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기쁜소식선교회의 형성 과정 - Part 2



1) 오직 믿음에만 초점을 맞춘 선교학교

"정말 하나님의 종이라면 필요한 것을 사람에게 암시도 하지 말고 하나님께만 구해라!"


1962년 말에 딕 욕(Shield of Faith Mission, 미국), 케이스 글라스(WEC, 영국), 데릭 얼(WEC, 영국), 말론 베이커(Christians in Action, 미국), 해리 와이먼(Christian Literature Crusade, 영국) 등 여러 복음적인 선교 단체의 거듭난 선교사들이 처음으로 연합하여 시작한 선교학교에는 총 11명이 중생 여부와 소명에 대한 선별을 거쳐 1기생으로 입학했다.


그때 선교학교로 사용하던 집은 일본식 큰 저택이어서 딕 욕 선교사 가족과 학생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이론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을 철저히 배제한 채 실제적인 믿음의 훈련을 받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일정은 새벽에는 개인 기도와 성경 묵상, 오전에는 선교사들과의 성경 공부, 오후에는 2명이 한 조를 이루어 전도 시간을 가졌다. 매주 토요일에는 대구역 앞의 미문화공보관에서 전도 집회를 했다.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만 구하여 얻는 것이 생활의 철칙이었다는 것이다. 선교사들마다 학생들에게 누누히 강조했다.


그래서 학생들 중에는 양식이 떨어졌을 때 가까운 곳에 집이 있어도 도움을 구하지 못 했고, 누군가 외부에 도움을 구한 일이 드러나면 문제가 되었다. 하나님 외에 기대를 두는 그 자체가 부끄러움이 되었던 것이다. 당시 박옥수 학생도 처음에는 선산 고향집에서 아버지가 매달 보내주는 쌀을 받았지만, 얼마 후 끊고는 일용할 양식부터 믿음으로 구해야만 했다. 물론, 선교사들 역시 똑같이 살았기에 함께 굶기도 하는 등 어려움을 같이 했다.


이러한 훈련은 어느 신학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믿음의 과정이었지만, 믿음을 얻는데 초점을 맞추지 못한 학생들은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다. 해외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학교라 좋은 환경 속에서 영어도 배우고 장래 성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왔던 학생들은 믿음에만 초점을 맞춘 훈련을 견디지 못한 채 중도에 포기하게 된 것이다. 당시 선교사들의 믿음에 대한 훈련이 얼마나 엄격했든지, 청강생으로 있던 권신찬 목사는 그의 자서전에서 언급하고 있다.


그처럼 선교사들은 믿음이 아닌 인간적이고 육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결코 타협치 않고 단호히 배척했다. 그러한 마음은 끝까지 훈련을 받은 학생들의 마음에도 깊이 자리 잡게 되었다.


둘째로 주목되는 부분은, 교육의 초점이 성경 말씀 자체였다는 것이다. 당시 선교사들은 영어에 능통했던 신남섭 학생의 통역으로 성경을 가르쳤기에 조금만 영어에 주의를 기울이면 학생들이 영어를 배우기에 참 좋았다. 그래서 박옥수 학생도 처음에는 성경 강의 시간에 말씀과 함께 영어에도 관심이 자꾸 갔는데, 선교사들이 그 사실을 불편하게 여겨 마음이 말씀에만 초점이 맞춰지도록 잡혀졌다고 한다. 선교사들은 장차 성경 말씀만으로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끌고 성도들을 영적으로 양육해야 될 복음 전도자들이 말씀이 아닌 다른 어떤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을 용납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당시 선교학교의 유일한 과목은 성경 밖에 없었다.


그래서 비록 선교학생들 대부분이 나이가 어렸지만, 그들을 만나는 사람들마다 성경 말씀에 능통하고 깊이 있는 선교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놀라곤 했다.


마지막으로 특기할만한 훈련은, 선교학생들이 개인적으로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여 구원의 믿음을 얻게 하는 복음 전도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전도라는 것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을 교회로 이끌어 교인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개인의 믿음 상태(구원의 확신과 중생 여부)가 어떠하든지 사람들을 교회로 많이 이끌면 전도를 잘하는 것이고, 교인 수가 늘어나면 부흥되는 교회로 여겼다. 하지만 당시 선교사들은, 대부분 형식적인 교회에 속해 믿음 없이 살다가 거듭난 전도자들과의 신앙 상담을 통해 참된 믿음을 얻고 거듭남을 체험했기에 한국 교회와 교인들의 영적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렇기에 기존 전도 방식이 아닌, 차원이 다른 실제적인 복음 전도를 훈련시켰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서 선교학생들을 통해 불신자는 물론, 기성 교회 교인들, 심지어 집사나 장로 중에도 새롭게 구원의 확신을 얻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교회를 오랫동안 다녔어도 죄와 사망 가운데 고통하다가 참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신들이 얻은 믿음과 그로 인한 기쁨을 고백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기존 전도 방식에 사로잡혀 있는 한국 교회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특이한 현상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어떻게 당시 선교사들은 기존 한국의 신학교와는 전혀 다른 전도자 훈련을 학생들에게 시킬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케이스 글라스와 데릭 얼 선교사가 디엘 무디와 허드슨 테일러 등 19세기의 복음의 역사를 주도한 전도자들의 영향을 받은 챨스 스터드와 놀만 그랍이 이끈 WEC 선교회 선교사들인 것과, 딕 욕, 말론 베이커, 해리 와이먼 등도 모두 거듭난 선교사들로 디엘 무디와 챨스 스펄젼을 존경하며 그들과 동일한 성령의 인도를 받았기 때문이다.



2) 스펄젼의 목회자학교와 무디의 성서학원

"나는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만을 증거한 사람으로 남기를 원한다."(챨스 스펄젼)


"세상은 하나님께서 그의 뜻에 온전히 헌신된 사람을 통해 하시는 일을 봐야 한다."(디엘 무디)

2천년 기독교 역사상 수많은 하나님의 종들이 일어나 복음을 전하여 왔지만, 챨스 스펄젼(Charles H. Spurgeon, 1834-1892, 영국)과 디엘 무디(D.L. Moody, 1837-1899, 미국)와 같이 동시대에서 서로 흡사하게 하나님께 힘 있게 쓰임 받은 복음 전도자는 찾기 어렵다. 두 사람 모두 비슷한 때에 태어나(스펄젼 1834년, 무디 1837년), 비슷한 시기에 중생하고(스펄젼 1850년, 무디 1856년), 40여년 간 복음의 일을 하는 가운데 각각 1천만 명 정도 되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복음을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그들의 설교집과 그들이 세운 교회와 선교 기관 등을 통해 남긴 영향력은 그 이상이 된다.


현재는 두 사람 모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당대 최고의 복음 전도자들로 인정받고 있지만, 당시에는 많은 종교 지도자들의 비방을 받았다. 첫째 이유는 둘 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데다가 기존 신학교를 통해 안수 받지 않은 채 목회를 했다는 것이고, 둘째 이유는 특정 교단에 속하지 않고 율법적이고 형식적인 기존 교회들과 타협하지 않은 채 복음만을 전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두 사람 모두 분명한 거듭남의 체험을 한 후 참된 복음과 전도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영국과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 각각 다른 교회를 통해 거듭남을 체험하고 목회를 했지만, 복음적인 서로의 신앙관이 같았기에 서로 존경하며 친밀한 교류를 가졌다.


특히, 두 사람은 기존 신학교를 다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도자들을 훈련하는 교육 기관을 세우는데, 그것이 바로 스펄젼의 목회자대학(The Pastors College)과 무디성서학원(Moody Bible Institute)이다. 이 두 학교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각각 유럽과 미국에서 최고의 복음적인 학교로 유명해진다. 그런데 기존 신학교를 다니지 않은 스펄젼과 무디가 어떻게 이 학교를 운영했을까? 물론, 기존 신학교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운영이 되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학생들의 입학 조건이었다. 스펄젼과 무디 모두 학생들을 선별하는 가장 큰 조건으로 분명히 거듭나고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느냐는 것이다.


"타고난 재질과 능력이 어떠하든 중생의 체험과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다면, 누구든지 복음 전도자의 일에 손을 댈 자격이 없다."(챨스 스펄젼의 '목회자후보생들에게')


"성령의 인도를 받은 사람들 외에는 이 벽 근처에도 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사람들만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디엘 무디, 성서학원 개관식에서)


두번째로 중요한 사항은, 스펄젼의 목회자학
교나 무디의 성서학원 모두 학생들이 성경 자체를 배우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이다. 이는 성경의 중요성을 그들 자신이 깊이 깨닫고 늘 설교해왔기에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나는 철학자의 5만 마디 말들보다 차라리 성경의 다섯 마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챨스 스펄젼)

"성경 자체를 읽으십시오. 만일 음식을 먹기보다 그것의 화학 성분을 연구하는데 시간을 보내면 곧 굻어죽을 것입니다."(디엘 무디)


성령의 인도와 충만, 성경 안에 담긴 복음과 믿음. 이 둘은 챨스 스펄젼과 디엘 무디의 능력의 원천이었다. 그렇기에 신학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주위 사람들의 권유도 있었지만, 두 사람은 기존 신학 교육을 거부한 채 성령의 인도를 따라 복음과 성경 말씀만으로 놀라운 복음의 역사를 일으켰다. 이들의 신앙관과 복음의 역사는 후에 거듭난 하나님의 종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그 흐름이 그대로 딕 욕, 케이스 글라스 선교사들이 세운 선교학교로 이어졌고, 현재는 박옥수 목사를 통해 기쁜소식선교회 선교학교가 이러한 방식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 이에 반해 최근 한국 교계에서는 기존 신학교에 대한 자성론이 불거지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3) 자성론에 사로잡힌 한국 신학교

"한국 교회가 너무 쉽게 목회자를 양성해내어 목회자의 자질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다."


"목회자 후보생들의 입학 조건에서 여전히 시험 성적이 평가의 중심이 되고 있다."

"그 동안의 신학 교육이 지나치게 이론 중심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큰 문제이다."

"현직 목회자의 상당수가 현 신학 교육이 실제 목회에 부적합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난 2006년 5월 26일과 27일, 서울 방배동에 위치한 백석대학교대학원에서 3백여 명의 신학교 교수진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국 신학 교육 이대로 좋은가?'란 주제로 제47차 한국복음주의신학회 정기논문발표회가 열렸다. 위는 당시 발표된, 한국 신학계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강연한 내용의 요지들이었다. 모두 한국의 신학교들을 향해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왜 이러한 자성론이 나오는 것일까?


거슬러 올라가보면, 한국 최초의 개신교 신학교는 미국 북장로교 소속의 사무엘 모펫(Samuel A. Moffett, 한국명 마포삼열) 박사가 1901년 설립한 평양신학교로 알려져 있다. 특기할 사실은, 1907년에 7명의 졸업생을 처음 배출한 신학교가 그 다음 해에는 20여배나 되는 138명의 학생들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 후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등 각 교파 중심으로 신학교들이 설립되어 현재는 공식적으로 한국에 50여개의 신학교가 있다. 비공식적인 신학교를 포함하면 그 수가 더욱 많을 텐데, 문제는 목회자 수급 불균형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열린 '한국교회 수급조절 세미나'에서 "한국 교회의 무분별한 목회자 양산으로 목회자의 질이 저하되고 목회자 수급의 균형도 깨어져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이라는 결론이 났고, 한 총신대 교수는 "지난 해 예장 합동교단의 경우 교회를 담임하지 않은 목사의 수가 4,350명으로 전체 목사의 44.1%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 교회의 전체적인 현상이다."고 강조했다.


쉽게 말해 목회자 실업율이 일반 실업율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왜 하나님의 종이란 목회자가 이렇게 무분별하게 양산되고 있는가? 사실 교회의 영적 상태는 목회자의 영적 상태와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아무나 목회자가 될 수 없고 반드시 하나님이 세운 종이어야 되는데, 한국에서 목회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가 아닌, 개인의 원함과 실력에 치중되어 있다. 실례를 들어보면, 아래는 대부분의 신학교에서 신입생들을 받기 위한 모집 요강에 나온 응시 자격과 평가 기준이다.


[응시 자격] ① 고등학교 졸업자 및 고등학교 졸업 예정자 ② 고등학교 졸업 학력 검정고시에 합격한 자 ③ 법령에 의하여 고등학교 졸업자와 동등 이상의 자격이 인정된 자④ 위 항에 해당된 자로서 세례를 받고 당회장의 추천을 받은 자


[평가 기준] 학교생활기록부 400점, 대학수학능력시험성적 400점, 성경고사 100점, 면접고사 100점, 총점 1000점


일반 대학의 신입생 모집 요강과 별로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종이 되는 기준과 과정이 너무나 세상적이며, 특히, 심각한 것은 챨스 스펄젼과 디엘 무디 등이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했던 중생 여부와 하나님의 분명한 소명은 그 조건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골 1:1)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히 5:4)

하나님이 크게 쓰신 바울은 늘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은 자신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되어졌음을 누차 강조하고 있고, 또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신학교의 학생 모집은 이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렇기에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입학 동기에 대한 설문 조사를 보면 "일반 대학에 들어갈 점수가 모자라서" "장로인 아버지의 강요에 못 이겨" "그냥 목회자가 되고 싶어서" 등의 어처구니 없는 답변이 많이 나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 교회 교인들의 마음에 새겨져 있는 '거룩한 하나님의 종'을 배출하는 신학교의 뿌리가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신학교의 교과 과정에 있다. 목회자 전담 양성과인 신학과의 학점 이수 과정을 보면, 90여개의 과목이 있는데 그 중 직접적으로 신앙과 관계된 것은 불과 10여개의 과목 뿐이었다. 헬라어, 히브리어, 라틴어, 헌법, 문화변증학, 논리철학 등 대부분 신앙과 별 관계가 없는 내용들이다. 거기다가 영어, 수학, 철학, 서양문학, 심리학개론, 문화인류학 등 일반 교양과목도 추가되니 실제 신학교에서 신앙을 배우거나 성경을 깊이 알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러한 과정은 신학이란 분야의 학자로 만들기에는 적합할지언정 교회를 믿음으로 이끌어야 되는 참된 하나님의 종으로 만들기에는 부적합하다. 오죽했으면 신학생들에 대해 '1학년 때는 목사, 2학년이 되면 장로, 3학년이 되면 집사, 4학년이 되면 평신도, 졸업하면 타락'이라는 우스개 이야기가 나왔겠는가! 결론적으로 대부분 신학교의 하나님의 종이 되는 입문과 훈련 과정이 성경이나 거듭난 하나님의 종들의 인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 교계에 참된 하나님의 종보다는 목사란 하나의 직업인이 점점 늘어가고 있을 뿐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챨스 스펄젼이나 디엘 무디 등 거듭난 종들의 기본적이고 중요한 사역이었던,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복음을 전하여 구원의 믿음과 중생의 체험으로 인도할 수 있는 목회자들이 한국 교회에는 극소수라는 것이다. 이는 한국 교회 목회자 대부분이 사람들을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교인으로는 이끌 수 있어도 진정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는 이끌어주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얼마 전 필자로서는 참 안타까운 한 목회자의 고백을 대한 적이 있다. 그것은 현재 챨스 스펄젼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내클 교회'에 시무하고 있는 피터 마스터즈 목사의 저서인 '영혼의 의사'에 대한 번역서에 실린 어느 한국인 목사의 아래와 같은 추천의 글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얼마나 영혼의 돌팔이 의사인가를 절감했다. 목회자로서 '전도 설교'도 제대로 못하면서 과연 복음으로 사람을 낳는 '영혼의 의사'라고 불릴 자격이 있을까를 고민하기도 했다. 아마 한국 교회에 있는 대다수의 목회자들도 이 책을 읽고 나면 나처럼 '내가 전도 설교에 얼마나 무지하며, 전도 설교에 얼마나 약한 목사'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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