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기쁜소식선교회의 토대 - Part 1



1) 하나님이 쓰신 복음적인 교회들의 토대

인류 역사는 크게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BC(Before Christ, 주전(主前), 예수 그리스도 이전)와 AD(Anno Domini, 주후(主後), 예수 그리스도 이후)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님은 각 시대마다 당신의 종을 세워 그들을 통해 일해 오셨다. 예수님 이전에는 노아,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이사야, 엘리야, 엘리사, 사무엘 등이 있고, 예수님 이후는 베드로, 바울, 폴리갑, 존 위클리프, 얀 후스, 마르틴 루터, 존 녹스, 존 번연, 존 웨슬리, 챨스 스펄젼, 디엘 무디, 챨스 스터드 등이 있다. 특히,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쓰임 받은 하나님의 종들은 한결같이 복음 전도를 위한 하나님의 도구들이었다.


하나님은 복음을 향해 특심한 당신의 종들을 택하시고 훈련하셔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힘 있게 사용하셨다. 각 시대마다 하나님의 종들이 일어나 복음을 전하면서 그들을 통해 구원 받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면서 복음적인 교회들도 형성되었다.

예를 들어, 루터교회는 마르틴 루터(독일), 감리교회는 존 웨슬리(영국), 장로교회는 장 칼뱅(프랑스), 침례교회는 존 스미스(영국), 구세군은 윌리엄 부스(영국), 웩 선교회는 챨스 스터드(영국) 등이 바로 그것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창시자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모든 복음적인 교회들은 그들을 형성시킨 하나님의 종들이 그 토대이며, 교회들의 영적 상태 역시 창시자들의 영적 상태와 연결되어 있다.


대부분이 알다시피, 루터교회나 감리교회를 형성시킨 마르틴 루터나 존 웨슬리는 모두 분명히 거듭난 하나님의 종들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주력했다. 그래서 그들을 통해 형성된 장로교회나 감리교회도 복음 전도를 위해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았다.

그런데 주목해야 될 부분은, 초창기 복음적인 교회들의 모습과 현재 한국 교회들의 모습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다. 즉, 현재 한국의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등의 영적 상태와 초창기 복음적인 교회들의 영적 상태를 비교해보면 서로가 현저히 다른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차후 한국 교회사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한 가지만 대표적으로 든다면 감리교회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는 영국 성공회의 목사로 10여년 동안 복음과 상관없이 목회하다가 당시 복음적인 교회였던 '모라비안 교도'들을 통해 자신이 거듭나지 못한 것을 발견하고 런던 올더스케이트의 작은 예배당에서 1738년 5월 24일 거듭남을 체험했다. 그 후 웨슬리가 자신을 구원으로 인도한 복음의 진리를 전하면서 감리교회가 형성되었기에, 한국의 감리교회 교인들은 그 날을 매년 기념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의 감리교회 교인들 대부분이 존 웨슬리가 가진 거듭남의 체험이 없거나, 심지어 거듭남에 대해 너무나 무지하거나 거부감까지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한국의 많은 교인들은 초창기 복음적인 교회들의 일원이었던 그리스도인들이 가졌던 분명한 거듭남의 체험과 복음을 향한 열정 없이 형식적이고 율법적인 신앙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 이유들 중 가장 큰 이유는, 복음적인 교회들의 토대인 하나님의 종들이 가졌던 믿음이나 영적 감각이 오늘날 한국 교회와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의 종들이 가졌던 믿음과 영적 감각과 연결되어 있다면, 한국 교회는 초창기 복음적인 교회들처럼 복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날 한국 교회는 세상의 어두움과 부패를 몰아내고 막을 수 있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최근 한국 교회에 만연된 '교회 세습'이나 '금전 문제' 등의 문제들은 초창기 복음적인 교회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다. 그렇기에 오늘날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외형적으로는 복음적인 교회들의 맥을 잇고 있지만, 이면의 영적 상태는 너무나 다른 것이다. 그 결과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한국 교회의 부패로 나타난 것이다.



2) 개혁의 역사 속에 일어난 하나님의 종들

복음 전도의 역사를 크게 두 부류로 나누면, 초기에는 로마를 통한 사단의 무자비한 탄압 속에서 신앙을 지킨 핍박의 역사였다면, AD 313년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의 기독교 공인 이후는 사단이 세운 거짓 종교와 타락한 기성 교회에 대한 개혁의 역사였다. 그래서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에는 사단의 핍박 가운데 죽음으로 신앙을 지키고 복음을 전하는 종들이 많았다면, 그 이후 일어난 종들은 한결같이 사단이 세운 거짓 교회나 타락한 교회들을 향해 끊임없이 개혁을 부르짖으며 복음을 전해왔다. 존 위클리프, 얀 후스, 마르틴 루터, 존 녹스, 존 번연, 존 웨슬리, 챨스 스펄젼, 디엘 무디 등이 바로 그들이다.


"죄의 용서는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면죄에 관한 신성한 것을 매매하는 행위는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다. 나는 전능하실 뿐만 아니라 완전히 공의로우시며 유일한 심판관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항소하리라. 나는 그분의 손에 처분을 맡긴다. '주 예수님, 바로 당신을 위하여 이처럼 잔인한 죽음을 아무런 불평 없이 감당합니다. 부디 나의 적들에게 자비를 내려주소서.'"(얀 후스)


"성경으로 무장된 평신도가 오히려 교황이나 종교 회의보다 더 신뢰할 만하다. 성경 때문에 우리는 교황과 종교 회의를 거부해야 한다. 하나님은 당나귀를 통해서도 말씀하지 않았는가? 나는 내가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말하겠다. 나는 기독교 신학자다. 진정한 신학은 십자가 밖에 없다. 나는 내가 믿는 진리를 피 흘려 죽기까지 변호하기로 작정했다. 나는 하나님이 주신 진리만을 고백하겠다."(마르틴 루터)


"나는 1738년 5월 24일 8시 45분경에 거듭났다. 그 전까지 하나님의 편에 서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영적 장님이었기에 어느 편에 서 있는 줄도 몰랐다. 거듭난 후 나는 즉시 "값없이 주시는 구원"을 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편에 서서 사단의 왕국을 흔드는 공격을 시작하자 사단도 가만 있지 않았다. 일찍이 영국 국교회의 안수를 받은 나였지만,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자 교회들은 나에 대해 즉시로 문을 닫아버렸다. 나보다 먼저 복음을 전하던 나의 동료 조지 휫필드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한마디로 '이단'으로 몰리게 된 것이다."(존 웨슬리)


위와 같이 복음 전도에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은 종들마다 그 시대의 거짓된 교회들이나 타락한 교회들을 향해 개혁의 선두에 서서 복음을 전했다. 또한, 기독교 역사를 보면 하나님은 복음적인 교회들이 타락할 때마다 새로운 복음의 종을 일으키시고, 새롭게 복음의 역사를 일으켜 오셨음을 발견할 수 있다.



3) 기쁜소식선교회의 토대, 박옥수 목사

"기쁜소식선교회 박옥수 목사, 2005 신한국인 대상(大賞)"(2005. 12. 21) - 한국일보
"세계 곳곳에 믿음 소망 심는 자랑스런 한국인"(2004. 9. 23) - 헤럴드경제
"교회 개혁의 선두 주자, 기쁜소식선교회 박옥수 목사"(2004. 6. 11) - 경향신문


현재 기쁜소식선교회와 박옥수 목사는 복음에만 초점을 맞춘 대표적인 개혁의 선두 주자로 주목받고 있다. 기쁜소식선교회는 박옥수 목사를 주요 강사로, 끊임없이 국내 대도시를 순회하며 '올림픽 체조경기장' 등 각 도시마다 가장 큰 체육관이나 홀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고, 뉴욕 메디슨스퀘어가든 등 세계적인 집회 장소에서 해외 순회 전도 집회를 쉴 틈 없이 갖고 있다.

또한, 지난 해에는 미국의 LA 타임즈, 올 해에는 세계 최고의 일간지인 뉴욕 타임즈, 그리고 한국의 3대 일간지인 조선, 중앙, 동아일보에 전면으로 박옥수 목사의 설교가 연재되고 있다. 그 외에 문서나 방송, 인터넷을 통해서도 세계 80여개국에 박옥수 목사의 설교가 증거되고 있는데, 모두 형식적이고 법적인 신앙에 대한 개혁과 복음의 말씀이 담겨 있다.


그래서 죄 문제로 고통하는 사람들, 형식적인 신앙 생활에 회의를 느낀 사람들, 인생의 여러 문제로 인해 방황하는 사람들 등 국내외의 수많은 사람들이 기쁜소식선교회가 전하는 복음을 통해 구원의 믿음을 얻고 기쁨으로 거듭난 삶을 살고 있다. 그로 인해 '교회 개혁의 선두 주자' 나 '21세기 기독교계의 뉴리더' 라는 수식어로 기쁜소식선교회와 박옥수 목사가 주요 언론들로부터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이러한 기쁜소식선교회의 토대를 이루는 것이 바로 박옥수 목사의 믿음과 영적 감각이다. 그렇기에 기쁜소식선교회를 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그의 믿음과 영적 감각을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1944년 6월 2일(음) - 경북 선산 출생
1962년 10월 7일 - 거듭남 (19세)
1962년 11월 - '믿음의 방패 선교회' 선교학교 입학 (19세)


1963년 6월 - 경남 합천 압곡동 복음 전도 시작 (20세) 1969년 5월 - 경북 김천교회 담임 (26세)
1964년 5월 - 경남 거창 장팔리교회 담임 (21세) 1971년 7월 - 딕 욕 선교사로부터 목사 안수 (28세)
1965년 10월 30일 - 군 입대 및 군 복음화 (22세) 1973년 1월 26일 - 대구 중앙교회 담임 (30세)
1968년 6월 8일 - 제대 및 어린이선교 시작 (25세) 1976년 7월 12일 - 기쁜소식선교회 선교학교 시작 (33세)

위는 기쁜소식선교회가 태동하기 전까지의 박옥수 목사의 약력인데, 사실 기쁜소식선교회는 본국으로 돌아간 딕 욕, 케이스 글라스 등의 선교사들을 대신하여 1976년에 박옥수 목사가 선교학교(한국 복음 선교학교)를 시작하면서 실제적으로 태동하게 된다. 그 전에는 선교사들의 연합 선교학교를 졸업한 박옥수 목사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개인적으로 복음 전도 활동을 했던 기간으로, 그의 믿음과 영적 감각을 중심으로 그 기간을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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