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 학교에 있을때 눈이오나 비가오나 우비를 입고 자전거로
만6년간을 이십여리 길을 출퇴근을 한적이 있었다. 그 전에도
3년간 시오리 길을 자전거로 출퇴근 했다.
그러다 보니 지겨웠다.비오고 눈와서 빙판진 날은 우비를 입으면
더웁고 빙판에서 넘어지기도 여러번...
지금도 차운전을 배우지 않앗다. 불편할 때도 있지만 오히려
편할 때도 있다.
학급수가 적은 학교는 사무직원도 없어 경리 서무 봉급등 많은
일들의 업무과 과중하여 힘들다.
그래서 6년 근무한 마지막해는 도심의 큰학교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부과점수를 따기위해 방법을 강구했고 근무평정을
잘받기 위한 방법도 강구 했다.
장학사 시찰오면 수업잘하는 교사에게 주는 부과점도 2점 받아
놓았고, 당연히 혜택을 입는 다른 부과점도 2점받았고,
술좋아하는 교장 교감에게 술도 몇번 대접하여 근평도 수를 받고
도심으로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교감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도심으로 들어 갈려고 내신 내는 사람들중 아마 000 선생님이
순위 1번 일 겁니다."라고
3월1일자 발령이 났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이곳 학교보다 몇배 더먼 칠십여리 떨어진 작은 학교로 발령이
났다.
몇년마다 전보 규정이 바뀌기도 하는데 그해에는 예년에 주든
부과 점수가 다 없어져 버렸다.
그리고 근평도 한번 나간후 다시 다른 선생님과 바꿔치기
되어버린 듯하다. 그런 일은 흔히 있다.
그해에는 비포장도로를 포장 한다고 파헤쳐놓아서 비가오면
버스에서 내래서 진흙탕속에서 버스를 밀기도하며 먼지를 쓰고
1년간 통근했다.
그때가 구원받고 1년여 남짓 지났을 무렵이다.
그때는 그것이 인간적인 수단방법을 동원한 나에게 어떤 교훈을
주기위한 하나님의 손길인 것을 미쳐 몰랐다.
그런데 않되어 보였는지 도심에서 이십여리 떨어진 시내버스만
서는 작은 학교로 발령되었다.
그런데 그학교에서는 더 큰 문제가 생겼다.
교장편과 교감편으로 두패로 짝갈라져 사사건건 싸우고 있었다.
사연인즉 이렇다.
교장이 그학교로 부임하면서 먼저 있든학교 선생님를 데리고
와서 먼저부터 그 학교에 있든 동기동창 선생님을 따돌리고
데리고온 선생님을 교무주임으로 명한 것아다.
이를 곱잖게 여긴 교감과 먼저있든 선생님들이 하나가 되어
교장과 대결하고 있었으니....
그 다음에 들어간 나와 다른 선생님도 새로온 놈이라는 색안경을
쓰고 삐딱하게 보며 교장편으로 돌리는 것이다.
교장이 데려왔을 거라는 짐작으로 그렇했다.
한가지 사무를 처리하는데도 교장 교가의 업무지시가 상반되었다.
그런데 다음해 학년초에 한학급이 늘어 체육주임자리가 생기게
되었다.
그런데 먼저는 인사를 잘못하였으니까 바로 잡아야 한다고
먼저 체육을 맡았던 선생님대신 나를 체육주임 자리에 발령한
다는 것이다.
나는 원래 승진에 뜻이 없어 나에게 돌아오는 주임자리도 여러번
양보 했든 터이고 또 체육에는 취향과 소질이 없었다.
그런데 다른 선생님들과 가티 하는 술자리에서 교감이 나에게
생색을 내며 그 뜻을 말했고 나는 사양했다.
괘씸하게 생각한 교감이 나를 감정어린 어투로 질책했고
나는 그냥 술자리를 나와버렸다.
기어코 나를 체육주임으로 발렬해 렸다.
나는 먼저 체육맡든 선생님에게 식사대접을 하면서 본의아닌
이일에 대하여 미안함을 표했고 그는 내마음을 이해했다.
그리고 곧 여름방학이 되었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 마음이 무거웠다.
개학이 되면 운동회 계획도 세워야하고 또 연습도 시켜야한다.
육상선수 훈련도 시켜야한다.
내일이면 개학하는 날 아침에는 마음이 더 무거웠다.
도수장에 끌려가는 소와같은 심정이었다. 그만 두고 싶었다.
그럴수도 없고....
그래서 업드린채로 중얼거렸다.
"하나님. 하나님도 이런일은 어쩔 수 없겠죠....."
기도라고도 할 수없다. 기도할 마음도 아니고....
그리고 출근했다. 아마 8.20일경이다.
그런데 오전에 교육청에서 전화가 왔단다.
9.1일부로 한학급이 줄어 선생한 분이 다른 학교로 가야 한단다.
오늘 중으로 갈 선생님을 보고하라는 긴급전화다.
이게 웬 일이야?
내가 간다고 했다. 그런데 교장은 다른 선생을 보내고 싶어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선생이 출근을 않했다.
모친이 아파서 다른 도시 큰병원에 갔단다. 연락이 않된다.
그래서 내가 보고되었다.
그리고 그 이튿날 내가 발령이 났다.
그학교는 24학급 큰학교다. 서무도 있고 직행도 서고 완행도
서는 20여분밖에 안걸리는 시내와 다름 없는 곳이다.
나는 그곳에서 5년 반을 근무하다 도심 학교로 힘않드리고
쉽게 들어왔다.
학년중에 학급이 줄고 늘었다고 해서 교사를 전보한적은 35년
교직생활 중 처음이고 마지막으로 있었든 일이다.
이또한 하나님의 손길이 이었다.
나는 여기에서도 큰 교훈을 얻었다.
그런데 그곳에 발령된지 한달이 않되어 복음을 전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학교에서 한 오리쯤 떨어진곳에 한 노인이 암에 걸려 소생 가망이
없는 상태 이었다. 교회 자매의 부탁이었다. 자매님의 부친이었다.
가보니 뼈와 가죽만 남은 상태이고 통증도 극심했다.
그분이 누운 상태로 그분을 안다시피하고 그분의 귀에 대고
복음을 전했다.
"이제 포기하고 가실 준비를 해야합니다. 암입니다.
아드님도 차마 말을 못한 겁니다."
통증이 심하여 20여분간 복음을 전했고 믿느냐고 하니까
"말씀이 그러니 믿지요."라고한다.
방과후 오후에 복음을 전했는데 다음날 아침에 돌아 가셨다.
그런데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계속 중얼거렸다고 한다.
나를 그곳에 발령낸 것도 하나님이시고 한영혼을 구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손길이었다.
나는 1초의 순간까지도 나의 생명을 보호하시고 건지시는
하나님의 능력도 보았고 모든 낭패를 선으로 바꾸어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여러번 보아왔다.
그래서 어떤 절망적인 일이 터져도 한편으로는 걱정되고
불안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고,
맡기는 기도를 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대처하여 전화위복시키는
것을 여러번 경험케 하셨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내신 능력에
맡기고 의할때 모든일을 형통케하신다.
특히 복음 전하는 일에 형통케 하신다.
오직 주님의 은혜와 선하심과 능력게 감사와 영광을 돌릴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