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4장 39절입니다.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네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한 절을 읽었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이 사람을 만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근데 신약성경에 예수님이 사람을 만난 이야기가 참
많이 나오죠. 삭개오도 만나고, 그리고 눈 먼 소경, 그리고 나병 환자,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예수님을 만난 뒤에 예수님과 대화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요한복음 4장에 사마리아 여자에 관한 이 이야기만큼 대화 내용이 길게 기재된 건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와 최장시간 우물가에서 단둘이 말씀을 나누셨습니다.
말씀을 나누시는데 이제 여자가 예수님께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면은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째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까?”
그 질문을 합니다. 잘 이해가 안 가죠. ‘유대인들은
우리를 개처럼 취급하고 인간 취급을 안 하는데 왜 저 분은 유대인인데 나에게 물을 다 달라 하실까?’ 그
이야기부터 두 번째 여자가 질문하기를, 예수님이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
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여자가
볼 때, “이 우물은 깊고 물길을 그릇도 없는데 어디서 생수를 얻겠습니까?” 이해가 안가는 이야기입니다. 세 번째 이제 예수님께서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이런 이야기는 ‘어떻게
물을 한 번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지? 영원토록 솟아나는 생수가 되지?’ 이해가 안 갑니다. 그런데 여기서 여자는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게 하옵소서. 전혀 여자의 마음에 맞지 않는 이야긴데 여자는 그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마음이란 게 있어서 아무 이야기나 받아들이는 거
아닙니다. 녹음기는 좋은 이야기를 해도 기쁜 노래를 해도 욕을 해도 나쁜 소리를 해도 ‘이 놈의 녹음기 다 때려 부셔야겠다’ 그래도 녹음기는 받아들여서 녹음을
합니다. 근데 사람은 녹음기도 아니고 스피커도 아니기 때문에 말을 하거나 말을 들을 때 마음에 생각을
해서 생각에 맞는 부분을 받아들이고 맞지 않는 부분을 받아들이지 않는 게 동양 사람들입니다.
여자는 예수님께 세 가지 질문을 하는데 “당신은 유대인인데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까?” “당신은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생수를 얻겠습니까?” 세 번째,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그게 말이 안 되는 이야기가 아니지 않습니까?” 셋 다 이해가 안
갑니다. 근데 이 여자는 그 세 가지 이야기를 다 받아들입니다. 여자의
마음에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이해가 안 갑니다. 근데
어떻게 그걸 받아들이죠? 어떻게 받아들일 수가 있었습니까? 여기서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평가하는 기준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정확하다고 생각하면
남의 이야기를 받는 것보다 내 이야기를 하는데 주력을 합니다. 그래서 내 이야기를 설득시키려고 계속하죠.
정신병자가 되는 가장 큰 원인은 정신적인 고립에서
이루어 집니다. 고립된 사람은 자기 생각 안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자기 생각과 상대방, 주변의 사람 생각이 다를 때 고립이 되는 것이고 그걸 강조하려고
하다 보면 정신병자는 남의 얘기 듣는 건 전혀 안 듣고 자기 주장을 강하게 하려고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정신병자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읽는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이 사마리아 여자 이야기는 정신병자가 되어 가는 사람의 반대의 사실이죠. 정신병자는 자기가 옳고 남이 틀렸기 때문에, 내가 옳기 때문에 어쨌든
내 이야기를 설득시키려고, 들려 드릴려고 애쓰는 것이고 반대로 여자는 자기가 이야기하는 것, 예수님의 얘기, 자기가 전혀 안 맞으니까 그걸 반발해야 되고, 아니라고 주장해야 되고, 내 의견이 옳다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이
여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하고 맞지 않고 이해가 안 가는 이야긴데 그 얘길 다 받아들이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 요한복음 4장에 이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자 대화한 이 내용이 가장 섬세하게 세밀하게 길게 기록된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마리아 여자와 같은 사람이 돼서 예수님 말씀이 내 마음에 맞을 때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내게 안 맞고 틀리지만 예수님 생각이 옳으니까 그걸 받아들이는 여자가 된 거죠. 여자가 이렇게
되기를 어떻게 되야 합니까? 중요한
것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했고 맞다고 생각했고 똑똑하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들이 어느 날 보니까 자기는 다 틀렸습니다. 여자는 처녀 때 좋은 신랑을 만나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낳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했을 겁니다. 그렇게 살기 위해 여자가 살았는데 살다 보니까 남편이 하나, 둘
자기를 버립니다. 첫째 남자는 이래서 버렸고 둘째 남자는 이래서 셋째는 이유가 어찌 됐든 다섯 남자에게
버림을 입습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 남자와
살면서 비로소 여자는 자기 자신을 깨닫습니다. ‘내가 이러면 잘 살줄 알았는데, 옳을 줄 알았는데, 내가 옳은데 왜 남편이 나를 떠나지? 나를 사랑하지 않지? 나를 버리지?’
그래서 이 여자가 느낀 것이 바로 뭐냐하면 ‘내가 틀렸구나. 내가 잘못됐구나. 내가 잘난 여자가 아니구나.’ 자기를 발견한 겁니다. 자기가 틀린걸 아는 사람은 나하고 달라도
틀린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남의 얘기를 받아들입니다. 근데 내가 틀린걸 모르면 받아들이지 못하죠.
우리는 아담의 후손으로 죄를 짓고 다 틀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참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고 자기 주장을 펴기에 바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은 예수님처럼 변해가는 거죠. 누가 그렇게 가능할
수 있습니까? 이 사마리아 여자처럼 ‘난 내가 옳은 줄 알았어. 내가 하면 잘 되는 줄 알았어. 그런데 지금 놓고 보니까 내가 한
게 다 틀렸구나. 어리석었구나. 바보였구나. 잘못했구나. 악했구나.’ 그걸
이제 사마리아 여자가 발견하는 겁니다. 그걸 깨닫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이 여자는 자기를 믿는 믿음 밖에 없는 여자여서 자기를 믿는 믿음이 무너지고 그게 마음에 회개가 되는 겁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제부터 예수님의 말씀은
곧 예수님의 마음인데 여자의 몸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사마리아 여자의 몸이지만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이 여자가 자기 마음으로 살지 않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고 예수님 말씀으로 사니까 예수님을 통해 나타났던
것이 여자를 통해서 나타나 너무 신기합니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가서 사람들에게 외칩니다.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너무 놀라운 것은 저는 목사인데도 전도해도
그렇게 잘 안 되는데, 여자가 가서 몇 마디 했는데 사람들, 온
동네가 그 여자 다 말을 다 듣고 예수님 앞에 나와서 여자의 말을 듣고 변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자, 남편을
다섯 번이나 바꾼 여자, 그 말을 통해 누가 변할 것 같습니까? 사마리아
여자 말 듣고 변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변할 사람은 있죠. 이제 사마리아 여자는 껍데기가 사마리아 여자지 예수님의 마음을 받았으니까 마음은 사마리아 여자의 마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의 육체를 빌려서 그 속에
들어가서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자 몸을 빌려서 당신 일을 하셨던 것처럼 오늘도
예수님께서 못난 우리를 빌려서 우리 속에 들어와서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의 마음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예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그 말씀이 우리 안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형성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는 말이 예수님 말이 되고 우리가 하는 행동이 예수님의 행동이 되고
우리가 걸어가는 길이 예수님의 길이 됩니다. 껍데기는 나인데 내 안에 예수님이 들어와서 일하시는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 생각을
해보세요. 그냥 술이나 마시고 담배 피고 방탕하게 살던 여자가, 어느
날 그 사람들 앞에 이야기하면 그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사람들의 마음이 녹고 변해서 예수님에게 나오는 아름다운 여자. 성경 어디에 봐도 우물가에서 잠시 만난 예수님으로 이렇게 변화되어 자기만 아니라 온 동네 사람을 변화시키는
이런 역사는 사마리아 여자에게 밖에 없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정확하게 자기가 틀린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가 못난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기 생각을 따라 자기를 믿고
살기가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그걸 버리고 예수님의 마음을 받았습니다.
오늘도 유대 땅 베들레헴에 예수님이 나실 때
잠자리가 없어 방을 달라고 요셉이 외쳤던 것처럼 예수님이 방을 구했던 것처럼, 오늘도 예수님은 당신이
들어와서 거할 수 있는 몸을 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의
몸은 예수님이 거할 전을 삼으십시오. 예수님을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이 여러분 마음 안에 들어오면 여러분도
육체는 여러분 육체지만 삶은 예수님의 삶이 됩니다. 사마리아 여자처럼 여러분을 통해 일하신다면 예수님이
여러분의 기뻐하시고 열매를 맺으실 줄 믿습니다.
풍성한 한가위, 오곡이
무르익고 백과가 색깔이 변해 익어가는 이 가을에, 여러분들 마음도 예수님으로 익어가서 여러분 볼 때
옛날의 여러분 모습이 아닌 예수님 모습을 나타내고 여러분 주변에 가족들, 친척들이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 앞에 나오는 은혜를 입는 귀한 사마리아 여자 같은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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