이날이 1977년 2월 4일 오전 11시경 이었다.
내 일생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평안함.
어려서(5-6세) 농촌에서 어느 봄날 바느질하는 어머니 옆에서 낮잠을 자고
깨었을때 마당에선 암탉 알 젖는 소리가 "꼬-옥 꼭" 들리는
그 평안함이 생각 났다.
그 날부터 내 가슴 속은 알수 없는 시원함이 넘쳐 흘렀다.
내 가슴속에 물파스를 들어 부은 것일까?
그 시원함은 한 삼개월여 계속 되었다.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넘쳐 흘렀다.
나는 하나님께 간구했다.
"하나님 이 기쁨을 거둬 주십시요. 이 넘치는 기쁨을 주체 할수 없습니다.
학교에 가서 일도 해야 하고 세상을 살아 가야 하는데 세상에 적응해
살수 없을것 같아요."라고
그날 부터 하루에 세시간 밖에 자지 않고 3개월여 성경을 읽었다.
눈으로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내 생명이 생명의 말씀을 빨아 들리는 것 같았다.
그 후로 23년 천로역정 순례의 길을 걸어왔다.
한번 이 간증을 간단히 써보고자 해도 어느정도 잘라 요약을 해야 할찌
엄두가 나지않아 망설이다 포기하곤 했는데.....!
오늘 기쁜소식 선교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이 글을 올리기
한시간반여 죄사함의 간증을 거의 마무리 하게 되었다.
이것도 우연일 수없는 주님의 뜻이라 생각하여 하늘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나는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한 1:29)라는
말씀과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히9:12)라는 말씀으로 구원을 받았다.
요한복음 1:29절의 말씀은 구원의 주님이 오시는 길을 예비하고
평탄케하기위해 하늘 아버지께서 보내신 마지막 선지자 세례요한이
예수님에 대해 증거하는 말씀이기에 중대하다. 예수님의 오심은 구약과 율법의
증거를 받아 오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글 킹제임스 성경에는 그 구절이 어떻게 기록 되었는지 궁금하여
기독교 서점에 가서 그 구절을 찾아 보았드니
"보라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번역 되어 있었다.
어느 것이 영적이고 정확한 번역인지는 이 글을 읽는 독자님 들에게 맡기겠다.
제사장이 어린양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짊어 지워(레위16:21-22)광야로 보내 죽게 했든
구약 율법의 모형으로 보나 우리에게 알기쉬운 "지고가는"이라는 이 표현이
"제거하는"이란 표현보다 얼마나 우리에게 친근하고 이해하기 쉬운가!
만약"세상 죄를 제거하는"는 표현의 말씀만이 하나님의 말씀 이라면
그날 성령님은 그 성경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 하셨을텐데
개역 한글 성경을 인용하여 말씀하셨고 나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이라고 기록된 말씀으로 구원을 받았다.
죄사함도 유별나게 받았기에 나는 이 간증 하기를 망설여 왔는데
오늘 털어 놓으니 마음이 개운하고 짐을 벗은 것 같은 홀가분한 마음이 되었다.
2000-4-13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