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기쁜소식선교회의 토대 - Part 2


지난 번에도 언급했듯이, 기쁜소식선교회는 박옥수 목사의 믿음과 영적 감각을 토대로 형성되었다. 그렇기에 기쁜소식선교회에 대해 바르게 알려면 박옥수 목사의 신앙관을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박옥수 목사는 '속죄 목사'라는 별명처럼, 기독교 신앙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부분에 신앙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수많은 교회들의 타락 속에서 기쁜소식선교회가 교회 개혁의 선두에 설 수 있도록 이끌어 왔다. 그의 신앙관의 형성 배경부터 시작해서, 그의 믿음과 영적 감각을 상, 중, 하로 나누어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1) 박옥수 목사의 신앙의 초점과 형성 배경

"거듭나기 전 제가 다녔던 교회에서는 목사님이든, 장로님이든 죄인인 것을 당연시했습니다. 모두 죄를 짓고 난 후 용서를 구하는 회개 기도만 했지, 심각하게 죄에 대해 고민하고 온전히 죄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 죄를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죄를 짓지 않으려고 발버둥도 쳤고, 상담도 했고, 회개 기도도 했고, 봉사도 했습니다. 그러나 죄가 해결되지 않아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박옥수 목사, 2001년 4월호 월간중앙 '한국 기독교 뉴리더' 중)

박옥수 목사는 처녀 시절부터 교회를 다녔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고향 선산의 장로교회를 다녔지만, 죄 문제로 인해 늘 가책과 고통을 받았다. 당시 대부분의 한국 교회에서는 죄에 대한 해결책으로 회개 기도는 가르쳤지만, 예수님의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 단번에 이루어지는 영원한 속죄(히 9:12)는 알지 못했다. 더 심각한 것은 교회를 다니고 예수님을 믿는다고만 하면 누구나 구원을 받은 것으로 인정해준 것이다. 하지만 케이스 글라스 선교사를 통해 구원 여부를 지적 받은 청년 박옥수는 자신의 죄와 구원 문제를 심상히 여길 수 없었다. 그래서 목회자와의 개인 상담, 철저한 회개 기도, 철야 및 금식 기도, 봉사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사용하여 죄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가 다녔던 교회에서는 그의 죄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참된 복음이 없었다. 그로 인해 박옥수 청년은 1962년에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그 해 10월 7일 새벽 기도회 중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2천년 전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으셨다는 말씀을 믿음으로 모든 죄를 해결 받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후에 박옥수 목사의 마음에 죄 문제로 고통 받는 이들을 향한 안타까움과 함께 그들에게 복음을 통해 온전한 속죄의 기쁨을 전해주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갖게 해주었다. 그런 열망이 자연스럽게 그의 신앙과 사역의 초점을 죄 사함의 복음 전도에 맞추도록 해주었고, 그로 인해 '속죄 목사'란 별명도 얻는다. 중요한 사실은, 기독교 역사상 하나님이 복음을 위해 쓰신 전도자들 대부분이 복음적이지 못한 교회에 속해 있을 때 죄와 구원 문제를 해결하고자 온 마음을 쏟았다는 것이다.

"나는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어떠한 고행이라도 실천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수도원의 규칙을 철저히 지켰다. 누군가 수도원 생활로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면 그건 바로 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수도원에서 가르친 규칙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었다. 오히려 그 생활을 계속 했다면 너무 지쳐서 죽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수도원의 가르침보다 성경 자체를 살펴보고자 갈망했다. 후에 로마카톨릭의 교리가 성경과 너무나 다른 것을 발견하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마르틴 루터)


"나는 선교사로 인디언들을 건지기 위해 왔지만, 나는 누가 건져줄 것인가? 보라! 난 내 모든 소유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했다. 부귀와 명예, 안락과 명성을 버린 채 넘치게 수고하고 고난도 달게 받았다. 나는 비록 영국 국교회 목사였지만, 그리스도의 공로가 나의 모든 죄를 사했다는 믿음이 없었다. 내 마음에는 여전히 죄가 남아 있었다. 결국, 나는 내 구원의 문제를 도와줄 수 있는 자를 찾아야만 했다."(존 웨슬리)

 

"나는 청소년 시절, 5년 동안이나 죄로 인해 극심한 마음의 암흑기를 겪었다. 나는 기독교 국가와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죄 사함의 복음을 접하지 못했다. 나는 내가 살고 있던 도시의 교회들을 두루 다녔지만, 어느 곳에서도 내 죄를 해결해주는 복음을 들어보지 못했다. 나는 내 죄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교회를 찾을 수만 있다면 영국의 온 교회를 다 다니기로 작정했다."(찰스 스펄젼)


위와 같이, 하나님이 크게 쓰신 복음 전도자들의 자서전을 살펴보면, 한결같이 그들 마음에 죄와 구원 문제를 분명히 해결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죄를 용납하거나 적당히 죄 문제를 넘기려고 하지 않고 분명한 죄 사함의 길을 찾고 찾았던 것이다. 그렇게 죄에 대한 혐오감과 죄를 깨끗이 해결하고자 하는 열망이 결국 온전한 죄 사함의 은혜를 입게 해주었고, 모두가 영원한 속죄의 복음을 전하는 복음 전도에 자기 일생을 드렸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 교회들 속에서는 이러한 열망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적당히 회개 기도를 하면서 죄가 있어도 심상히 여긴 채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죄에 대한 심상한 마음, 그것이 오늘날 한국 교회의 타락과 부패의 온상인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대부분의 교인들이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니 거듭나지 못한 죄인의 상태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 영원한 속죄에 대한 복음을 접하면 오히려 거부감을 갖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2) 박옥수 목사의 신앙관 (上)

"그는 절대로 양보하려고 하지 않았다."(2002년 4월호 월간조선 '오효진의 인간탐험' 중

'신(新) 한국인 대상(大賞)' '참 목회자 상(像)' '21세기의 참된 목자' 등 박옥수 목사를 취재한 언론의 제목과 내용을 유심히 보면, 한결같이 외형보다는 그의 내면에 주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각 분야의 정상에 도달한 이들만 취재하며 인터뷰의 달인(達人)으로 유명한 월간조선의 오효진 씨(前 정부대변인)는 박옥수 목사와의 인터뷰에서 "목사님 같은 분은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 한국의 많은 목회자들이 썩었지만, 목사님은 타락하면 안 됩니다."라고 당부하면서, 후에 아래와 같이 인터뷰 말미를 작성했다.

"목사님, 우리 모두가 다 예수님 같으면 세상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살면 진짜 재미있지요!" 그는 절대로 양보하려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양보하지 않는 마음! 이 마음이 바로 박옥수 목사의 마음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신앙관 중 하나였다. 이 마음이 그의 인생을 좌우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어우러져, 숱한 교회들의 타락 속에서도 기쁜소식선교회를 개혁의 선두 주자로 이끌어 올 수 있었다. 물론, 이 마음은 저절로 형성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훈련되고 형성된 분명한 믿음의 마음이었다. 특히, 믿음에만 초점을 맞춘 거듭난 선교사들이 운영한 선교학교에서의 훈련이 그 마음에 바탕이 되었고, 그 이후에도 하나님은 여러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그의 마음을 다져주었다. 그래서 기쁜소식선교회가 태동하기 전까지 박옥수 목사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일관되게 그 마음이 작용되어 왔음을 발견할 수 있다.


"난 어릴 적부터 장로교회 안에서 자랐기에 장로교회의 운영이나 헌금 및 예배 형식 등을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하지만 거듭난 이후 내 마음에는 거듭난 하나님의 종들이 이끈 교회들의 모습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나, 존 웨슬리, 디엘 무디 등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은 종들이 이끈 교회들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습니다."(박옥수 목사, 2003년 5월호 신동아 '특집 인터뷰' 중)


무엇보다 박옥수 목사는 교회 형성과 운영에 큰 비중을 두었다. 자신도 복음적이지 못한 교회에서 고통을 받았고, 죄 문제로 고통하며 사는 여러 교인들, 특히 3년간의 군(軍) 생활 중 신앙의 갈등과 회의 속에서 방황하는 수많은 기독 청년들의 모습을 본 그의 마음에는 '이 시대에 가장 복음적이고 참된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라는 고민을 깊이 했다. 그리고 그러한 교회가 드문 한국 교회의 현실 속에서 그는 하나님 앞에 참된 복음적인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있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믿음이 아닌, 인위적이고 세속적인 것이 교회 안에 스며들지 않도록 온 마음을 쏟았다. 그 중 대표적인 사례 몇 가지만 언급해본다.



3) 가장 복음적이고 참된 교회에 대한 열망

1968년 6월, 박옥수 전도사가 군에서 막 제대했을 때 전부터 잘 알고 지냈던 원우현 씨(당시 어린이전도협회 총무)를 만났다. 당시 대부분의 한국 교회에 복음이 없다는 사실을 공감하고 있던 그는 '한국 교회의 복음화를 위해 장로교 신학교에 들어가 목사 안수를 받고 장로교회 안에서 복음을 전합시다.'라고 제안을 했다. 그때 박 전도사는 "사도 바울은 거듭난 후 율법적인 유대교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마르틴 루터 역시 타락한 천주교회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고, 요한 웨슬레 역시 구원 받은 후 영국 성공회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왜 당시 종교 지도자들과 합력하지 않으셨습니까? 모두가 타락한 기존 교회들의 미움과 핍박을 받을 것을 잘 알았지만, 타협보다 하나님 편에 서서 개혁을 부르짖지 않았습니까? 저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편에 서서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복음을 전할 것을 분명히 했다.

그 후 박옥수 전도사는 경북 도내의 복성동교회, 사후동교회, 남사교회, 외임리교회, 바란교회 등 5개 교회의 초청을 받아 어린이 선교를 시작한다. 그 순회 집회를 통해 1,000여명의 어린이들이 구원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본 박옥수 전도사는 '나는 한 평생 이 복음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진다. 그런데 사후동교회에서 집회를 할 때 그 교회 담당 선교사와 마찰이 일어났다. 그 선교사는 갓 제대한 박 전도사에게 집과 결혼, 장래까지 보장해주기로 약속하며 함께 복음의 일을 하기를 원했는데, 복음을 전해야 되는 가장 중요한 집회 셋째날, 장마철로 강물이 불면 아이들에게 위험할 것이라는 이유로 집회를 금지시켰다. 하지만 박 전도사는 복음을 전하고 싶은 열망을 억누를 수 없었다.

"선교사님, 저는 다른 것은 몰라도 하나님이 복음 전하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은 압니다. 만일 비 때문에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된다면 하나님이 그 비를 막으실 것입니다. 같이 그 일을 두고 기도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박 전도사는 교사들과 함께 기도회를 했는데,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그날 비가 오지 않아 집회를 할 수 있었고, 많은 어린이들이 구원을 받았다. 그런데 그 선교사는 구원의 역사보다 자신을 따르지 않는 부분을 불편히 여겼다. 그 모습을 본 박 전도사는 비록 약속 받은 것을 모두 잃더라도 하나님만을 믿는 믿음으로만 복음의 일을 하고자 그 선교사를 떠나 새롭게 어린이 선교를 시작한다. 그 후 25개 교회의 초청을 받아 어린이 선교를 계속 하면서 1만여 장의 구원 간증문을 받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된다. 


1969년 5월부터는 하나님의 인도로 김천에서 복음의 일을 시작하게 되는데, 당시 박 전도사는 방을 얻을만한 비용이 없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만을 바라며 방을 얻으러 다녔다. 그러다가 우연히 버스에서 영국인 선교사 존 앤더슨을 만났는데, 어딜 가느냐고 물으니 그냥 여행을 다니고 있다는 대답을 듣고는 크게 책망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온 선교사가 복음보다 여행에 마음을 둔 부분에 대한 것이었다. 그때 존 앤더슨 선교사는 그 책망을 달게 듣고는 박 전도사가 거처하는 집에 와서 일주일 동안 함께 지낸 후 다음과 같은 마음의 고백을 한다.


"내가 한국에 온 후 수많은 목회자들을 만나보았지만, 당신 같은 사람은 처음입니다. 비록 일주일 밖에 함께 하지 않았지만, 당신에게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신과 1년을 더 살고 싶습니다."
 

그 후 존 앤더슨 선교사는 35만원(당시 시세로 김천에 큰 저택을 살 수 있는 금액)을 선교비로 가지고 왔는데, 박 전도사는 그때 이렇게 당부하며 복음 전도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히고 함께 복음의 일을 하게 된다. 


"선교사님, 저는 하나님께 방을 얻을 비용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만일 선교사님 마음에 하나님이 제게 이 돈을 주시기를 원한다는 마음이 있으면 주시고, 그렇지 않으면 가져가십시오. 저는 하나님으로부터 받고 싶지, 선교사님에게 받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만으로 복음의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이처럼 박옥수 목사의 마음 중심에 형성된 신앙관과 참된 교회를 향한 열망이 기쁜소식선교회의 토대가 되었다. 그로 인해 기쁜소식선교회는 복음적이지 못한 기존 교단들과 구별된 채 독립 교단으로, 기독교 역사상 복음의 일에 힘 있게 쓰임 받은 하나님의 종들이 걸어간 개혁의 길을 선두에 서서 걷고 있다. 지금도 박옥수 목사는 한국 교회에 대한 개혁과 아울러 자신은 물론, 기쁜소식선교회의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에게 일어나는 하나님의 뜻과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결코 양보하지 않고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저는 싸움꾼입니다. 제 자신하고도 싸우고, 전도자들하고도 싸우고, 우리 교회 성도들하고도 싸웁니다. 믿음이 아닌 부분을 지적하면 사람들이 잘 안 받지요. 그러면 또 싸우게 됩니다."(박옥수 목사, 2002년 4월호 월간조선 '오효진의 인간탐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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