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히 내용이 깊은데 신분을 공개하시던가, 공개하시기 어려우면 100john@hanmail.net로 자세한 내용을 더 적어주시고 신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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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온 글님이 작성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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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pilgrim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3:17-19)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코 개인적인 것이 아닙니다. 저는 한 때 거듭난 이후에 나 홀로 설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 어리석은 생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거듭난 사람이 홀로 있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인간적인 고집과 어리석음일 뿐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서신서는 거듭난 개인에게 쓰여진 것이 아니라 "교회", 즉 거듭난 "무리"에게 쓰여진 것입니다. 만일 성경에 약속된 모든 축복을 경험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참된 "교회" 안에 있어야만 합니다. 물론 사람이 거듭나면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적인 교회의 일원이 됩니다. 그러나 그 우주적인 교회의 유익을 누리기 위해서는 지역교회에 더해져야 합니다. 실제로 신약성경의 서신서들은 "우주적인 교회"에 보내진 것이 아니라 "지역교회"에 보내졌습니다.
거듭난 사람의 믿음이 뿌리가 박히고 그 터가 굳어져 요동함이 없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일개인이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모든 성도와 함께" 알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신비하여서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만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정해 놓으셨습니다. 아무리 비상한 지성의 소유자라 하더라도 단순한 사색이나 명상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다 알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것은 다만 지역교회에 가입하는 것으로만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집회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물론 집회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집회 참석이 곧 교회 생활이라는 것은 너무나 잘못된 생각입니다. 저는 성경을 보면서 초대교회의 교회생활이 과연 집회 위주였는가 하는 질문을 가져봅니다.
세상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가끔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교회생활이었는가 말입니다. 성경을 볼 때, 저는 교회생활이 그런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흔히 거듭난 자의 생활을 "교회생활+세상생활"이라는 도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거듭난 자의 생활은 다만 "교회생활"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이 세상의 직업도 모두 "교회생활"의 하위 항목으로 종속되어 있었고, "교회생활" 안에서만 이해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모든 관심이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고자 하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이런 하나님의 관점에 서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성경이 약속하고 있는 성도간의 교제는 실로 놀라운 수준의 교통입니다.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17:11),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요17:16),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요17:18),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어"(요17:21)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7:22)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요17:23)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하나인 것처럼, 그 모습으로, 그 정도로 성도와 성도가 하나가 되도록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론이 아니라 실재입니다! 하나님은 실제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렇게 이루어놓으셨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사실이 주관적으로 경험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날 교회에 매우 "추상적"으로만 들리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도 "우리는 하나다!"라는 구호는 많이 외칩니다. 저는 올림픽 개막식을 보면서도 사람들이 전 세계가 하나라고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교회의 각 성도가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과연 이런 구호와 노래가 말하는 "하나"의 수준일까요? 우리는 각 성도가 "하나"라는 말을 너무나 "낭만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하나"라는 말은 하나의 비유이지 "실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저는 어느 한 날 각 성도가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말씀이 결코 "비유"가 아니라 놀라운 실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모든 거듭난 성도가, 낭만적인 "한 몸"이 아닌, 실재로서의 "한 몸"을 이루는 것이 바로 성경 전체가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앞에 거듭난 각 성도 안에 있는 모든 인간적인 야망과 고집이 무릎을 꿇으며 제거되어야 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아버지와 아드님이 하나였던 그 모습은 객관적인 사실이었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아드님이 주관적으로 경험하셨고 표현하셨던 "실재"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성도 간의 하나됨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이루어 놓으신 객관적인 사실이지만, 주관적으로는 경험되지 않는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듭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하나되심은 집회를 통해서만 경험되는 것이 아니었음에 분명합니다. 아드님은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하실 때나 아버지와 "하나"이셨습니다. 이는 객관적인 사실이었을 뿐만 아니라, 주관적으로 계속 경험하는 사실이었습니다. 성도의 하나됨도 그렇습니다.
만일 교회생활이 "집회"라는 개념에서만 이해된다면 이 하나됨이란 결코 "주관적으로 경험되는 진리"는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성도 간의 하나됨은 "집회로 모이는 것" 이상의 경험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것은 외적인 표현으로 나타내려고 힘쓰기 이전에 "내면" 안에서 우선 정리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그 때, 외적으로 자연스럽게 표현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여셔서 거듭난 모든 성도들이 이룬 "그리스도의 몸"의 신비를 보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 때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될지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