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전도자님이 올린 글에 대한 답변들을 보았습니다.
그 내용이 근본적으로 주님의 보혈로 사함받고 거듭나는
확실한 증거를 찾을 수 없어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이산가족이 만나면 같은 부모의 자손인지를 먼저 확인
하는 모습들을 볼수 있었습니다.
혈족이라는 것이 확인 되지 않는 다면 그들은 포옹하지도
않고 반가워 눈물을 흘리지도 않을 것이며
하나될 수 없는 어색함은 계속 되어질 것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북한 고위층 이수근이라는 사람이 판문점을
통하여 위장 귀순해 왔고 정부는 그를 환영하여 맞았고
어느 대학교수와 결혼하여 살다가 재입북을 시도하였고
월북직전 비행기 내에서 정보부원에 의해 잡힌 적이 있습니다.
이와같이 진정 혈족인가? 진정한 귀순인가?
참으로 전향된 것인가?를 확인해 볼려고 하고 확인 해
볼수 없을 때에는 계속 의문과 하나될 수없는 어색함은
남아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인하지 못하고 그냥 하나 된다면 오히려 부작용과
문제는 더 커지게 됨은 자명한 일입니다.
그래서 한피 받은 형제인가 죄사함 받은 간증을 확인 해
보는 것이 아닐까요?
피는 속일 수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
※mono님이 작성한 내용입니다.
------------------------------------------------------------
이산가족 상봉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아픈 일이었습니다.
생이별했던 가족을 몇 십년만에 만났을 때, 그들은 목놓아 울었습니다. 세월이 안겨다 준 어색함도 잊고서, 오랜 사상의 다름도 아랑곳 없이, 그들은 다만 한 핏줄로서 끌어 안을 뿐이었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피는 속일 수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념과 체제가 달라도 피는 서로를 그리워 하는 숙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육체의 피보다 더 진한 피로 가족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육체의 피는 다만 육체일 뿐이므로, 그 영이 육체를 떠나면 유효기간이 끝납니다. 그러나 영으로 가족된 사람들의 피는 죽음 이후까지도 영원히 유효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형제요 자매라 부릅니다.
우리의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든 사역은 이 반석 위에 서 있고, 또 서야 합니다. 약간의 서로 다른 관심이나 취향도 이 반석 위에 있는 다양함일 뿐입니다. 이 든든한 기초석 위에서 우리는 결국 같은 도착점에 다다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하나"여야 합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에게 하나의 생명이 있다면, 그 생명으로 인하여 하나되기 위해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당장 가시적인 것으로 드러나기는 어렵더라도 모든 그리스도 인의 입장은 이 "하나"를 지향해야 합니다. 조금씩 다른 다양함들이 그 하나됨의 우위에 군림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구원을 강조하든, 구원 이후의 삶을 강조하든, 혹은 사역자가 누구이든, 한 생명 받은 한 몸이라면 우리는 서로를 그리워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되지 못하게 하는 모든 요소는 어찌보면 "육"이 아닐까요?
이 육은 단연코 십자가로 가져가야 합니다.
선한 육이든 악한 육이든 모조리 가져가야 합니다.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다름은 부서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부활생명으로 우리는 하나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이후에라야 우리는 무슨 무슨 "파"가 아닌 다만 "그리스도 인"으로 불릴 것입니다.
생이별의 아픔은 당해보지 않으면 모를 것입니다.
몇 십년의 공백이 있다 하여도 그들이 한 피로 서로를 끌어 안을 수 있었던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진정 한 가족된 사람들이라면 서로를 가로막는 벽들을 허물어 가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하나이듯 몸도 하나여야 하며, 그분도 우리의 하나됨을 바라십니다. 참된 교회는 이러한 입장 위에서만 산출될 수 있을 것입니다.
"너희가 너희를 부르시는 한 소망 안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처럼 한 몸과 한 분 성령이 계시니 한 분 주요, 한 믿음이며, 한 침례이고 한 분 하나님, 곧 모든 것의 아버지시니 그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시며 모든 것을 통하여 너희 모두 안에 계시느니라."
이산가족 상봉을 보며, 오랫동안 제가 관심해 온 "하나"의 문제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서로를 만나보려는 애타는 마음조차도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 벽은 언제나 허물어 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