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사함받고 거듭나 참포도나무인 주님께 접붙임을 받아야
좋은 마음이 되는 것 아닙니까?
천명의 형제자매 마음을 살펴 보았습니까?
그대는 일곱눈 가지고 모든 것을 살펴보는 설령님입니까?
이해 할 수가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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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ther님이 작성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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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에서는 무엇보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사람의 중요성은 어떤 일의 중요성을 훨씬 능가한다. 세상 사람은 정반대로 사람보다 일을 더 중요시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일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
시간은 영원 과거와 영원 미래 사이에 있으며, 창조와 구속은 시간 가운데 있다. 시간 안에서 하나님은 많은 일을 하셨지만,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며, 하나님은 일로 말미암아 사람을 얻고자 하신다. 하나님은 일을 위해서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일로 말미암아 사람을 얻고자 하신다. 하나님은 다만 사업을 성공시키시려는 것이 아니라 이것으로 말미암아 사람을 얻고자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점이 달라져야 한다.
마음을 하나님께 둠
하나님께서 귀히 보시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주님은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라고 말씀하셨다(사29:13).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귀히 보시는 것은 바로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이것이 구약의 말씀이지만, 신약에서도 주님은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고 계시는데, 예를 들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마22:37),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 『마음이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고후3:16) 등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께 올바라야 한다.
물론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옳은 것이지만 만일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맞추어져 있지 않다면, 이러한 사랑은 틀린 것이다. 이방인들이 바르게 행했다고 할 때, 그것은 일 자체에 올바름을 가리키는 것이지 하나님께 올바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마태복음 7장을 볼 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했지만, 마음에 하나님을 중심 삼지 않고 행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도리어 그들을 불법을 행하는 자로 여기셨다(마7:23).
당신은, 『마음이 바르지 않은 데도 귀신을 쫓아낼 수 있습니까?』라고 물을 것이다. 그럴 수 있다! 심지어 이방인들도 귀신을 쫓아낼 수 있다. 자연적인 법칙을 따르는 한, 그가 기대하는 결과를 얻을 것이다. 사람이 창문을 열면 공기는 자동적으로 들어온다. 남녀가 결혼하면 자연히 아이를 낳는다. 심지어 롯이 딸과 근친상간을 범했어도 자식은 낳을 수 있었다.
마음이 바르지 않은 사람도 말씀을 전할 수 있고 이적을 행할 수 있다. 오직 그가 그러한 법칙을 이행하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효과가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면적인 결과를 보고 단정지어서는 안 되며, 중요한 것은 마음의 어떠한가이다.
마음이 하나님께 견고히 부착됨
형제 자매들 가운데 문제가 생기는 것은 그의 마음이 바르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실족하는 것도 마음이 바르지 않기 때문이며, 어떤 사람이 실망하는 것 또한 마음이 바르지 않기 때문이다. 천 명의 형제 자매들 중에서 마음이 하나님께 견고히 부착된 열 두 명을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당신의 사업이 실패한 상황에서 당신의 마음이 사업에 단단히 붙어 있었다면, 당신은 마음에 고통을 느낄 것이다. 사람의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온다(잠4:23). 사람의 마음은 고약 같아서 무엇에 닿기만 하면 거기에 붙어 버린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형편이 좋든 나쁘든, 그 인생이 어떻게 바뀌든 마음이 하나님께 단단히 붙어 있기 때문에 요동하지 않는다. 마음이 바른 사람은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잘하면 당신도 그에게 잘하고 다른 사람이 당신을 잘못 대하면 당신도 그를 잘못 대하거나 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다루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만일 사람이 바르면 그는 일에 대해서 너무 주관적이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하나님의 뜻을 귀히 여김
배움이 있는 사람은 모든 일에서 두려워하고 조심하고 주의하며,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지를 보려면, 그가 일을 할 때, 궁극적으로 자신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의지해 하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생명을 의지해서 하는지를 보면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마음의 문제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문제이다. 일을 잘못 했더라도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다면, 일을 좀 잘못한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수 있다.
때로 우리는 사람들이, 『이러이러한 일에 대해서 우리는 마땅히 기도를 더 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다. 나는 그러한 말을 들을 때 항상 편치 않음을 느낀다. 이것은 그 말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 옳지 않다는 것이다.
솔로몬은 금고리가 돼지코에 걸려 있으면 모양이 추하다고 말한다(잠11:23). 금고리는 좋은 것이지만, 어떤 사람은 그의 마음이 옳지 않고 생명이 옳지 않기 때문에 돼지코와 같다. 돼지가 금고리를 건다고 해서 돼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만일 금고리를 제한다면, 돼지를 귀중히 여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귀히 여기는 사람만이 올바른 사람이다. 아름다운 사람은 돼지 가죽을 걸쳐도 여전히 아름답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말하지만, 사람이 바르지 않다면 그런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뜻을 진실로 알 길이 없다. 하나님은 바르지 않은 사람에게 그분의 뜻을 알리지 않으실 것이다.
당신에게 축복이 있는가 없는가는 또다른 일로서, 축복이 있는 것과 사람이 바른 것은 별개의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그리 인색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마음이 바르지 않은 사람에게도 하나님은 축복하실 수 있다. 마음을 하나님께 맞추는 것은 시계 판의 눈금에 바늘을 맞추는 것과 같다.
먼저 마음이 올바라야 사람이 바르게 됨
사람의 마음이 바르면 그 사람도 바르다. 비록 일이 잘못되었을지라도 그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비록 잘못 했다해도 잘못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이 다른 사람의 축복이 될 수 있는지의 여부는 당신의 마음에 달려 있다. 당신이 바르다면 어느 곳에 가더라도 당신은 그곳의 축복이 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바르지 않다면, 하늘같이 큰 일을 해도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축복을 얻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어려움이 되는 것은 그가 한 일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 자신 때문이다. 양심은 의의 문제이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 마음은 오직 하나님께 올바른가 올바르지 않은가를 다룬다. 마음은 그 초점을 오직 하나님께만 맞추고 일에 맞추지 않는다.
교회 안의 많은 사람이나 일이나 사물, 예를 들면,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나 교회와 형제 자매 등에 대한 사랑조차도 사람의 마음을 주님에게서 떠나게 할 수 있다. 죄인은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이켜짐으로 구원받는 것이지 직접적으로 사람이나 일이나 사물에 관계하여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다.
만일 한 강도가 당신에게 와서 당신을 잘 대해 주겠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그를 믿지 말아야 하는데, 이는 그 사람이 옳지 않기 때문이다. 옛 이야기에, 족제비가 한번은 닭에게 새해 인사를 했다. 족제비의 마음은 바르지 않았는데, 이는 새해 인사를 하고 난 후에 족제비는 닭을 삼켜서 자기 뱃속에 넣을 속셈이었기 때문이다. 족제비의 마음이 바르지 않았기 때문에 닭은 족제비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주님께 봉사하는 일에 있어서 우리는 단지 일을 잘 하기만을 바라지 말고 사람의 마음을 중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