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2장 3절입니다.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가지고 예수께로 올쌔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이제 우리가 여러 가지 목적을 향하여 시장도 가고 학교도 가고 농사 지으러도 가고, 여기 성경에는 중풍병자를
메고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소망스러운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크고 작은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 앞에 나아갈 때죠. 중풍병자가 예수님 앞에 나아가기까지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모르고 예수님 나를 고치시기를 바라고 믿는 믿음 하나 가지고 예수님을 향해 나아갑니다.
가버나움에 예수님이 계신 집에 이르렀습니다. 근데 거기 갔을 때 생각지 못한 일이 생긴 것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왔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중풍병자를 들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성한 사람도 들어갈 수 없는데 침상에 누워 있는 사람을 데리고 어떻게 갈 수가
있겠습니까? 일단 안 되는 것 같고 앞이 막히는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었죠. 여기서 이제 중풍병자나 중풍병자를 메고 왔던 사람들은 ‘아, 안 되는가 보다. 왜 오늘 이렇게 하필 사람이 이렇게 많이 모였어. 하나님 기뻐하지 않는 것 같애.’ 그런 생각을 갖기 쉽다는 거죠.
우리가 복음 일 하는 동안에 이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는 것도
사실이지만 사단도 굉장히 많은 방해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속에 항상 이런 저런 일들이 일어나기
마련인데 이제 문제는 그런 저런 일이 없어야 하나님이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이 일어나지만 예수님은 항상 우리 앞에서 예수님을 향해 나올 때
그런 문제를 해결하시고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는 일을 하는 거죠. 그 중풍병자와 같이 왔던 사람들이 예수님이
여기까지 와서 ‘아이 안 되는가 보다. 돌아가자.’ 그런 마음이 많이 일어났겠지만 ‘아니야. 예수님이 우리 길을 여실 거야. 기다려 보자.’ 그러면 그들이 이제 불안하게 보였는데 ‘지붕을 뜯고 내려가면 어떡할까. 지붕이 기와로 됐네. 벗기기 좋네.
그래 가지고 중풍병자가 예수님을 만나 나으면 그게 뭐가 문제가 돼.’
그래서 처음에 중풍병자가 예수님 만나러 가는 그 자체도 큰 부담스럽고
어렵지만 친구들이 와서 들어 주겠다, 내 산에
와서 메고 와서 예수님한테 올 수 있었고 예수님 앞에 오긴 왔는데 들어가기가 불편한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만, 지붕을 뜯어 내리니까 예수님이 중풍병자를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얘기하니까 대적하는
사람들이 참람하도다
하나님 외에 누가 죄를 사하느냐 그러면서 예수님이 하는 그 일을 반대하고 대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만 예수님은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들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말이 쉽겠느냐 물론 죄를 사함 받은 그 이야기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야 할 수 있는 거고
그 다음에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쉽게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그러나 예수님께서 쉽게 하는 말을 선택하지 아니하시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므로
서기관들에게 막 이렇게 비판을 받고 그랬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그 서기관들이 그런다고 전혀 상관 없이 소자야 네 상을 들고 집으로 가라 그렇게 얘기하시면서
이 중풍병자를 깨끗하게 고쳐서 결국 예수님이 나오는 길 앞에 장애 있지만, 하나님 그 건강한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하나님일 예수님 만나는 일들 우리 계획대로 안될 때가 참
많습니다. 사람들이 많아 들어갈 수 없어서 끝을 보일 때가 있고, 제가 IYF나 월드캠프 뿐 아니라 수양회나 대전도 이런 일들을 할 때마다 참 많은 문제들이 일어납니다. 어떨 땐 이런 생각이 ‘아 내가 이거 안 하면 못살아? 왜 이런 일이 생기지? 아이 싫다 귀찮다.’ 그런 마음 참 많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면은 항상
하나님의 일에는 사단이 역사하고 또 사단이 역사하면 주님도 역사하시니까. 그래 중풍병자를 예수님이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 얘기를 했다고 막 서기관들이 비판할 때 참람하도다 하나님 외에 누가 죄를 사하겠느냐 예수님께서
그 서기관들 입을 딱 막아 버리는 거예요.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말과 네 죄 사함 어느 것이 쉽겠느냐.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면 그렇게 하면 되는데 그렇지만 내가 이야기 하는 건 내가 하나님의 아들로 죄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
알게 하겠다 그러시고 당당하게 소자야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죄 사하시는 그 일을 이루시는 거죠. 하나님의
일은 우리가 이루는 게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거나 예배당을 짓는 거나 땅을 사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되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 일을 할 때 안될 것 같이 보이고 어려울 것 같이 보이고 그런 일들이
많이 있죠.
그렇지만 우리가 마음에서 포기해선 안됩니다. ‘아 안될 것 같네. 그만두자.’
사단은 그걸 가장 원하는 이 대답입니다. ‘이건 안되겠다.
다음에 하자. 안되겠네. 그만두자.’ 중풍병자가 예수님께 나가는데 ‘내가 어떻게 걸어가. 못 가겠네.’ 예수님 앞에 왔는데 ‘아이 사람들 때문에 못 들어 가겠네. 안되겠네. 돌아가자.’ 그런 마음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냥 그런 마음에 넘어가선 안되고 포기하는 게 아니고 주를 바라보고 나갈 때 반드시 우릴 대적하는
사단이 안되겠다는 것처럼 보여 주지만 또 주님은 길을 열어서 지붕을 뚫고 들어가면 돼 그래서 예수님과 중풍병자가 만나고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 이야기를 하니까 서기관들이 비판했지만 그 말씀을 딱 이기시고 소자야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그래서 이 병자가 죄 사함도 받고 건강한 몸을 가지고 춤을 추면서 상을
들고 집에 가서 그것처럼 생각을
하는 거예요. ‘내가 이 상을 들고 가요. 올 때는 여기
누워서 왔는데 예수님이 나를 고치셨어요.’ 말할 수 없는 그 기쁨, 그
기쁨 앞에 이건 안될 것처럼 보이고 가버나움에 있는 예수님 계신 집까지 갈 수 없을 것처럼 보이고, 오긴
왔지만 들어갈 수 없을 것처럼 보이고, 들어가려고 하니까 이제 그 다음에 그 천장을 뚫어야만 했고 집
주인이 뜯으면 안 된다고 야단을 치고 그런 복잡한 일이 있지만 그러나 지붕이 뜯어 졌고 내려와 졌고 예수님 만났고 그 다음에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냐 하니까 또 사단이 역사해서 어떻게 막 그런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러나 예수님 이기시고 그리고 중풍병자를
병에 나아서 건강한 몸으로 기쁨이 가득 차게 막 너무 행복하고 복되게 상을 들고 가면서 “여보세요! 나도 이제 걷습니다. 내가 누군 줄 아십니까? 중풍병자인데 하나님이 이렇게 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앞에 그런
길을 계속해서 열고 계십니다.
그런데 중간에 사단은 자주 우리 속에 안될 것 같고 돌아가야 할 것
같고 예수님 못 만날 것 같고 그렇지만 그 소리 듣고 포기하고 돌아갔으면 은혜를 못 입는데 주님을 바라보고 나아갈 때 하나님이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중풍병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 앞에 가서 은혜를 입는데 은혜 입는 길은 꼭 장애가 있고 방해가 있어 안될 것 같고 그런 생각이 듭니다. 거기 매이지 말고 ‘안될 것 같아 그러나 예수님이 역사하셔서 이
모든 일이 복되게 돼.’ 그래서 주를 바라보고 주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새 힘도 주고 은혜를 베푸셔서
중풍병자가 한 없는 기쁨을 가지고 상을 들고 가면서 소리를 지르고 고함을 지르고 춤을 추고 기뻐하고 다시 돌아갔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이제 인생을 살면서 정말 찬양 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에게 이런 저런 문제가 다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이 일할 수
있는 조건인데 주를 바라보고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주님이 모두 아름답게 이끌어 가 주실 줄을 믿습니다. 여러분
주의 일하면서 포기하지 마시고 힘있게 부딪히십시오. 주님이 하나 하나 얘기를 해주시면서 축복으로 여러분을
채울 줄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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