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쯤 버스를 타고 제재소옆을 지나다가 잘라놓은
낙옆송을 쌓아 놓은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 잘라놓은 낙옆송에 파란싹이 돋아난 것을 보았다.
2주후 다시 버스를 타고 그 제재소옆을 지나다가
잘라놓은 낙옆송에 파란싹이 그대로 자라는 것을 보았다.
놀라웠다.
분명히 잘리워지고 죽은 나무인데 파란싹이 자라다니....!
하지만 그 싹은 시한부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아담 안에서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사형선고를 받은 모든 사람은 영원 무궁한
하나님의 생명으로 부터 끊어져 죽음의 세력에 삼키워
질수 밖에 없는 저주 받은 운명이다.
그 파란 싹이 산 낙옆송(생명의 주님)에 접붙여 지지
않는 한 그 말로는 결정지워진 것이다.
잘리워진 운명을 아는 자만이 생명의 주님께 믿음으로
접붙임을 받을 수 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우리가 믿음으로 우리의 구원자이신 생명의 주님께
돌아간다면 누구든지 믿는 자는 값없이 보혈의 공로를
입고 그 생명을 공급받아 삶을 얻을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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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돈명님이 작성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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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소나무"를 읽고 느낀 점은
늘 그렇듯이 심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일종의
"극복할 수 없는 하소연" 처럼 들렸습니다. 왜 항상 그런 식의
대비가 필요한 것입니까? 자기방어? 아니면 열등감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