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여를 인터넷을 통해...
나는 1968.1.28일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태어났다. 위로 누님 세 분, 형이 세 분 있고 나는 막내로 자랐다. 우리는 유교 집안으로 내가 중1때 누나들이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를 제일 먼저 전도했다. 1년 동안 중등부에 참석을 했지만 마음에 끌리지 않아 다니지 않다가 대학생이 되던 87년도부터 그 교회에 다시 다녔다. 그 교회에는 신학대학에 다니던 선배가 있었는데 내게 너무 잘 대해주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저럴 것이다’라고 생각될 정도로 나의 신앙의 기준이 되었다. 그래서 교회에 가는 것이 좋았고 그 선배를 따라 예수전도단 집회도 따라 다니고 거기서 듣는 말씀과 찬양이 나를 변화 시킬 것으로 믿었다. 그 선배는 지금 찬양 사역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학교에서 같은 과 동기로서 부천평강교회를 다니고 있던 윤종수(현재 케냐 나이로비교회 선교사)를 만나 복음에 대해 들었지만 내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홍제동에 있던 서대문중앙교회에 가서 교제를 했지만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군에 입대하여 철원에서 생활했다. 군대에서도 거의 빠지지 않고 교회에 다녔다. 대대 군종병이 설교도 잘하고 대학교 선배여서 ‘신앙생활은 저렇게 하는 것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우리 소대에도 신학대학을 다니다 온 고참이 있었는데 그 사람도 생활에 모범을 보여 나도 이런 사람들처럼 해야겠다고 마음도 먹었다. 그러나 나는 죄에 약하고 뭔가 불안했다. 제대를 하고 복학을 했지만 장래에 대한 불안감에 학교생활이 재미가 없었다. 전기과가 적성에도 맞지않고 다른 쪽으로 바꿔보려고도 했으나 그게 되지 않았다. 신앙생활은 내가 열심히 안 해서 엉망인 것이지 내가 열심히만 하면 변화될 것이라고 생각 했다. 겨우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해서 2년 6개월만에 결혼을 했고 이제 3년이 다되어 간다. 우리 부부는 교회를 통해 우리누나와 손아래 처남의 중매로 만나 별 탈없이 지내왔다. 귀여운 아들도 주셨다. 그런데 신앙생활은 영 죽어 있는 것 같고 삶에 기쁨이 없었다. 구원이 막연하기만 하고 말씀은 점점 나와 멀게 느껴졌다. 이제는 교회만 왔다 갔다 하다가 망할 것만 같았다.
그러던 중 올해 9월 15일 인터넷에서 기쁜소식선교회에 들어가 보았다. 홈에서 박옥수목사님의 LA대전도집회 말씀을 열어 밤새워 들었다.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말씀이었다. 내 마음에 그 말씀이 인정이 되고 계속 듣고 싶은 마음이 있어 2달여를 인터넷을 통해 인천대전도집회 말씀과 여러 간증을 보고 죄 사함은 이렇게 받는 거구나 하고 믿게 되었다. 사는 집에서 가까운 서대문중앙교회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11월 5일 서대문중앙교회를 13년만에 찾아갔고 말씀을 들었다. 목사님과 복음에 대해 교제를 나누었다. 88체육관집회도 저녁시간에 참석하여 말씀을 들었다. 예수님이 나의 모든 죄를 위해 피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하고 내가 구원 받기 위해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 감사했다. 세례 요한이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 우리의 모든 죄를 넘겨 주심으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신 것이 믿어졌다. 예전에는 찬송가를 무심코 불렀는데 찬송가의 가사 복음을 증거하고 있었다. 이제는 죄 사함받고 거듭나 내게 있는 문제들이 내 문제가 아닌 하나님의 문제들로 하나님이 어떻게 이끄실지 기대된다. 첫 단추를 잘못 채우고 헤메던 나를 복음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 이 전 글 곰탕집이라고 다같은 곰탕집은 아니네...
- 다 음 글 채팅을 통해서 얻은 구원 / 박성애 (기쁜소식강남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