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마음들이 어디서 일어났는가?"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우리가 복음을 전할 만한 형편이 되어서 복음을 전하는 경우도 있겠습니다만, 복음을 전혀 전할 수 없는 그런 형편에서도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는 걸 보면 그게 우리하고 좀 다르다는 생각이 많이 들지요.
베드로가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를 고쳤을 때,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주목해서 베드로가 복음을 전했던 것이나 또 사도 바울이 잡혀가서 베스도에게나 아그립바 왕 앞에 재판을 받을 때, 자기의 신변이나 재판장을 통해서 자기가 자유의 몸이 된다든지 그런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복음을 증거하는 것으로 이 사람들이 전부 일관했던 그 부분이 너무 은혜롭게 우리 속에 보여진다는 거지요.
이 베드로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전에 잡혀갔을 때, 계집종 앞에 벌벌 떨면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베드로가 사도행전에 들어와서 보니까 얼마나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지요.
대제사장들이, 서기관과 관원들이 매로 치고 핍박하고 이 이름으로 아무 말씀을 전하지 말라고 했을 때, 전 같으면 쩔쩔매고 그랬을텐데 오히려 담대하게 `우리가 너희 말을 듣는 것과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게 어느 것이 옳은지 생각해 봐라. 우리는 보고 들은 이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베드로가 이렇게 담대하게, 바울이 이렇게 담대하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게 됐는가 하는 문제죠.
좀 전에 이야기했습니다만 나이지리아 심동수 선교사가 처음에 갔을 때, 공항에 내렸는데, 그곳에 어떤 형제들이 아는 형제라고 나와서 완전히 찝차에다 앞에 양쪽 뒤에 기관총을 들고 심동수 선교사를 호위해서 집까지 가야했다 하더라고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총이 수없이 많고 총을 쏘아서 죽이고 빼앗아 가는 건 너무 쉬운 일이기 때문에 하이튼 얼떨떨 했다는 거예요.
그 친구 가운데 한 사람이, 복음 안에 있는 가까운 형제가 경찰계통에 있어서 군인들을 내 줘서 공항에서 집까지 호송하지 않으면 안 될 그런 위치에 있었는데, 심동수 선교사님이 늘 그런 경호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아예 몸을 거기다 던져놓고 특히 한국 사람들은 표적이 되기 쉬운데,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서 그런 것과 상관없이 지냈어요.
그 다음에 우리가 중국에서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형제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공안에 체포가 되고 감옥에 들어가고 추방을 당하고 때로는 모진 고통을 겪고 그런데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그런 마음들이 어디서 일어났는가? 그런 마음은 우리의 어떤 각오나 결심을 해서 일어나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베드로 마음에 예수의 성령이 들어오기 전만 해도 정말 베드로가 예수님이 부활하고 승천하신 뒤에 오순절 날 정말 성령이 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베드로는 두려워서 벌벌 떨고 예수님 마음 모르고 육신적인 생각 속에 늘 빠져있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베드로가 어느 날 오순절 날 성령이 그 마음에 들어오면서 자기 마음에 하나님의 성령이 들어와 계신걸 느끼고 깨닫게 되는 그때부터 담대해지기 시작했다는 거죠. 왜냐하면 속에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그 마음을 일으킨 분이 성령이라면 그 마음을 일으켜 주셨던 그 일의 책임자가 주님이시기 때문에, 그 주님이 능히 그 모든 문제를 아름답게 이끌어 줄줄 믿는 믿음으로 자기 자신의 육신을 돌보는 마음을 가지고 담대히 복음을 전했고 또 하나님이 그를 통해 역사를 했어요.
사도 바울도 감옥에 갇히면서 재판 앞에 설 때, 그리고 베가 파선되고 멜리데 섬에 떨어졌을 때, 항상 그가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의 신변을 자기가 돌보는 것보다 주님이 돌보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고 또 주님이 자기의 영혼을 지키고 돌볼 걸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담대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 우리에게도 베드로 속에 역사했던 하나님의 성령이, 바울 속에 역사했던 하나님의 성령이 동일하게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복음을 향하여 마음을 일으키실 뿐 아니라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는 그런 모든 일을 하고 계시는 분이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라는 거죠.
마치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 죄가 씻어졌지만 사단은 우리 마음에 죄가 그냥 남아 있는 것처럼 여기게 해서 복음에 대한 담대한 마음을 위축시키듯이 우리 마음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계시는데, 그 성령이 우리의 주가 되셔서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생활하는데 일어하는 모든 문제를 성령이 책임지고 이끌고 계시는데, 우리가 그걸 깨닫지 못하고 위축되고 두려워서 말씀을 전하기를 주저하다보니 우리가 점점 더 나약한 사람이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도 받고, 욕도 얻어먹고, 어려움도 겪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고 이끄시는 어떤 힘을 우리가 발견하면서 이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달려가 수 있는 은혜를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자기의 어떤 각오나 결심이나 용기로 되어진 게 아니라 성령이 그 마음 안에 들어와 역사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생전 해 보지 않았던 앉은뱅이를 일으킬 수 있었고, 애니아라는 중풍병자를 일으킬 수 있었고, 죽은 도르가를 살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똑같은 하나님의 성령이 오늘도 우리 마음 안에 능력으로 살아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내 안에 살아 역사하신다는 것은 우리가 이론으로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건 사실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일이든지 간에 믿음으로 달려나갈 때 주님이 지키시고 도우시고 인도를 하신다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단에게 속지 아니하고 내게 하나님의 성령을 주셔서 함께 하신다는 그 믿음으로 복음을 위해 달려갈 때 하나님이 다 도우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거예요.
형제 한 사람이 선교학교에 들어왔는데 와서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목사님 안 되겠습니다. 내가 선교학교에 들어오면 어머니가 꼭 자살할 것 같습니다."
그러잖아도 죽는다고 하는데 하면서 형제가 벌벌 떨고 걱정을 했어요. 제가 물어 봤어요.
"형제가 선교학교 들어온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분명히 믿느냐?"
"그건 틀림이 없습니다."
"형제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왔다면 그 일로 해서 어머니가 죽게 하지 않을 거다. 하나님이 우리보고 일만 하라고 하시고 전혀 우리 뒤를 책임지지 않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을 시키셨다면 그 모든 것을 책임지고 하나님이 안전하게 하실 것이다."
그 형제가 집에 돌아갔어요. `나 이제 선교학교 간다`고. 그 어머니가 `나 죽는다` 그러시니까 `우리 엄마는 안 죽어요.` 그랬다고..
사단은 그런 걸로 우리마음을 두렵게 하고 약하게 만들어요. 그러나 우리가 사단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그 어떤 문제보다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이 크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이 우 리 안에 살아서 일하고 계신다는 믿음을 가질 때, 우리도 이 시대의 베드로가 되고 바울이 되어서 담대하게 복음을 위해 살게 될 줄로 믿으면서 간단하게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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