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익히 아는 구절의 말씀이다.
하지만 진정한 주님의 품 안에서의 안식을 경험했는지는 의문스럽다.
대다수의 성직자들이 교회나 성당에 나오면 쉼을 얻을 것 같이 설교한다. 그렇지만 그 초대된 자는 얻는 안식의 정도는 타 종교에서도 얻을 수 있는 위안에 불과하다.
그래서 불신자들은 평가하기를 교회를 의지가 약한 자들의 도피처 정도로 여기고 있다.

이런 잘못된 관념을 심어준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그것은 종교적인 신앙의 수위를 넘지 못하는 기독교도들에게 있다.
기독신앙은 생명을 주는 곳이요, 죽은 정신과 영을 회복시키는 부활의 능력이 역사하는 곳이다. 자기를 발견하고 새로운 철학이 정립되며 확고한 진리에 입각한 천국을 위한 군사이다.

그렇지만 죽은 종교와 같은 신앙의 부류로 인식하게끔 전락되었다. 이들은 다름아닌 종교적 그리스도인들이 잘못 기독신앙을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 신앙은 세 단계가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믿는 단계요
둘째는 율법적 혹은 구약적 신앙의 단계요
세번째는 신약적 즉 예수 그리스도 안의 쟈유를 맛 보는 단계이다.
신앙의 입문은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함으로 시작되며 두번제는 계명을 지키려고 힘쓰는 단계이며 세번째의 단계는 그리스도 안에서,그리스도에 의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생활이다. 이것을 신약성경 저자들은 은혜 안의 신앙생활이라고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것으로 만족하며 스승된 설교자들이 있고 조금 더 나아가 계명을 지키려고 애쓰게 하는 사역으로 자족하는 설교자들이 있다.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며 그리스도에 의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며 그리스도에 의해서 영광받기에 합당한 신앙인들로 만들어야 하지만 대다수의 교회와 목회자는 오늘날 그렇지 못하다.
이것을 보고 종교적 혹은 율법적 교사라고 성경은 말한다.(고후2:11-4:18)

왜 대다수의 사람들은 율법적 즉 종교적 설교자들을 추종하는가?
종교적이라함은 타 종교에서 주는 위안의 정도 밖에 아무 것도 주지 못하는 역할을 의미한다.

예레미야시대에도 이런 사람들의 회중과 지도자들이 있었다.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남하며....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 주고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렘6:;13-14)

그들 회중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임할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모임의 목적과 동기가 탐심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회중은 모두 자기 욕망을 이루기 위해 그 교회를 선택하였으며 회중의 지도자들을 그들 회중을 자기 이익의 수단으로 삼으려 하니 둘다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인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어찌 하나님의 참된 안식이 흘러 넘칠 수 있을까?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공하기 위해서,집이 가까우므로 신앙생활하기 편해서, 사업상 이유로, 친척과 친구들 때문에, 기적을 경험하기 위해, 영적무아에 도취되기에, 사람이 많으므로, 돈 축복 많이 받으려고,,, 등 이런 이유로 그 교회(회중)를 선택하였다면 바른 교회선택방법이 아니다.
오직 진리를 좇기 위해서 예수교회를 선택해야 한다. 진리를 좇는 자만이 예수님의 제자이다. 진리를 알기 위해 교회를 선택해야 한다.

이런 그릇된 동기를 기초로 교회예배에 다녀온 것은 사월초팔일에 절에 갔다온 사람 정도의 위안을 얻을 뿐일 것이다. 다시금 홀로 있을 때 절망과 걱정과 실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다.
율법에 기록된 저주가 반복적으로 생활에 임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수 없다. 단지 종교적 우상이요, 수호신이요, 축복과 저주를 반복하는 잡신들과 같은 하나님으로 그들은 바라보며 하나님또한 그렇게 그들을 대우하실 것이다.


실제로 그들이 받은 위안은 종교적 수위를 넘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강같이 흐르는 은혜를 곡해하고 있으며 전달하고 있다. 이들은 종교를 믿는 사람이지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니다. 성경은 밝히 말한다.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고...

여기서 `내 백성`이란 하나님을 신앙하려고 하는 교인들을 말하며 그들은 성직자들을 말한다. 그 백성의 지도자들은 심상히 고쳐 주고는 이제 평안합니다! 평안할 겁니다! 라고 선언한다. 그렇지만 실제는 어떠한가?
심상히 고쳐주었다! `심상히`란 한문의 직역으로 현대어로 말하면 찰과상 정도로 알고 치료해 주고는 ...라고 번역해야 한다.
신자는 마음에 중병이 들었건만 그들의 외상만 고쳐주고 또는 가볍게 치료는 해 놓고는 다 치료받았으니 이제 평안히 살아 보라고 한다.
주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거짓선지자라고 말씀하신다.

"지도자들은 거짓을 설교하며 폭꾼으로 행세하나 평신도는 이것을 당연한 양 여기니 그 결말이 어떠 하겠느냐?)(렘5:31)

참된 평안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어떤 것인가?
주님께서는 "내가 맡기는 짐을 짊어 지고 나를 따르라! 그러면 가르침을 얻을 것이고, 너희 맘이 쉼을 얻으리라"(마11:29)고 하셨다
연이어 말씀하시길 "내가 맡긴 짐은 지기 쉽고 가볍다"라고 하셨다.
주님을 믿으려 하는 이들이여!
주님께 평안을 얻으려 하는 이들이여!

지금부터라도 살아계신 주님으로부터 직접적인 가르침을 얻는다면 당신은 자유할 것이다.
쉼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얻으려면 당신은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
제자된 도리를 좇아야 한다.
성경을 통하여 바른 길이 무었인가 깨닫게 하실 때에 즉각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어떤 손실이 나를 가로막을 지라도 그 장애가 나의 주님 안에[서 얻고자 하는 안식을 향한 소망을 좌절시킬 수 없을 것이다.

"성경은 문맥적인 해석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초청에 앞서서 주님께서는 계시 곧 가르침에 대하여 언급하셨다. 28절을 해석하기 위해선 전후문맥을 참고로 읽어보길 바란다. 그러면 쉼을 얻은 길을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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