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는 7년전에 관상동맥 협심증으로 76세에 돌아 가셨다.
20여일전 광주고속으로 서울을 갔는데 차에서 내려 건물 문을
지나 걸어가다가 돌아서서 그 문을 한동안 바라 보았다.
내가 서울에 간다고 전화하면 아버지는 언제나 그 문에서 나를
기다리셨다.
올때에도 꼭 같이 오셔서 그 문에서 차 떠날때까지 기다리다
나를 배웅하셨다.
걸음을 걸으면 심장이 아프셔서 나보고 먼저 가서 표끊으라고
하시고 뒤에 오시곤 하셨다.
돌아가신 다음에 제사도 않지낼텐데 살아계실때 자주 찾아 뵐려고
했는데 생각대로 않되었다.
마지막 뵈온 것이 돌아가시기 한달전쯤 그 날도 아버지는 나를
그곳 까지오셔서 배웅하셨다.
심장통증이 심하셔서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셔서 대퇴부
정맥을 절단하고 그곳으로 심장까지 섬유관을 넣어 심장관상동맥
협심부위를 Tv모니터를 통해 보여 주는데 세군데다 심하게
막혀 좁아져있었다.
정갱이 부근 대정맥을 끊어다가 다시 우회도로을 내듯 이어야
하는 어려운 수술을 해야한다.
그때만해도 가슴한복판 뼈를 절개하여 양쪽으로 벌리고
심장을 떼어내어 얼음에 채워놓고 기계장치로 피를 돌리는데
그때 혈구가 많이 파괴된다고 한다.
세군데 혈관을 이식한후 떼었든 심장을 다시 잇고 전기 충격을
가한단다. 그때 심장이 뛰지 않으면 그걸로 끝이다.
수술 담당의사는 그당시 우리나라 심장의학의 최고 권위자인
이 웅구박사가 하기로 했다.
수술이 성공할 확율을 물어보니 80%라고 했다.
며칠후 수술하기로 날자가 잡혔다.
하룻밤을 꼬박 새우기도하고 며칠 잠을 못잤다.
직장때문에 지방을 오고가니 더욱 어려웠다.
나는 밤12시가 넘어 연대앞 여관을 찾든중 `장미여관` 간판이 눈에
띄어 그곳에 들어갔다.
나는 하늘 아버지께 매달려 간청했다.
"아버지를 살려 주십시요. 아버지와 함께 가든 약수터에 한번만이라고
다시 갈수있게 해주십시요."
그 순간 마음에 평안이 왔다. 그리고 확신이 왔다.나을 수 있다는
그런데 수술 전날저녁 잠자리에서 팔에 꽂았든 닝겔주사 바늘이
빠져 닝겔병하나 정도의 출혈이 있었기에 수술은 연기되고
본인이 수술을 싫다고하셔서 약물로 3년을 사시다 가셨다.
그일로 인해 나는 아버지를 자주 찾아뵈었고 더욱 친해졌다.
아버지는 내가 주는 설교테이프를 열심히 들으시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나와 좋은 시간들을 가지셨다.
서울지리를 잘모르는 나를 데리고 서울랜드도 같이 가시고
약수터도 가시고 평화시장도 구경시켜주셨다.
아름다운 추억들이다. 나는 3형제중 두째인데 나를 제일 반가워하고
좋아하셨다.
돌아가시기 3개월전쯤 항상 끼고 계시든 큐빅이 박힌 2돈자리
18k 금반지를 뻐어 나에게 주시며 나보고 끼워보시란다.
그리고 나보고 끼란다. 어머니의 만류로 다시 끼워 드렸다.
돌아가신후 그반지는 지금도 끼지는 않지만 내가 지니고 있다.
그 반지에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있다.
아버지는 나의 친구이자 속에있는 말씀도 하신 대화자이었다.
서울에 올라가면 이야기하다가 피곤할텐데 누우라로 하신다.
그러면 나는 누워서 앉아계신 아버지와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어머니는 버릇없다고 뭐라하신다.
그러나 나는 아무 문제도 없다.마음이 편하다.
주님의 품에 기대누워 밥을 먹든 요한과도 같이 말이다.
어머니는 모든 형식을 넘은 아버지와 나사이의 사랑을 모르신다.
몇년전까지도 서울에 올라가면 남부터미널 근처에 있는 약수터에
나 혼자 갔다.
그리고
"아버지 저 여기 왔어요"하고 그때를 회상한다.
아버지를 마지막 뵈온것은 돌아기시기 한달전쯤
그날도 나를 배웅하시려고 남부터미널까지 오셨는데 차가
떠날때 차차안에서 손을 흔들으니 이상하다.
나를 바라만 보신다. 그전 같으면 손을 흔들어 배웅햇는데
뭔가 근심어린 쓸쓸한 표정으로.
아! 나는 왜 그때 눈치를 채지 못했을까?
이 글을 쓰는 이순간 내눈에 눈물이 고인다.
그리고 돌아가시기 3일전 장기근무자 타군이동시 통근 거리로
발령이 났을때 전화했드니 반가워하시며 좋아하셨는데 그것이
마지막 작별일 줄이야!
일요일 아침 갑짜기 돌아가셔서 밈종도 못했다.
강남성모병원 응급실로 가셨고 영안실에 안치되셔서 얼굴도
볼수 없었다.
그 이튿날 염을 하는데 돌아가신 얼굴을 처음 보았다.
너무나 평안해 보였고 입가에는 신비한 미소마저 감돌고 있었다.
평소 무섬을 타는 아내와 대학에 다니는 딸은 오지말라고
했는데 딸과 아내를 불렀다.
아내도 이상하다고하며 누가 저렇게 만들었나? 라고 했다.
나는 아버지의 얼굴에 내볼을 대보았다.
차기는
하지만 아버지의 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 다음 발인날 저쪽 안치실 입구에 붉은 보에 덮인 관이 보인다.
나는
"아버지다"하고 반가워 달려갔다. 관위에 손을 얹었다.
아버지의 따뜻한 정이 느껴진다.
아버지도 둘째 아들이다.
서울로 대동상업학교 다니실때 시골집에 내려오셔다가 오는데
할아버지께서 집에서 떨어진 들마당까지 나와 서서 멀리
고개 넘어 올때가지 바라보셨다고 한다.
다른 때 같으면 방에서 절하고 나왔는데.....
그것이 마지막 본 할아버지 였다고 하셨다.
그리고 돌아가시든날 새벽 할아버지의 모습이 선명히 떠올라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그날 오후 부음 전보를 받으셨단다.
큰아버지는 성격이 놀부같은데가 있고 아버지는 흥부같은데가
있었다.
내가 어렸을때 어느날 아버지께서 술을먹고 오셨는데
아버지!아버지!하고 부르며 우는 모습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것이 내가 아버지 우는 모습을 처음본 것이고 마지막 본 것이다.
내가 대학 시험공부하다 악성빈혈이 걸렸을때 가정형편이
어려웠는데도 나를 살짝 데리고 나와 국밥을 사주시기도 하셨는데...
돌아가신후 40여일쯤 지나서
처음 아버지를 꿈에서 보았다.
아직도 못떠나고 근심하고 계신 표정으로 떠나기를 거부하시고
계셨는데 교통법규 순리를 따르지 않고 있었다.
혼자 남은 어머니 걱정 또 이생의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셨다.
그 날아침 대학다니는 외동딸이
나를 부른다.아빠! 나 할아버지 꿈에서 보았다.
베옷을 입고 오셨는데 아빠가 할아버지 한테 막 혼냈어
돌아가셨으면 가야지 여기는 왜 오셨느냐고..
그날 아침 아버지는 분명히 오셨다.
나는 무릅꿇고 기도하듯 아버지께 말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육체와 함께 모든 것을 땅에 묻고 주님의 인도를 따르십시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버지를 위해서 자손들에도 좋은 것입니다."
라고
그리고 주님께 부탁했다.
"주님 아버지 영혼을 인도 주십시요." 그리고
다시 아버지께 말했다. 천사의 인도를 따르라고....
그 기도를 할때 아버지가 옆에서 듣고 있는 느낌을 분명히 받았다.
아버지의 신앙상태는 겨우 구원받은 상태로 육신에 속한 모든 것을
아직 끊지 못하고 계셨다.
그리고 한 3개월후
퇴근후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났다.
지금 어디에 가계신가? 마음속 깊이 진정
궁금했다.
주님께 알려 달라고 기도해 볼가하다가 포기했다.
사단이 엉뚱한 환상을 주면 속아서 내 마음만 괴로울것 같아서이다.
다음날 새벽 잠에서 깨었다.
커튼이 붉으면 가로등 불빛이니 아직 날이 밝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커튼이 흰빛이다.날이 밝은 것이다.
하루 하루가 힘들 때이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때 대여섯 발짝 앞에 아버지 얼굴이 나타났다.
아. 아버지다!
그 얼굴 모습은 30대로 보였고 얼굴 전체가 충만한 웃음과 기쁨이
가득한 표정이다.
그 얼굴은 걸어오듯 내 눈앞으로 서서히 닥아와서 내 얼굴앞에
까지 와서 사라졌다.
나는 이세상 누구에게서도 그토록 충만한 기쁨이 넘치는 모습을
보적이없다.
무었을 더 바라겠는가?
그날 이후로 흰머리에 주름진 얼굴 심장이 아파 고통하시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나 연민은 완전히 사라지고
아버지가 부럽기만 했다.
나도 언제 이세상 의무를 다하고 저렇게 기쁨이 충만 곳에가서
쉴수 있을까!하고
주님도 아버지도 내 마음을 아시고 그렇게 보여 주신 것이다.
나는 언젠가 아버지를 다시 볼날을 기대한다.
사랑하는 주님도!
왜 이런 이야기를 쓰는지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를 것이다.
위에 쓴 내용들도 성경적이냐?고 반문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과 그렇게 가까운 맏아들과 동생사이라면
나를 낳으신 하늘 아버지와는 육신의 아버지 보다도 더
가까운 그런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이다.
그래서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으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아빠)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8:15)
이것이 하늘 아버지와 나사이의 사랑의 관계이다.
육신의 아버지보다 더 깊고 높은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시는
하늘 아버지를 모시고 육신의 아버지였든 형제된 아버지도
그 하늘 아버지의 무궁한 자비의 사랑가운데서 영원을
보내게 될것이다.
그러면 이번에는 하늘 아버지와 성자하나님이신 예수님과의
하나된 사랑의 관계를 살펴 보겠습니다.
예수님 땅에 계실때 여러번 울고 슬퍼하셨죠.
"아버지께서 내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안에....."(요한10:38)
"나(예수님)와 아버지는 하나....."(요한10:30)
곧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일심동체(一心同體) 한 마음
한몸 입니다.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실때 하늘 아버지도 눈물을 흘리시고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리시고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를 올리실때 하늘 아버지도 함께 울고 통곡하셨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고통하시고 목말라 하실때 예수님안에
계시든 하늘 아버지께서도 함께 못박혀 아들의 고통과 절망과
죽음을 모두함께 당하시며 당신의 형상으로 지으시고 당신의
생명을 불어넣어 나으셨든 사단에게 유괴되어 집나간 탕자 같은
우리를 위해 함께 기도 하셨답니다.
탄생에서 겟세마네의 죽음까지 사랑하는 아들 주님과 함께 손잡고
가시며 그 모든 슬픔과 고난과 탄식을 아들과 함께 하셨답니다.
맏아들되신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보다 더큰 사랑을 가지고
오늘도 탄식하고 울며 우리를 돌아오라고 부르신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4:16)
아버지의 품속에 있든 사랑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에게 오셔서
하늘 아버지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늘 아버지를 떠난 탕자같은 우리를 위하여 주님과 힘께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피를 흘리고 죽어 속죄하시고(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9:22)
그 옆구리로 심장을 창으로 찔러 영원 무궁한 생명의 보혈을
우리에게 다시 부어 우리를 다시 살려 낳으신(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고 심장에 가장 가까운 갈비뼈를 취하여 하와(신부)를 탄생시킴
같이)
믿음으로 그 보혈로 사함을 받고 그 보혈로 생명을 받아
하늘 아버지의 자녀가된 우리는 이 사랑안에 거하면서
주님의 뜻을 순종한다면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처럼
많은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있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댄 동산 책자로 병상 전도를 하신다기에 참고가 될까하여
간단히 글을 올려 보았습니다.
물댄 동산에 사랑의 열매가 가득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며
마칩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은 *예수님의 눈물 = 하늘 아버지의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올렸든 글입니다.
하늘 아버지의 사랑과 성자하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우리를
도우시고 대신드린 간구에 감사드리며 삼위일체되신 성삼위께
영원무궁토록 영광 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