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7회] 박옥수 목사 8월 15일 토요영상교제 말씀

마가복음 2 4절입니다.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마다 사단은 한번도 우리 일을 하도록 그냥 내어 버려 둔 적이 없었습니다. 한번은 제 아들이 저에게 와서 이야기를 합니다.

아버지.”

둘이 차를 타고 가는 데

우리가 고대에서 집회를 할려고 하는데 일반교회에서 방해가 너무 심해요. 벽보를 찢고, 집회를 못하게 방해를 하고. 이런 건 처음 봤어요. 어떻게 해야 할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아들에게 뭐라고 이야기했느냐 하면
, 영국아. 나는 말이야. 지금까지 일하면서 어려움이나 방해 없이 해 본적이 한번도 없었어. 중요한 것은 우리와 함께 하는 하나님이 저들과 함께 하는 힘보다 커. 그래서 처음에 시작할 때 우리가 하나님 보다 형편만 보이니까 두렵고 걱정되고 그랬는데, 막상 일을 진행해 보니까 항상 하나님은 우리 편에 서셨고, 특히 복음을 전하는 이 일을 하나님은 너무 기뻐하셔. 그래서 내가 복음을 전할 때마다 참 부족한 게 있고 연약한 게 있어도 그 때마다 도우셨어. 만일 네가 부담스럽다고 하나님의 일을 안 하면 한평생 못 하게 될 거야. 한번 부딪혀 봐. 그러면 하나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알 수 있고, 너의 속에 일하실 수 있는 것을 볼 수 있을거야.”

제 아들이 좋은 것이 내가 아버지기 때문에 저를 믿는 마음이 마음에 크게 있어요.

 

이번에 미국에서 손자들이 와서 세 놈이 한달 가까이 있다가 어저께 미국으로 떠났는데 제가 우리 손자들을 보면 저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 있으면서 모두가 자기들을 위하는 사람들이니까 자기가 뭘 지키려고 하지 않고 믿는 마음이 있는 것을 보고, 우리 손자들이 얼마나 복되게 자랐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제가 아는 친구 가운데서 일찍이 보모님이 이혼을 하시고 삼촌 집에서 자란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그 친구는 주변에 사람을 절대로 믿지 않습니다. 믿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것 같았지만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잃게 되지요. 그리고 혼자 고립된 삶을 살지요.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동안에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는데 한번도 하나님을 본 적도 없고, 얼굴을 대해 본 적이 없지마는 하나님이 우리 편에서 도우시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제 아들이 제 말을 믿으니까 그냥 고대에 가서 복음으로 부딪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고대에 굉장히 많은 사람이 구원을 얻고 동아리 신청해서 동아리 방도 나오고. 고대에 큰 하나님이 일하는 것을 보고 그때부터 제 아들이 마음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 하나님이 항상 우리와 같이 하시는 구나. 하나님이 일할 때 항상 어려움이 있고 문제가 닥치는 구나. 그렇지만 하나님이 아름답게 이루시는 구나.’ 그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전전 주에, 주일 낮 예배 때 마가복음 2장 중풍병자에 관한 말씀을 드렸고, 또 이번 수양회때 대덕에서 이틀 동안 그리고 강릉에서 이틀 동안 마가복음 2장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가복음 2장이 얼마나 아름다운 글인지, 읽으면 읽을수록, 대하면 대할수록 내 마음이 그 말씀에 젖을 때마다 그렇게 평안하고 기쁘고 즐거울 수가 없는데, 2 1절에서 12절까지 한 절 한 절마다 말씀이 살아있고 우리 마음에 힘과 소망을 주었습니다.

 

특히 오늘 읽은 4장은 예수님이 가버나움에서 한 집에서 가르치실 때, 아마 그 날은 안식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회당에서 말씀을 하지 않으셨겠지요. 가버나움은 갈릴리 바다가에 있는 작은 도시인데 디베랴가 있고, 베세다가 있고, 그 다음에 가버나움이 있는데 제가 가버나움을 방문하면서 옛날에 회당 터도 보고 여러 가지 유적들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의 한 집에 가서 말씀을 전하실 때, 그때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메고 예수님 앞에 왔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와서 문 앞에라도 용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득 찼는데, 성한 사람이라도 걸어서는 들어갈 수 없는 자리에 중풍병자의 상을 들고 놓을 데가 없지요. 그래서 아무리 봐도 중풍병자가 예수님을 만나기에는 어려워 보이고 불가능하게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돌아가야 하는데 돌아갈 수도 없잖아요. 예수님 만나기 어려운데 그들이 고민을 했겠지요. 그러다가 지붕을 뜯어 중풍병자를 달아 내리는데 예수님을 직접 뵐 수 있는데 가로막힌 장벽을 헐기 위하여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그들은 지붕을 뜯어내고 그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지붕으로 달아 내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믿음을 봤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믿음을 보시고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들이 지붕을 뜯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예수님이 반드시 우리 병을 고치셔. 예수님은 내 병을 고치실 거야.’ 그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갈 때마다 사단이 우리 마음에 제일 먼저 주는 마음이 나는 안될 것 같애. 나는 믿음이 없어. 나는 연약해.’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한 마음 자체를 무너뜨리는 일을 사단은 하고 있습니다. 아마 중풍병자도 예수님이 계시는 가버나움 집까지는 왔지만 여기까지가 한계야. 그 다음에는 나는 절대로 들어 갈 수가 없어. 꼼짝할 수 없어.’ 그런 마음 속에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어 주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는데 중풍병자가 볼 때, ‘나는 여기까지가 한계인 거 같애. 저 사람 많은데 어떻게 더 들어 갈 수가 있어. 집으로 돌아가야 할 까보다.’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중풍병자는 아니야. 내가 지금 이같이 예수님 가까이 왔는데 여기서 못 만나면 영원히 못 만날는지 몰라. 내 병을 누가 고쳐 주시지? 내 영혼을 누가 고쳐 주시지? 밤을 새워서라도 예수님을 만나야 돼. 예수님을 기다려야 돼.’ 그 기다리면서 그들이 생각 할 때에 천장을 뜯고, 지붕을 뜯고 내리면 되겠다는 그 마음이 들어서 그 일을 했습니다.

 

여러분 사단은 우리들 속에 자주 자주 그런 생각을 넣습니다. 최근에 아브라함이라는 글을 읽어 보면서 창세기 12장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룬다고 하셨고, 창세기 15장에는 아브라함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서 하늘의 뭇 별을 봐라. 이 별들을 셀 수 있나 봐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그렇게 15장에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16장에 사라가 뭐라고 말하느냐 하면,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다고 말씀했습니다. 언제 하나님이 사라의 생산을 허락지 않았습니까? 언제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생산을 허락지 않았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하셨고, 천하만민 네 씨로 복을 받으리라고 하셨는데 사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아닌 사단의 음성을 착각하고 듣고, 그 말에 속아서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하는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사단은 그러한 방법으로 참 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달려 갈 때마다 안될 것 같애. 안돼. 어떻게 들어가. 그냥 병신이 아닌 성한 사람도 들어 갈 수가 없는데 어떻게 침상을 메고 들어가. 말도 안돼.’ 그런 무수한 생각이 떠 올랐지만, 이들의 마음을 흔들려고 했지만 중풍병자와 그 친구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그 믿음이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길을 찾았는데 주님께서 지붕을 뜯어 열고 내려가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겠다는 그런 마음을 주셔서 그들은 지붕 위에 올라가 지붕을 뜯었습니다. 지붕을 뜯고 그래, 우리 친구만 나으면 되지 뭐. 집 고쳐주면 되지 뭐. 주인이 뭐라고 하면 우리 이야기하자. 잘 고쳐 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대로 해 드리겠습니다. 약속합니다. 우리 이 사람, 예수님만 만나게 해 주십시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찾는데 주님을 만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나갔다가 이런 저런 이유를 듣고 사단의 변명하는 말을 듣고 나는 안돼. 하나님이 내게 기회를 안 주셨어. 이게 때가 아니야.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해.’ 그냥 사단이 주는 그 음성을 그대로 듣고 그냥 돌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 중풍병자가 그렇게 되었다면 얼마나 슬펐겠습니까? 중풍병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단이 그렇게 길이 없는 것처럼 얘길하고, 길이 없다고 많이 말해도 자기가 볼 때도 그럴 것 같아도 아니야, 예수님이 우리에게 길이 되셔.’ 그래서 지붕을 뜯을 수 있었고. 성경은 그 뒤에 지붕을 수리했다는 소식이 전혀 없습니다. 물론 수리해 줬겠지요. 다시 말하면 지붕 뜯은 것을 어떻게 했다는 언급이 없는 것을 보면 지붕 뜯은 문제는 별로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그 다음, 중풍병자가 나아서 뛰어 다니고 새로운 삶을 사는 그 크고 영광스러운 일을 이루었습니다. 야구선수가 도루하다가 넘어져서 진흙탕에 유니폼 좀 버린다고 문제가 되겠습니까? 전혀 문제가 안됩니다. 야구선수는 깨끗한 유니폼을 자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실력을 자랑해야 하는 것이고, 유니폼 좀 더러워지고 운동화 좀 젖어도 야구선수의 기능을 다 하는 것처럼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야구선수가 도루하다가 유니폼 좀 버리는 것처럼 부당도 당하고 욕도 좀 얻어 먹고 그게 뭐가 그렇게 문제가 됩니까? 그 일 없이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고, 그 일 없이 어떻게 중풍병자가 나을 수 있고, 죄 사함을 받고 예수님께 속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정말 평안하게, 안일하게, 어려움 없이, 고난없이 아무 일도 할 수 없지만 좀 어려움도 겪고 욕도 얻어 먹고 비방도 당하고 그렇게 일할 마음을 가지면, 지붕 좀 뜯고 욕도 좀 얻어 먹고 돈 좀 들여 고쳐주고 예수님 만나 내가 나으면 된다.’ 그런 마음을 가지면 어떤 일도 부족함 없이 다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된 삶을 살게 될 줄 믿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가진 복음은 너무 귀한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위해 살면서 평안하게 안일하게 잘 되는 일만 생각하지 말고 어려움을 이기고 비방을 당하고 핍박을 받으면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그런 삶을 마가복음 2장은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이 병자, 자리를 들고 가면서 동네마다, 길마다 가면서 내가 여기 누워서 왔는데 이것을 들고 가요. 날 알지요? 나 중풍병자였어요. 누워 있었는데 예수님이 이렇게 살리셨어요. 말할 수 없는 기쁨 속에 가서 아내를 만나고 끌어 안고 기뻐하고 아버지가 다 나았다. 아버지가 걸어 다니신다. 아버지가 서 셨다. 아버지가 침상을 들고 오셔.” 모두 속에 하나님이 큰 기쁨을 주셨습니다.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기쁨을 주시기 위해서 안될 것 같고, 닫힌 것 같고 못 들어 갔던 마음이 닫히는데 주를 바라보며 지붕을 뚫고 들어가서 예수님을 만나는 복된 여러분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ply 윗 글에 대한 답글입니다.

3개월이 지난 글은 덧글 입력이 불가 합니다.
카카오톡 공유하기 URL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