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일 토요 영상교제
[사도행전 20: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 누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 보니 죽었는지라”
만일에 여러분, 제가 어느 교회 집회를 하다가, 밤 늦게까지 집회를 했는데, 3층에 앉아있던 청년이 떨어져서 죽었다면, 얼마나 크고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성경을 보면 우리가 당하는 좋은 일들, 어려움 일들 할 것 없이
똑같이 성경 이야기에 다 나옵니다. 근데 이 성경을 읽어보면, 항상
그런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그 어려움 뒤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 어려움이 회복되고, 축복으로 바뀌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두고가 3층 창문에 걸터앉아 졸다가
밖으로 떨어져 죽었는데, 저는 종종 우리교회 형제 자매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시험 들거든 창문에 걸터 앉은 것까지는 좋다, 그런데 안으로 떨어지라, 그러면 산다. 밖으로 떨어지면 죽는다.” 그랬습니다.
사단은 우리 마음 속에 여러 가지로 일을 해서 벌써 바울의 마음하고 유두고의 마음이 다른 것을 나타내고
있지요. 바울은 이제 내일 떠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전하는
말씀이기 때문에 ‘내가 떠난 이후에 흉악한 이리가 와서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리라. 너희 중에도 사람들을 좇아 자기를 쫓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이 일어날 것을 안다.’ 이제 바울이 떠나가면 그 교회가, 그 양떼가 어떻게 지낼 것인지
그걸 생각해서 밤이 맞도록 계속해서 바울은 말씀을 전합니다. 유두고는 아마 더우니까 창문에 걸터앉은
걸로 보입니다. 3층에 걸터 앉았는데, 거기 보면 3층 누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왜 등불을 켰어요? 어두우니까요. 등불을 켰으니까 이제 그 등불이 창문을 통해서 어두운
세상에 비치는 교회를 나타내는 것인데, 유두고가 창문에 걸터 앉았다는 것은 ‘교회의 밝은 빛이 세상에 비취는 것을 가로막는 일을 한다’,
그래서 성도들이 때때로 하나님의 종의 인도를 받고 이끌림을 받으면서 믿음이 자라야 하는데, 그냥 머물러 있다 보면 그냥 머무는 게 아니라, 자기가 정말 어둠을
가리는, 빛을 가려서 어둠을 밝히지 못하는 그런 일을 하고 있는데도 유두고는 창문에 걸터 앉아서 전혀
깨닫지 못하는 거지요. 바울이 이제 더 깊이 말씀을 강론하니까 견디지 못하고 꾸벅 졸다가 3층에서 창문 밖으로 떨어져 죽임을 당합니다.
제가 성경을 읽으면 참 감사한 것이, 제가 예수님 안에서 지난 50여 년 이상 지내오면서, 사람이 창문에서 떨어져서 죽는 그런 일은
없었지만, 월드캠프를 하거나, 수양회를 하거나, 전도여행을 할 때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빌립보가 감옥에 갇힌 것은 그냥 갇힌 것이 아니라, 빌립보 감옥에
있는 그 간수들과 죄수들을 구원하기 위한 조건으로 삼았던 것처럼 우리에게 오는 어려움은 어떤 어려움도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귀한 뜻과 섭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일을
마무리를 할 때, 항상 하나님이 선으로 마무리를 하는데, 만일에
유두고가 죽은 그것으로 끝났다면 너무 슬픈 일이지요. 근데 그 유두고가 떨어져 죽었는데, 창 밖으로 떨어져 교회 밖으로 떨어져 나가 죽었는데, 하나님이 바울을
통해서 그 유두고 청년을 살리는 겁니다. 바울은 설교로 말미암아 유두고가 죽었다는 그런 아픔도 있었는데, 반대로, 다시 살아나는 큰 기쁨이 그들 속에 있었다는 것 입니다.
저는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걸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유두고가 떨어져 죽은 그것으로 끝내기를 절대 원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땅이 공허하고 흑암
속에 있는 그걸로 끝내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하나님이 계속해서 하시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어두움을 밤을, 땅을 밝히는 일,
열매를 맺게 하는 일,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일, 교회를
떠나간 사람을 다시 돌아오게 하는 일, 이런 일들을 하나님이 계속해서 행하고 계신 거지요. 저도 목회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일로 믿음이 연약한 자들이,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닌 걸 봅니다. 그런데 그들이 세상에 가서 고통 하다가 다시 돌아올 때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정말 지금도 교회를 떠나서 고통스러운 세상에 자기도 모르는 새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경우가 있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살모사가 쥐를 잡을 때 달려들어 쥐를 한 번 꽉 문 다음에 놓아준다고
합니다. 쥐는 살았다고 달려 가는데, 물었을 때 이미 살모사가
독을 그 몸에다가 뿜어 넣으면, 이빨에서 독이 나와서, 이
쥐는 자기도 모르게 도망 가는 사이에 죽어버리고 마는 것처럼, 자기는 자유로운 것 같지만 사탄은 우리
마음 속에 많은 독을 넣어서 그렇게 넘어뜨리게 하지만, 더 감사한 것은 바울이 “저에게 생명이 있다, 떠들지 마라.”
그렇게 말합니다. [행 20:11-12] “그리고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래 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사람들이 살아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위로를 적지 않게
받았더라” 너무 놀라운 거지요.
저들 교회 안에 형제 자매들이, 어린 아이가 자라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그 다음에 또 실수하기도 하고, 병들기도 하고 그렇지만, 가정의 부모님의 은혜 가운데 아이들이 잘 자라듯이 우리 신앙도 꼭 그렇습니다.
나이가 아무리 많고 그래도 영적으로 어린 사람은 어린아이라서 바울이 ‘젖으로 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젖을 먹고 어린 아이들이 자라듯이, 우리 신앙이 그냥 자라는 것이 아니라, 부모들의 보호 아래 자라듯이,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인도를 받고 교회 안에서 자라면서, 정말 교회
안에 있으면 넘어지고 쓰러져도 일어날 수 있고, 다시 깨어날 수 있고,
밝은 말씀 속에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이런 복이 있는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제가
부활절에 말씀 드렸듯이, 예수님은 시험 들고 주님을 부인한 베드로를 찾아서 갈릴리 바닷가까지 가서 떡을
준비해놓고, 물을 준비해놓고, ‘금방 잡은 고리를 가져와라’ 같이 먹으시면서 교제를 해서 베드로를 귀한 일꾼으로 만드는 것처럼, 어떤
시험에 빠지고 어떤 어려움에 있어도, 3층에서 떨어져 죽어도, 하나님의
교회는 그들을 살리고 세우는 일을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 주위에 어떤 시험 든 사람도 예수님은 능히 살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포기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우리 교회
안에 올해 정말 유두고가 살아난 것처럼 영적으로 죽었던 많은 사람이 살아나고 우리 마음에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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