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 된것이 없느니라.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 하더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한 1:1 - 18)
어제 오후에 요한 복음을 펴놓고 읽기 시작했다.
요한 복음 1장을 여러번 읽어 보았지만 이렇게 놀라웁게 마음깊이
찬탄하며 새롭게 조명되어 본적은 없다.
위에 적은 본문 말씀을 읽을때 창세기에서 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모든 말씀들이 다시 되살아나 내 영혼에 비쳐
들어온다.
그 놀라움과 찬탄을 말로 표현 할 수 없다.
어찌 된 일인가?
이 깊이와 사랑을 어찌 말이나 글로 표현 할 수 있단 말인가?
몇분 안되는 짧은 시간에 너무나 많은 말씀이 연결되고
비춰지며 내 영혼에 적져 들어 온다.
아!
이런 것을 영이신 하나님께서
생명의 말씀을 생명의 영으로 내 영에 계시하심으로
감추인 비밀을 전하시는가 보다.
그 동안 받은 말씀과 깨달음도 나에게 벅차고
되새김하고 묵상하기에 많은 날을 보내었는데.....
이번에는 그냥 그 본문 말씀안에서
요한이 감동받아 이 말씀을 기록할 때의 그 말씀들이
그대로 다시 내게도 계시됨을 느낀다.
본문 말씀을 몇번이고 다시 보았다.
그 놀라움과 감동이 그 대로 전해져 온다.
이 영의 언어를
이 생명의 언어를
그 순간에 비쳐지고 연결된 말씀들을 다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한정된 육신의 말과 표현으로 라도 말해 보고 싶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하나님은 곧 말씀이시다.
말씀의 법으로 만물을 지으셨고 말씀의 권능으로 만유를
잡고 계시다.
지은 것이 하나도 그 말씀없이 지어진 것이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으로 지으신 모든 것을
보고 계시며 그 앞에 숨기우지 못하고 벌거 벗은 것 같이
모든 것이 들어나며 만유가 그분의 눈앞에 있다.
참새 한마리가 떨어지느 것도 아시고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세시며 우리의 심중을 살피시며 우리의 말한마디도 다 들으신다.
나다나엘의 기도를 들으시고 베드로의 마음도 아시고
그 모든것도 아셨다
하나님은 진리를 찾는 자가 있나 두루 살피신다.
만유가 그분의 말씀의 권능대로 영원토록 운행되며
창조주의 손안에서 쇠하지 않고 보존된다.
즉 존재하는 모든 것을 아시고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
인류 역사를 그분의 계획대로 이루어 가신다.
그 말씀이신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
그래서 주님은 바다를 명하여 잠잠하라 하시고
물위를 걸으시며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오천명을 먹이고도 열두광주리를 거두셨으며
하늘에 명하여 열두군단이나 더되는 천사도 동원하실수 있는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님이시며 곧 창조주 하나님 이셨다.
"과연 내손이 땅의 기초를 정하였고 내 오른 손이 하늘에
폈나니 내가 부르면 천지가 일제히 서느니라"(사48:13)
주님은 과연 지구의 자전을 거꾸로 돌려 해 그림자를
십도나 물러나게 하실수 있었고
지구의 자전을 거의 온종일 멈춰서게 하실 수 있었다.
(왕하20:8-11 여호수아 10:12-14)
그 하나님이
하나님의 권리를 주장치 아니하고(빌2:6)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종의 형상을 입고 이땅에 오셨는데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그를 거절했다.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 소리 지르고
침뱉고 채칙질하고 머리를 흔들며 조롱하고 욕을 하였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며
이 백성을 바라보며 많이도 울으시고 눈물을 흘리셨든 주님
십자가 위에서도 아버지 앞에 우리죄를 위해
하늘 아버지께 탄원했든 주님
마지막 한방울의 생명(피)까지 우리 죄와 우리의 영생을 위해
다 쏟아 부어주시고 가신 주님
그는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고 가셨지만
(사53:5-6)
제자들도 다 숨어버리고
우리대신 버림받고 목말라 하시며 그 참혹한 저주의 형틀을
짊어 지고가 믿지 않은 아담과 그 혈통의 죄를 대신하여
처참하게 죽으심으로 믿지 않은 죄의 삯을 사망으로
다 지불하셨다.
당시 로마인 총독 빌라도가 황제 가이사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때 골고다 언덕에서 바람결을 타고 들려오는
부르짖음은 인간의 귀로는 일찌기 들어본적이 없는
비참한 소리를 발하고 있었다"
"창조주의 고통하심인가 태양도 빛을 잃고 예루살렘에는
드리워졌다"라고
천지간에 누가 내 생명을 대신하여 이렇게 자신을 내어 줄수
있겠는가?
그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시며 사람들을 부르시고 계신데
이 사랑을 외면하며 이 사랑을 거절하고 있다.
주님은 육신을 입고 이 저주받은 사지에 오셔서
사람이 겪는 모든 것을 다 겪시고 우리의 연약함과 우리의
슬픔과 우리의 눈물을 아시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시다.
그 당시에 권력가들 학식높은 종교인들 돈 많고 잘난 사람들은
모두 거절했지만
비참하게 버림받고 짓밟히고 서름받고 한이 많은 슬픈자
심령이 가난한자 애통하는 자들은 주님을 믿었고 구원 받았다.
나를 가장 감동시킨 아름다운 장면 사랑하는 모습은
주님이 바리새인 집에 있을때
비웃음과 눈총을 무릅쓰고 들어가
예수님의 뒤로 그 발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은
그 동네에 죄인인 한여자의 이야기이다.(눅7:36-50)
또 하나는 일곱귀신 들렸다가
주님께 고침을 받고 주님 못박혀 죽으시는 그곳에도 있었고
부활의 아침 주님의 무덤을 찾아가 울다가 처음
부활한 주님을 뵈옵고 부활을 전한 막달라 마리아
그 자매는 지금 성녀의 모습으로 주님 가까이에서
주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확실히 증거함) 하셨느니라(요1 4:8,3:1 롬5:8)
첫사람 아담이 믿지 않음으로 알게 된 선과악
선악을 심판하는
죄(믿지 않음)와 사망(정죄하고 죽이는) 의 법(율법)을
자신의 몸으로 담당하시고 폐하셨다.
아담과 죄와 사망의 법을 십자가에 못박아 (골2:14-15)
피흘려 장사하고그리스도의 생명(옆구리를 찔려 심장의 보혈)을
부어 다시 살리시고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
하나님이 하나님자신의 생명 피를 주고 우리를
율법의 저주와 종으로 부터 우리를 사셔서 자유의 자녀로
삼으셨다.
이제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에게 생명을 공급하시고
우리 영혼을 보존하시고 사랑의 말씀이 우리를 친히 가르치신다.
주님은 오늘도 천국문에서 우리를 기다리신다.
집나간 탕자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는 오늘도
내일도 기다리신다.
너를 기다리는 내 마음을 내 사랑을 알아달라고.....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자신의 생명을 불어넣은 자녀,
사단의 거짓말을 믿고 유괴당한 자녀를 구하기위해
주님이 머리 둘곳이 없는 강도와 음란의 소굴이 되어버린
저주 받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림으로 아버지 심중에 있든 말씀.
사랑의 말씀을
아버지 품속에 있는 아버지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독생자
하나님께서 전해주시고 가셨다.
이제 곧 주님은 믿는 자녀들을 데리러 다시 오신다.
영광중에 다시 오신다.
그날에 하늘과 땅이 진동할 것이다.
온 우주는 환희와 찬양으로 다시 한번 진동할 것이며
어린양의 신부된 우리는
아들을 위하여 왕이 베푼 결혼식 잔치에
주님이 입혀주신 예복을 입고 참석하게 될것이다(사61:10-11)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지 못하시는 것이 단 하나 있다.
첫사람 아담에게 선택의 자유의사를 존중했든 것 같이
우리에게도 강제로 하실수 없다.
하나님은 어린양의 신부를 강제로 얻을 수 없으시다.
다만 간청하시며 문밖에서 문을 열어 달라고 두드리고 계신다.
그 음성을 듣고 문을 여는 자는 복되다.
나의 영원한 운명은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
기회의 시간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진정한 사랑이 거절 당하는 것이다.
주님은 오늘도 새벽 이슬에 머리가 젖으며
밤늦도록 새벽이 되도록 대문밖에서 문을 조용히 두드리며
간청하고 계신다.
날이 새면 주님의 기다림도 추수도 끝나고
문은 닫힌다.
주님 곧 다시 온신다.
신부를 데리러 오신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