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상 14: 6절입니다.
‘요나단이 자기병기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 할례 없는 자들의 부대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한 절을 읽었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고’ 하는데, 만일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이 안 계셨더라면 그 땅은 천 년이 지나고 만 년이
지나고 몇 억 년이 지나도 여전히 혼돈해야 공허해야
하고 흑암 속에 있어야 했습니다.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 속에 있어도 하나님이
계시니까 하나임이 빛이 있으라 하시니까 어두움이 물러가고, 궁창 아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어라
하매 물이 나뉘어 땅이 드러나고 땅은 씨 맺는 채소와 열매로 과목을 내라 그대로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삶을 살다가 병에 들 때도 있고 어떤 시달리는 어려운 일들도 있고 또 절망적인 일들도 있습니다. 그것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우리가 고통스러울 때, 슬플 때, 괴로울
때, 우리 속에 하나님이 계시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읽은 사무엘상 14장은 이스라엘 백성과 블레셋과의 전쟁하는 이야기인데 블레셋 사람들이 병거가 3만, 마병이 6천, 백성은
해변에 있는 모래보다 많았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도망가고 사울 왕 곁에는 6백 명만 남아 있었습니다. . 전쟁이 비교가 안 되는거죠. 요나단은 왕자로서 그런 일들을 살펴보면서 그 문제를 자기 앞으로 끌어와야 했는데, 이제 전쟁이 일어나고 아버지가 죽으면서 자기가 그 나라를 이끌어야 하는데 이 나라를 어떻게 이끌거냐, 요나단은 그 아버지의 지혜도 의지하지 않았고 자기의 용맹도 의지하지 않았고.
‘그러나 내 안에 하나님이 계셔. 여호와께서 일하셔. 그래
여호와께서 일하시면 역사가 일어나겠구나.’ 그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
마음이 이 요나단 마음에 자라나기 시작하는 거에요. ‘여호와께서 우리 가운데 일하실 거 같다. 여호와게서 일하실 거야. 여호와께서 일하신다면 문제가 안돼. 여호와께서 일하신다면 이 구원이 사람 많고 적은데 달려있지 않아’. 요나단
마음에 안에 하나님을 기대하고 소망하는 마음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긴
한데 어려운 일을 당해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무리 그 마음 구석구석을 파 뒤져봐도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안 계시니까 자기의 지혜, 자기의 방법,
자기의 수단, 자기의 노력으로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땅이 뭘 해서 어두움을 내쫒고
혼돈을 공허를 내 쫒겠습니까? 하나님이 하셔야 하는데 땅이 무얼해서,
땅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요나단은 땅인 자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여호와께서 우리 속에서 일하시겠다. 여호와께서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겠네.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배푸시겠네.’ 이제 그 소망을 자기 자신에게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두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전혀 신앙세계를 잘 모르고 때 성경을 몰랐을 때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 죄를 해결하려고 하나님께서 내 죄를 해결해주셔야 하고 예수님이 내 죄를 씻어주셔야 하는데, 내가 그 죄에서 벗어나려고 얼마나 발버둥을 쳤는지 모릅니다.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고 회개하고 뭐라도 했습니다. 제가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보니까 아~ 그때 내가 비록 잘 못됐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뭐가 잘못 되었느냐, 죄를 내가 해결할 수 없다. 죄는 예수님이 해결해야 하는데.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께서 어떻게 일을 하실 것인지, 예수께서
어떻게 일하셨는지 그것을 찾아봐야 하는 거죠. 알고 보니 예수님이 우리 죄를 지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그리고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기억지
아니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죄를 씻었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죄를 씻을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죄를 씻으려고 하는 사람은 나를 믿는 사람이고, 나는 죄악투성이고
악을 저질렀지만 하나님은 내 죄를 씻어주시고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 죄를 예수님께서 넘기셔서 그것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기 요나단은 이제 수십 만 명에 대군하고 자기 병기 맡은 2명이
어떻게 그것을 감당하겠냐 말도 안됩니다. 요나단은 뭐라고 하냐면, 우리
올라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해서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저희들 교회에 IYF월드캠프가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해운대에서 우리가 저녁 음악캠프를 만들었습니다. 백사장에서
너무 아름답고 좋은 자리인데 비가 옵니다. 우리가 그 비를 멎게 할 능력이 없고 우리가 비를 좌지우지
할 수가 없는데 생각을 해봅니다. ‘하나님이 이 월드캠프를 기뻐하실텐데. 이 캠프에 목적이 하나님을 소개하기 위한 것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하는데 하나님이 이 캠프를 기뻐하시면
그러면 일하시겠다. 하나님이 이 비를 멎게 해주시겠다.’ 그러면서
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잘해서 적군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요나단은 그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 하나님을 바라봤습니다. 그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하나님께서 요나단
믿음에 따라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옛날에 참된 신앙의 세계를 모를 때 어떻게 했느냐 하면 늘 나 자신을 바라봤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했지? 자유가 없습니다. 내가 어떻게 했지? 죄를 지었다.
나쁜 짓 했다. 거짓말했다. 도둑질했다. 악을 저질렀다. 그러니까 내가 행한 것에 대하여 거기에 많은 것에
빠져 내가 잘할 때 기쁘고, 못할 때 부끄럽고. 여기서 내가
아니고 여호와께서.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살아계셔서 일하시면 어떤 일을 하시겠느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일하시겠구나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싸우시겠구나.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역사하시겠구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거기에 기대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요나단이
말할 수 없는 국가적 공경에 빠졌는데 나라의 왕자로서 얼마나 그 마음이 답답하고 얼마나 그 마음이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런데 요나단의 마음 안에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요나단의
마음 안에도, 기억 안에도 있었습니다. 요나단의 기억안의
하나님을 일으켜 세웁니다. ‘하나님 당신이 일하신다면 나에게 큰 문제고 우리 이스라엘의 생명을 좌우하는
중대한 문제지만 하나님 당신이 일하신다면, 당신이 은혜를 배푸신다면,
당신이 축복하신다면 저 적이 많은들 당신이 그 하나 못 막겠습니까? 당신의 손은 저 많은
적보다 크시니까 능히 하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요나단은 많은 병기나 전술이나 무기나 능력에 따라
말한게 아닙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에 의해서. 그래서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너무 좋은 말씀입니다.
우리도 오늘 요나단을 닮아봅시다. 우리
아들이 태어났을 때 ‘여호와께서 우리 아들에게 일하시겠구나’ 하나님의
소망을 가져보고. 아들이 병이 났을 때 ‘ 우리 아들을 여호와께서
고치시겠구나.’ 어려운 문제를 당했을 때 ‘이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해주겠구나. 하나님이 우리 앞에 길을 여기겠구나.’ 우리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을 바라볼 때 그때 하나님이 정말 능력으로 일하실 줄을 믿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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