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금 엘버커키에 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라시아스 합창단을 아름답게 하나님이 만드신 뒤에 그라시아스 합창단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시는데 너무 놀랍습니다. 어제는 제가 그 엘파소에서 크리스마스 칸타타를 했는데 약 목회자들이 수십 명이 와서 복음을 듣고 너무 행복해하고 저녁에도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칸타타를 마치고 난 뒤에 가지 않고 한참 서서 이야기를 하고 그러다 돌아가는걸 봤습니다. 이런 귀한 복음의 일은 어떤 인간의 노력이나 행위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다는 사실을 이야기 해드리고 싶습니다.
성경 에베소서 2장 9절에
보면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사실 저는 옛날에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니면서 행위를 굉장히 중요히 여겼습니다. 내 속은 추하고 더럽고 악한데도 내 마음 속에 선한 행위가 한 번 나타나 선한 행위를 한 번 하면 난 그렇게 자랑스럽고 으스대고 싶었고 자신이 있었고, 반대로 행위가 나빠가지고 내가 악을 행하고 그럴 때는 하나님 앞에 서기 부끄럽고 그런 삶을 참 오랫동안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에베소서 2장을 읽어보면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그렇게 말하죠. 이는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 다음 9절에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 자체는 행위하고 전혀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더러운 죄를 짓고 악을 행했기 때문에 우리가 볼 때 아무리 선하게 보이고 아무리 아름다워 보여도 하나님 볼 땐 더러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마음을 보시기 때문에. 하나님 보실 땐 그렇지만은 우리 볼 땐 안 그런 겁니다. 사람이 암만 추하고 더러운 사람이라도 행동이 선하게 보이면 정말 선한 것처럼 보이고, 행동이 거룩해 보이면 정말 거룩한 것처럼 보이고, 그것으로 만족할 때가 많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선한 일을 해도 그것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질 못하고 그걸 보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될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실 때 우리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은 예수님 십자가의 보혈에 있는 것이고 예수님의 은혜에 있는 것이지 우리의 행한 행위 그 자체가 하나님 앞에 조금도 선하거나 깨끗하거나 그렇게 하나님이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인간은 마음의 세계를 못 보고 행동을 보기 때문에, 행위가 선한 사람을 선하게 보고 행위가 선하지 않게 보는 사람 선하지 않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인간으로서 더럽고 추하기 때문에 무슨 노력이나 무슨 일을 해도 우리가 저지른 수 없이 많은 죄 가운데서 우리 노력으로 손끝만큼도 우리 죄를 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우리가 선한 일을 해서 자기 혼자 선해 만족하고 기뻐하지, 하나님 앞에 그 어떤 우리의 노력이나 행위도 선도 상달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고 우리의 노력과 우리의 선행과 전혀 상관없이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님 넘기셨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 피로 은혜로 값없이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절대로 우리의 노력으로나 선행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걸 잘 모르기 때문에 자꾸 자기의 선을 의지하고 자기가 선한 사람인줄 알고 자기 괜찮은 사람인줄 알고 자기 신앙생활 잘하는 줄 알고 있는데 그런 사람은 신앙은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이라는 것은 내게 선한 것이 없고 의로운 것이 없고 거룩한 것이 없기 때문에 내 구원은 다만 예수님 십자가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퍼센트 예수님 십자가에 피를 흘렸기 때문에 내가 거룩해졌고 의로워진 것이지 내 선이나 내 어떤 행위로 절대로 선해질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난 뒤에도 우리가 자꾸 선을 행하고 어떤 의를 행하고 그 의에 만족하고 행위에서 만족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을 받고 선한 삶을 사는 것도 내가 그렇게 노력하고 애써 되어 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우리 마음을 정결케 하고 예수님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 삶을 거룩하고 깨끗하고 의롭게 해주시는 것이지 우리 행위로는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이 우리 속에 역사하기 위하여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에베소서 2장에서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거룩하게 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죽어서 부활해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고 하나가 됐기 때문에 그래서 선한 것입니다.
저는 나를 조금은 알죠. 내 속에 선한 것이 없었습니다. 구원을 받고 난 뒤에 놀랍게도 내가 옛날에 내가 하지 않았던 일을 하는 걸 봅니다. 내가 옛날에 하지 못했던 일을 하는걸 보는데 내 마음을 보면은 뭘 느낄 수 있냐 하면 ‘이건 절대 내가 하는 것이 아니야. 난 이렇게 못해. 난 더러워. 난 사람들에게 정말 관용을 베풀 줄 모르고 난 추하고 더러운 인간인데 내가 이렇게 되어 지는 것은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이야.’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좋은 칼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어디 놔뒀는지 몰라서 한참 찾다가 그 칼을 찾았으면 ‘아이고 잘 놔둬야겠다. 잃어버릴는지 모르겠다.’ 다시 놔뒀다가 다시 칼이 필요할 때 그것을 쓰는 것처럼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는데 예수님이 계신 줄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을 쓰지 못하고 내가 일을 하려고 하는데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신걸 정확하게 안다면 내가 일하는 것 하고 예수님이 비교가 안되니까 예수님이 일하도록 할 것입니다. 칼이 있는데 어디 있는 줄 몰라서 칼을 두고 이빨로 물어 뜯고 뭐 다른 걸로 끊으려고 하고 그럴 때가 종종 있죠. 그건 왜냐하면 칼이 있어도 어디 있는 줄 모를 때 그런 것입니다.
우리 속에 예수님이 계셔도 예수님이 일한다는 사실을 몰랐을 때 내가 하려고 애를 쓰고 노력하는데 예수님 내 속에 일하신다는 것을 정확히 알게 되면 내가 일하는 게 무익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일하도록 하고 그리고 예수님 우리 속에 일을 하실 때 그 때, 정말 우리의 삶이 거룩하고 아름다운 삶으로 생활까지 옮겨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면 내가 행위가 거룩해야 하는 게 아니라 믿음으로 내 안에 주님이 계시고 주님으로 내가 거룩해졌다는 사실이 믿어질 때 그 때 내 마음속에 주의 역사가 나타나서 거룩한 삶이 만들어지고 이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구원받고도 참 선하게 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땐 선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내가 아예 선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 내 안에 나를 선하게 하셨단 사실을 믿기 때문에 ‘주님과 나와 함께 있어. 주님은 악을 싫어해. 나를 선하게 인도할 수 밖에 없어.’ 그런 마음을 갖고 살 때 주님 우리 속에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 사함 받는 것도 십자가를 믿음으로 오고, 거룩한 삶을 사는 것도 내 노력이 아닌 예수님 십자가의 은혜로 되어진다는 사실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우리가 미국에 크리스마스 칸타타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가는데 교회와 연결돼 귀한 삶을 살고 그들의 삶으로부터 예수님이 나타나도록 기도해주시길 바라고 남은 칸타타에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여러분, 여러분께 말씀을 드립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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