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수님 전,
열과 성을 다해서 올려주신 이단에 대한 글 잘 읽었습니다.
말씀하신데로 예수님의 보혈과 관계없는 믿음이라면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의 여러많은 분들조차도 결국 지옥으로
인도하는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교수님과 같이 신학대학강단에서 복음을 전하시는 경우는 그 파급효과
는 실로 엄청나리라 생각됩니다.
여러가지 내용을 올려주셨는데 다른것은 너무 어려워서 잘 모르겠고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하심을
받았지만 여전히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다. 우리는
용서받은 죄인일 뿐이다`라는 말씀을 올려주셨더군요.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나의 그 어떤것으로도 안되지만 믿음으로 하나님앞에 의롭다함을 받았다는것
그게 얼마나 축복입니까.
예수님의 보혈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의 모든죄를 깨끗이하시고 영원히
의롭다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전 이해되지 않는것이 `용서받은 죄인`이란부분입니다.
용서란 상대방의 잘못한부분을 완전히 받아주고 없애주는것입니다.
그게 용서죠. 그런데 용서받았는데 또다시 죄인은 무엇인지요?
하나님이 죄를 용서했다는 것은 죄를 기억조차 안하시겠다고 하신거지요?
용서받았는데도 다시 죄인이라면 그 용서는 참용서가 아니겠지요.
우리가 근본 죄인이었고 우리스스로는 해결할 방법이 없었기에 죄사함이
필요했던것이죠.
그 거룩한 일을 해결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피흘리게 하시고
그로 말미암아 세상모든죄를 지고 가게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진정 자기마음의 죄부분을 해결해줄수 없다면 그건 정말
예수님보혈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것이겠지요. 그런분에겐 예수님의 보혈은
한낱 짐승의 피와 다를바 없으며 예수님의 죽음은 나와는 상관없는 개죽음
일 뿐일것입니다.
`용서받은 죄인`이라고한다면 그건 전혀 용서받지 못한거라 생각됩니다.
그 용서는 죄와는 무관한 그냥 짐승의 피같은 용서일뿐입니다.
그 피에는 아무런 능력도 은혜도 없는 머리로만 이해되는 용서일뿐입니다.
용서받은 의인은 있어도 용서받은 죄인은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인은 용서받지 않아도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으로 그대로 남아있고싶다면 굳이 죄사함이란 큰 선물을 받을 필요가
없을겁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으로 우리를 그냥두시길 원했다면 예수님을
보내시지도 않았을뿐만아니라 피흘리게 하시지도 않았을겁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짓지않기 때문에 의인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노아를 의인이라고 한것은 그가 죄를 짓지 않기 때문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말씀하신데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인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죄사함받고 나서도 우리가 계속의롭다함을 받는 것은 더이상
죄를 짖지않기때문이 아니라 그분의 약속이 그러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은 은혜요 선물이겠죠.
뒤에말씀하신 `의롭다함을 받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죄를 짓기때문에 죄인`
이라고 하는것은 내행위에 묶여있슴을 보여주는것이 아니겠는지요.
죄를 짓기때문에 죄인이고 반대로 죄를 짓지 않기때문에 의인이라고 하는것은
우리의 너무도 인간적인 발상일뿐입니다. 그건 과학에서나 통용될수 있지
하나님의 은혜안에서는 우리의 행위는 구원에 아무런 영향을 줄 수가 없습
니다.
저는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간음중에 잡힌여자에대한 말씀을 접하면서
거듭났습니다. 그전에 하나님께서는 제게 많은 어려움을 허락하셨습니다.
마치 간음할 수밖에 없는 여자의 마음처럼 그렇게 심난하고 고통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간음하다 발각되어 잡혀나가는 것이 그렇게 싫었습니다.
내게 더이상 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후의 카드까지 무용하게 되었을
때 나는 항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간음한 여자의 마음처럼 하나님앞에 선다는 것이 너무도 두렵고 내가 가진
모든것을 잃어버릴 것 같은 불안함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항복하고 보니 그분은 나의 구주로 서 계셨습니다.
그렇게도 고집스럽게 `내것`에 대한 미련이 남아 끝까지 버텼던 것이 결국
하나님께서 제게 들어오시지 못한 이유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라사대 `나도 병욱이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라`
그말씀하나로 내모든죄가 눈같이 희게 씻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막연히 예수님께서 세상죄를 다 가져간것으로 알고 있던 사실에서 나의 죄도
그속에 포함되어있었음을 보여주시면서 비로서 하나님과 제가 일대일의 관계로
회복되었음을 선포해주셨습니다. 간음한 여자에게 하신 그말씀이 제게도 그대로
능력이 되어 나를 지목해주셨습니다.
불기둥을 본것도 아니요 환상을 본것도 아니며 방언을 한것은 더욱 아닙니다.
역시 말씀은 제게 죄문제까지도 단번에 날려버리는 능력으로 와주었습니다.
내가 그분을 믿은것이 아니라 믿게 해주셨습니다.
항복하게 하신이도 그분이시니까요. 믿어볼려했던 나의 의는 하루아침에
무너졌습니다.
그후로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말라`하시는 하나님의 마음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에 대한 믿음을 계속 갖길 원하셨습니다.
믿음이 우리안에 견실히 자리하고 말씀이 서 있게된다면 그 말씀은 곧 내게 능력이
되어 죄를 능히 이길 수 있는 힘을 주기때문입니다. 내가 죄를 이길려고 할것이
아니라 구원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켜본다면 죄는 나를 이길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저는 지금 영국에 살고있습니다.
이곳은 정통기독교의 본산지라 그런지 많은 한국의 목사님들이 오셔서
박사학위를 얻기위하여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을 가끔씩 만납니다. 아직 저에게 복음이야기를 먼저 꺼내신 목사님은
없습니다. 다만 시험준비하느라 너무도 부산히 뛰어다니시고 과목이 많다고
투정도 하십니다.
한 성경을 두고 저마다 이론정립에 여념이 없으신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박옥수목사님은 중3을 중퇴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시는데
는 전혀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저는 박사학위라는 빛나는 졸업장을 갖고 있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고 복음을 섬기기에는 박목사님을 감히 쳐다볼 수 없
음을 실감할때가 참 많습니다.
정교수님,
오늘 제가 이렇게 글을 올리는 것도 우연이 아님을 압니다.
하나님의 계획밖에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게시판을 통해서라도 많은 교제가 되었으면 합니다.
무조건 이단이라고 배척할 것이 아니라 진정 그러하다면 우리에게 진정한
복음을 전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경계에 앞서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가서시면 좋겠습니다.
혹 실례되는 말이있었다면 양해를 구합니다.
영국 에딘버러에서 윤병욱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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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섭님이 작성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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