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하나님 믿지 않고 부처 믿을 거예요!”
지금부터 2년 반 전에 베를린의 한 자매로부터 친척 할머니를 찾아가 전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정신이 건강치 않은 노인들이 모여 사는 양로원을 찾아가서 인사를 채 나누기도 전에 그 할머니가 우리에게 한 말이다.
걸음걸이도 이상하고, 얼굴 표정도 이상하고, 하는 말도 이상해서 처음 떠오르는 생각이 “과연 이 분과 교제가 될까?”하는 것이었다. 300KM나 되는 거리를 복음을 전하기 위해 차를 타고 왔는데 도저히 말씀이 들어 갈 것 같지가 않았다.
겨우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자 말자 아넬리제는 “하나님이 나더러 자살하래요!” 하면서 자기의 과거를 말하기 시작했다. 딸이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난 후 그 충격으로 정신이 약해졌고 그 뒤 남편과 아들도 갑자기 죽어서 아무도 없이 혼자 살면서 귀신의 음성을 듣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16년을 정신 병원에서 지내다가 이 양로원으로 옮겨져서 죽음만을 기다리는 아무 소망도 없는 아주 불쌍한 64세의 할머니였다.
1시간을 같이 보냈는데 죽은 딸 얘기하면서 울고 슬퍼하느라, 또 자기를 괴롭힌 시아버지에 대해 분노해 하느라 시간이 다 지나고 우리는 겨우 20분 정도 밖에 말씀을 전하질 못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난생 처음 그런 곳에 가보아서 어리벙벙하기도 했고, 평생을 귀신에 시달리는 아넬리제를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몇 주 뒤에 왠지 모르게 또 그 할머니를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서 우리는 다시 그 곳을 향했다. 정신이 온전한 독일 사람에게 복음 전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귀신들려 엉뚱한 소리만 하는 아넬리제에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몰라서 주님 앞에 은혜를 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늘은 하나님이 나더러 목사님 오시니까 빨간 치마 입으라고 했어요!”
하면서 또 이상한 소리를 시작하는 할머니에게 안수부터 하고 교제를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거의 1년 가까이 우리는 할머니를 찾아가 교제를 나누었다. 나의 계산적인 생각으로는 도저히 열매를 거둘 수 없는 헛된 일일 것 같아 보였지만 내 생각을 거스리고 하나님께서는 왠지 모르게 우리에게 소망을 주셨고, 물 한 모금 대접받지 못하는 왕복 600KM의 거리였지만 우리의 발걸음을 종종 그곳으로 옮겨 주셨다.
1년쯤 되는 어느날 할머니에게 전화를 했더니 정신병이 심해져서 정신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했다.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는 옮겨 간 곳을 가르쳐 줄 수 없다고 해서 수소문해서 정신병원을 찾아갔다. 온통 정신병자들에게 둘려 싸여서 아넬리제는 무척 괴로워하면서 마음이 아주 갈아져 있었다. 사단의 종이었던 우리를 예수님께서 해방시키시고 온전케 하신 복음을 전했는데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아넬리제는 아주 기뻐하셨다. 도저히 안될 것 같은 사람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그 심령을 불쌍히 여기셔서 역사해 주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과 사단의 음성이 무엇인지를 계속 전해 드렸는데 어느 날 우리가 찾아갔더니 할머니가 간증을 하셨다.
“내 영혼이 깨끗해지기 위해서는 내 인생이 이렇게 어려워야만 했습니다.!” 나는 내 귀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도 그 아름다운 간증이 내 귀에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다. 그 후로 부터는 딸 때문에 우는 일도 없어졌고, 자기가 막달라 마리아라는 둥 귀신이 하는 소리가 그 입에서 사라져 버렸다. 우리가 도착할 때 쯤이면 커피와 과자를 준비해 놓고, 세라를 위한 적은 선물도 사놓고는 우리를 기다리셨다.
석달 전에는 위궤양 수술을 받고 무척 고통스러워하셨는데 목사님이 천국에 대한 말씀을 전해 드렸다. 그 말씀을 듣더니 아넬리제는 “이제 나는 죄가 없고 깨끗하니까 너희들 보다 먼저 하늘나라에 가서 기다릴게!”하면서 육신의 모든 고통과 형편을 벗어나서 기뻐하셨다.
2주전 금요일에 우리는 그 다음 날인 토요일에 찾아가 뵙겠다고 전화를 드렸더니 할머니가 기뻐하며 오라고 하셨다. 그 다음날 아침 약속대로 우리는 오전 10시에 그 방문을 두드렸는데 아무 응답이 없었다. 전에 없던 일이라서 문을 열고 들어가 보았더니 할머니가 화장실에 쓰러져 계셨다. 급히 간호원을 불러 침대에 눕혔지만 이미 몇 시간 전에 돌아가신 듯 몸이 많이 굳어있었다. 주님께서 그 할머니를 이 세상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당신 품으로 불러 주셨다. 한편은 더 이상 얘기를 나눌 수 없어서 슬펐지만 다른 한편은 지금 주님 품에서 천진 난만하게 웃고 계실 아넬리제를 생각하니 참 감사하고 기뻤다.
우리가 아넬리제를 방문한 2년 반은 참 즐거운 시간이었다. 도저히 안될 것 같은 사람이 말씀이 들어가면서 서서히 변화가 되었고, 그 육신은 여러가지 병으로 고통스러웠지만 말씀을 들으면 모든 세상 고통은 그를 떠나고 말씀이 그대로 그 마음에 들어가 아이처럼 깨끗하게 웃는 그 할머니를 대할 때 마다 나는 참 기뻤다. 우리가 그 할머니는 위로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많은 위로를 받고 돌아오곤했다.
아무리 혼돈된 땅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니까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것을 보았다. 독일에 살면서 여러 가지 일들로 마음이 어려워도 그 할머니를 찾아가 교제를 나누고 나면 “하나님은 하신다.”라는 소망으로 가득 차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도 없고, 쉽게 실망하는 참 악한 인간이지만 하나님께서 이런 나 속에 역사하셔서 왠지 모르게 자꾸 발걸음을 그곳으로 옮기게 하셨다. 그 할머니의 정신을 맑게 해서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귀신의 소리가 들린다고 말하던 입으로 이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소리를 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우리로 하여금 실망치 않고 계속 그 분을 찾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나에게 늘 하나님을 향한 소망과 힘을 주시던 좋은 분을 보내고 나니 참 섭섭하지만, 그 분에게 역사하셨던 하나님께서 이 독일 땅에서 계속해서 일하고 계심을 생각하니 마음에 감사가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