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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소식선교회 잘 알고 계십니까?

기쁜소식선교회 태동

1. 한국 기독교의 시작

자유주의 신학에 초점을 맞추어 사회를 개혁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던 시대

한국의 기독교는 1884년 공관 자격으로 입국하여 후에 고종이 이름을 지어준 광혜원(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을 설립한 알렌 선교사(미국 북장로교 소속)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미국 선교사들이 파송되어 기독교가 전파되었다. 당시 한국에 파견된 미국 선교사들의 대부분은 미국을 장악한 자유주의 신학에 물든 교회에서 보낸 선교사들이었다. 그들은 순수하게 복음을 전하는 일보다, 병원이나 대학을 세우는 등 사회사업에 치중했다.

결국 한국 교회는 대부분 당시 미국에 만연된 자유주의 신학에 뿌리를 두고 시작하게 되었다. 오늘날도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영향을 받아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는 종교 다원주의를 바탕으로 세계종교통합을 목적으로 하는 세계교회협의회(WCC)에 가입된 한국 교회들도 많다.(2012년에는 총회가 한국 부산에서 개최된다.), 대부분의 한국 교회들이 인본주의와 한국의 기복신앙에 영향을 받아 외형적인 축복에 치중되어, 죄에서의 구원 문제를 명확하게 해결해 주지 못해 한국교회가 비기독교인들에게 지탄받는 상황까지 이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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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쁜소식선교회의 시작

기독교 신앙의 기본은 거듭남이나 구원의 믿음

1954년 8월, 챨스 스터드의 후계자이자 2대 웩 선교회 회장인 놀만 그랍(Norman P. Grubb)은 청소년 부흥사로 유명한 제이 짤비스 박사(미국 침례교 소속)의 권유로 한국을 처음 방문하여 대구 주암산 기도원에서 가진 부흥회에 참석했다.

▲ 케이스 글라스 선교사와 소년 박옥수

그때 놀만 그랍은 처음으로 한국 교회와 기독교인들을 대면하게 되었는데, 당시 집회에 모인 1,000여명의 한국 교인들 대부분이 기독교 신앙의 기본인 거듭남이나 구원의 믿음에는 관심이 없이, 인간의 열심과 행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사실에 놀랐다. 이것이 세계 최대의 선교 단체 중 하나인 웩 선교회 회장 놀만 그랍의 눈에 비친 당시 한국 교회의 영적 실상이었다.

그 후 놀만 그랍은 케이스 글라스를 한국의 첫 웩 선교사로 1956년 한국에 발을 내딛게 한다.(‘복음은 철의 장막을 뚫고’ 라는 책의 저자이자 공산화된 동유럽에 생명의 걸고 선교하여 ‘복음의 밀수꾼’으로 유명한 브라더 앤드류가 케이스 글라스 선교사의 친구로 웩 선교회에서 함께 훈련을 받았다.)

경북 선산에서 선교를 한 케이스 글라스 선교사는, 당시 선산장로교회의 중등부 학생이었던 박옥수 목사가 거듭나는데 큰 영향을 주었으며, 박옥수 목사는 거듭난 후 케이스 글라스 선교사를 포함하여 복음주의 선교사들이 세운 선교학교에 1기생으로 훈련을 받은 후 졸업하여 1971년 목사 안수를 받았고, 선교사들이 모두 본국으로 돌아간 1976년부터 선교학교를 인수하면서 기쁜소식선교회가 태동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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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직 믿음에만 초점을 맞춘 선교학교

"정말 하나님의 종이라면 필요한 것을 사람에게 암시도 하지 말고 하나님께만 구해라!"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만 구하여 얻는 것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만 구하여 얻는 것이 생활의 철칙이었다는 것이다. 선교사들마다 학생들에게 누누히 강조했다. 그래서 학생들은 양식이 떨어졌을 때 가까운 곳에 집이 있어도 도움을 구하지 못 했고, 누구에게든 도움을 구하는 언지만 해도 문제가 되었다. 하나님 외에 기대를 두는 그 자체가 부끄러움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훈련은 어느 신학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믿음의 과정이었지만, 믿음을 얻는데 초점을 맞추지 못한 학생들은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다.

교육의 초점이 성경 말씀 자체였다

둘째로 주목되는 부분은, 교육의 초점이 성경 말씀 자체였다는 것이다. 선교사들은 성경 말씀만으로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끌고 성도들을 영적으로 양육해야 될 복음 전도자들이 말씀이 아닌 다른 어떤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을 용납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비록 선교학생들 대부분이 나이가 어렸지만, 그들을 만나는 사람들마다 성경 말씀에 능통하고 깊이 있는 선교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놀라곤 했다.

구원의 믿음을 얻게 하는 복음 전도였다

선교학생들이 개인적으로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여 구원의 믿음을 얻게 하는 복음 전도였다. 당시 전도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을 교회로 이끌어 교인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당시 선교사들은, 대부분 형식적인 교회에 속해 믿음 없이 살다가 거듭난 전도자들과의 신앙 상담을 통해 참된 믿음을 얻고 거듭남을 체험했기에 한국 교회와 교인들의 영적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특히, 교회를 오랫동안 다녔어도 죄의 문제로 고통하다가 참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신들이 얻은 믿음과 그로 인한 기쁨을 고백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기존 전도 방식에 사로잡혀 있는 한국 교회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특이한 현상이었다.

참고이미지 / 복음주의 계보


복음주의 계보 이미지

기쁜소식선교회의 시작은 영국과 미국 등 복음주의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아 시작되었다. 철저하게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믿음의 삶을 기본으로 한 신앙을 바탕으로 전도자를 양성하며 복음을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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