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일 님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길 빔니다.
초기에는 정직자라는 계급이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초기에만 아니고 어느시대를 불문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에 계급이나 특수신분이 있을수가 없고 또 있어서도 않됨니다. 그러나 교회안에 은사나 직분도 없다고 생각하면 이것은 더없이 위험한 생각이 아닐수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죄에서 구원을 받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시작된교회 이교회가 시작된 이후 사단은 쉬지않고 계속해서 이교회를 어지럽히고 허물려고 해 왔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초대교회 즉 성령이 충만했던 사도행전 교회 에도 아나니아 를 통해 교회를 더럽히고 아니면 히브리파나 헬라파라는 이름으로 분쟁을 일어켜 교회를 허물려고 했습니다. 지금도 교회를 허물어 뜨리고 혼잡게 하려는 사단의 노력은 끓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간교한 방법이 많은 역사적인 배경이나 아니면 신학적인 교리로써 연약한 사람을 미혹케 하는 일입니다. 교회의 직분과 은사는 절대로 유대교에서 시작된것이 아님니다. 예배소서4장에 보면 주님께서 성도들을 온전케 하며 섬기는 일을 하게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기 위하여 사도, 선지자 ,복음전도자, 목사,교사로 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주님이 세우신 이런 직분들이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 육신적인 방향으로 흘러 그런 귀한 직분을 계급화하고 그권위를 육신의 목적으로 성도들위에 군림하는 어떤 잘못된 방향으로 치우치는 경우도 없진 않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은사를 부인 한다면 그것은 사단이 교회를 허물려고 하는 계획 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어느시대나 어느교회나 성령을 떠나 잘못될때 하나님의 것을 육신의 기회로 삼는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사를 부인 하는것은 정말로 사단이 기뻐하는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김성일 님이 몸담고 있는 교회는 목사도 전도자도 교사도 없는 교회라는 생각이 듬니다. 그리고 그교회는 한도시에 한교회만이 존재 해야 한다고 하는 교리를 가르치는 교회라고 믿어짐니다. 성경 어디에 한도시에 한교회만 있어야 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배소 교회 서머나교회 버가모 교회 이런 말은 영어에서 the church in Smyrna 즉 서머나에 있는교회 라는 뜻으로 표현이 되었지 않습니까? 그때에는 예배소나 서머나나 버가모나 이런도시가 인구가 적었고 따라서 여러개의 교회가 없었기 때문이지 필요하다면 여러 개의 교회가 존재 했을것이고 따라서 네집에 있는교회나 아니면 우물가에 있는교회 나 큰나무 집에있는교회 라는식으로 얼마든지 다른이름으로 그교회의 존재를 알렸으리라 생각이됨니다. 어리고 순진한 심령은 공교한 말의 진위를 모르고 속아서 영적 생활에 파멸을 가져오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김성일 님께서 이런 귀한 신앙의 광장에 단순히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것은 좋으나 그러나 이런 대화의 광장에서 자신의 주장을 그럴뜻하게 펴서 연약한 삼령으로 하여금 교회를 불신케 하고 믿음에서 떠나 소위 지방교회라는 한도시 한교회 라고하는 성겨에도 없는 교리를세워 연약한 심령을 넘어뜨리려 한다면 김성일님도 사단이 쓰는 사람중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김성일 님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교리를 떠나 참된 하나님의 말씀으로,한마음으로 신령한교제를 나눌수 있는 형제님으로 교제케 하시기를 바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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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님이 작성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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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초기에는 그러한 계급이 없었음
「성직자 제도(clericalism)란 전체적인 성직자의 조직」을 뜻한다. 초기 교회에는 타락한 기독교 안에 있는 성직자 계급과 같은 분리된 성직자 계급이 없었다. 초기 제자들은 어느 곳이든지 다니며 주 예수를 전파했고 심지어 사도들이 예루살렘을 떠나기 전에도 그러했다(행 8:2, 11:19-21). 어느 도시에서든지, 예를들면, 안디옥과 같이 믿는이들이 함께 모이는 곳에서, 성령은 그들을 교회라 불렀다(행 11:26).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성령에 의해 세워졌고 주님에 의해 교회에 주어진 바 되었다(행 1:27, 13:1, 엡 4:11). 사도들의 추후 방문을 통해 장로들이 임명되어(행 14:23) 어린 양무리에 대한 영적인 감독을 맡게 되었으며, 사도들이 없을 때 하나님의 교회를 양육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행 20:28). 교회에 의해 집사들이 선택되어졌고(행 6:3), 사도들에 의해 임명되었다(딤전 3:8-13).
Ⅱ. 장도들(elders)과 감독들(bishops)은 동일한 뷰류의 사람들임
장로들과 감독들은 디도서 1장 5절과 7절에서 입증되듯이 동일한 부류의 사람들이다. 5절에서 「장로들」은 7절에 있는 「감독」한 사람, 한 사람 전부를 가리킨다. 빌립보서 1장 1절과 디모데 전서 3장 1절도 이것을 확증한다. 베드로전서 5장 2절은 장로들이 하나님의 양무리에 대한 「감독권을 가진 것, 감독=감독권을 가진 사람, 감독자(overseer)」를 확증해준다. 또한 사도행전 20장 28절도 에베소에 있었던 교회의 장로들이 17절 성령이 감독자로 삼으신 사람들이었음을 보여준다(28절).
Ⅲ. 보편적인 제사장 체계
신약에는, 「성직자」와 「평신도」같은 구별이 없다. 계시록 1장 6절과 5장 10절 그리고 베드로 전서 2장 5절과 9절은 모든 믿는이들이 제사장들이요 공통의 「제사장 직분」을 가졌음을 알려준다. 하나님의 교회는 「보편적인 제사장 체계」―모든 믿는이들이 공통의 제사장 직분을 가진―를 갖고 있다. 모든 믿는이들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고」(히 4:16),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으며(히 10:19), 「휘장 안에」(히 6:19)들어갈 수 있다.
앤드류 밀러는 그의 「교회사」(p.155)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제는 더 이상 바깥뜰의 경배가 없다. 특권층―성직 계급―의 구별은 신약 성경에서 알려진 바 없다.」그런데 어떻게 성직자 제도가 빗나간 기독교계에서 그렇게 강한 기반을 얻게 되었을까? 밀러는 덧붙인다.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의 차별은 유대교에 의해 비롯되었고, 사람들은 즉시 그것을 확대했다. 그러나 차별을 확립하고 구별은 심화한 것은 감독의 임명(Episcopal ordination)이었다. 감독(bishop)은 점차적으로 주교(pontiff)의 명칭을 갖게 되었다. 감독 뿐만 아니라 사제들(presbyters)과 마침내는 집사들도(deacons) 하나의 신성한 계급이 되었다. 중보의 직분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직분도 성직자 계급을 갖게 되었고, 평신도들에 대한 권위도 갖게 되었다. 하나님이 그분의 말씀을 통하여 사람들의 마음과 양심에 직접 말씀하시고, 사람들의 마음과 양심이 하나님의 양심 안으로 직접 인도되는 대신에, 그 사이에는 성직자들이 들어오게 되었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린 바 되었고, 믿음은 사람들의 의견 가운데 처하게 되었다. 그분의 백성의 대제사장이시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신 주 예수님은 이렇게 실제적으로 대치되었고 제쳐진 바 되었다.」
Ⅳ. 유대교에서 기원한 성직자 제도
요한복음 1장 17절은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되었다(헬)」고 말한다. 갈라디아서 6장 15절은 그리스도 안에서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 창조(헬) 뿐이니라고 말한다. 이러한 성경 구절들(기타 다른 많은 구절들)은 우리에게 교회는 유대교의 연속이 아니며, 오히려 그것과 완전히 대조가 됨을 가르친다. 하나는 하늘에 속한 것이요, 다른 하나는 (여전히) 땅에 속한 것이다. 하나는 새 언약아래 있는 새창조인 반면, 다른 하나는 옛 언약아래 있는 옛 창조에 속한 것이다(히 8:13). 그러나 통탄스럽게도 기독교 회당(synagogue)을 그 모델로 취하여 유대주의의 형태를 따라가고 있다. 「성직자 중심 주의는 … 유대교에서 기원했으며 … 성직 계급과 거기에 속한 모든 것들이 유대 종교에서 그대로 발견된다.」라고 밀러는 주장했다.
Ⅴ. 초기 교부들에 의한 성직자 중심 주의로의 빗나감이 성직자 제도의 기원임
계시를 받은 사도들이 모든 죽은 후에, 소위 초기 교부들(사도들을 즉시 뒤이은 사람들)은 그들에게 위임되어졌던 가르침으로부터 곧 빗나갔는데, 특별히 교회의 행정의 문제에 있어서 그러했다. 유대주의, 철학, 발생할지도 모르는 「분열」 그리고 다른 것들에 대항하여 교회의 유익을 보호하고자 하는 열심히, 열성적인 이그나티우스는 교회 인도자들 즉, 감독(bishop), 장로(presbytery) 그리고 집사(deacons)들의 손에 강력한 교회 행정을 맡기는 것을 주창했다. 그는 심지어 하나님의 신약 백성을 위해 「성직자는 없어서는 안될 출입의 매개체」로 생각했다. 그리고, 로마의 클레멘트는 「대제사장, 제사장, 그리고 레위인들에 대조되는 평신도」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그리스도인의 주관하는 직분과 레위인의 제사장 직분을 비교하였다. 이러한 비교는 전체적인 성직제도의 기원이 되는 것이었다. 여기서 터툴리안(Tertullian)이야말로 처음 실제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사역을 대신하는 성직자의 권리를 주장했던 사람이었다. 최종적으로 키프리안(Cyprian)은 아론의 제사장 직분의 모든 특권, 의무, 책임들을 교회의 관리자들에게 적용시켰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로서 기독교 사역에서 성직자 관념을 착상한 정식 기원자라 불리운다. 3세기쯤 되어서는 「제사장」이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기독교의 사역자들에게만 배타적으로 사용되어졌는데, 「성직자」는 직분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평신도」는 기독교인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쓰여졌다.
Ⅵ. 신성한 계급이 확립됨
그러자, 엄숙한「안수」혹은「임명」,「헌신」등은 세 단계의 성직 계급, 즉 집사, 장로, 감독에 대한 승인의 형태가 되었다. 후에, 부집사 혹은 부조력자, 조수, 대리인과 같은 부직임들이 나타났고, 성경을 알고 교회의 책들을 관리하는 낭독자, 감독을 시중드는 조수, 문지기 혹은 건물관리인, 교리문답 교사, 통역자등 더 많은 차이와 더욱 복잡한 직임의 분열을 가져왔다. 그리고 감독의 새로운 직분은 장로의 직분을 능가하게 되었다. 야심에 찬 감독이 다른 감독들에 대해 수위(首位)를 갖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고, 또한 「교황」이 되었다. 이것이 수세기 동안 내려오는 로마「주교」제의 교우이다. 「교황제도」뿐만 아니라「성직자 제도」가 이러한 방식으로 세워졌다.
Ⅶ. 회복의 길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회복의 길을 제시해 준다. 간단히 말하면, 여기 우리가 따를 수 있는 몇 가지 신성한 지침이 있다.
A.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계 18:4). 여기서, 우리는 「나옴」의 원칙을 볼 수 있다. 타락하고, 조직화된 기독교계 안에서 상황을 변화시키려 하지 말라. 다만 「거기서 나오라」.
B.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음으로」(계 2:7, 11, 17, 29, 3:6, 13, 22)「이기라」(계 2:7, 11, 17, 26, 3:5, 12, 21). 주님이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성령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것」은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을「받고 따름」을 뜻한다. 예를 들면, 그분은「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기억)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그리고, 우리는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을「기억함」과「회개함」그리고「행함」을 통해 따른다. 다시 한번 예를들면, 그분은「이와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성직자―평신도 제도를 가리킴)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회개하라」(계 2:15, 16)고 말씀하셨고, 그래서 우리도 또한 그것을 미워하고 회개해야 한다.
C.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도달하시고, 그분이 원하시는 상태가 되라.
1.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되게 하라」(계 22:11) 「이기는 자가 되라」(계 21:7) 「하나님의 눈에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후 6:17)
2. 합당한 교회가 되라 - 모든 사람이 제사장으로서, 살아 있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기능을 발휘하는 성경적인 한 도시, 한 교회
a. 합당한 교회가 되는 길은 그 안에 있는 것이며, 그러한 사람들과 교통을 갖는 것이다. 어떤 것에도「참여하지」않고, 합당한 교회와「하나되어야」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신성한 출생에 의해 그 안에 속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몸, 교회의 지체가 되는 것은 우리의「타고난 특권」이다(고전 12:27, 롬 12:5)
b. 합당한 교회(한 지방에 근거한 하나의 교회)가 아직 없다면, 그러한 합당한 교회가 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을 찾아서 주님의 인도를 구하며 함께 기도하라. 그러한 단체적인 기도로부터 교회는 시작되었다(행 1:13,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