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8절 6절입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우리가 주님이 사셨다, 십자가에 못박혔다가 죽었다가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럼 예수님과 관계된 모든 것이 살았다고 말해야 하는 거지요. 그래서 내가 예수님 안에 있으니까 내 안에 예수님이 있으니까 살아 계신다는 겁니다. 죽었다는 것과 살았다는 것은 굉장한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많은 사람들과 상담을 하다가 보면 사람들 마음에 큰 고통이 있고, 괴로움이 있고, 슬픔이 있고, 좌절이 있는 것을 봅니다. 물론 그런 고통이나 슬픔 이런 것이 처음부터 우리에게 크게 부각되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우리 마음에 침범해 들어 오는데 우리가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그냥 그것에 넘어져 지다 보면 그 세력이 커서 두려움 들어 오고,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고 방탕한 마음이 내 마음을 엄습하고, 어떤 사람들은 ‘내가 정말 사는 것이 너무 힘겹다, 힘겹다 그런 사람들이 있지요.
그냥 힘겨워서 힘겹다, 힘겹다고 하다가 죽는 게 좋겠다’ 그런 식으로 마음이 변해서 늘 죽음 앞으로 끌려 다니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죽어야 할 텐데. 난 정말 죽고 싶어. 어떻게 죽어야 할지 모르겠어.’ 그런 마음들이 일어나는데 물론 우리가 그런 유혹이나 죄나 어두움을 이길만한 힘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유혹이나 그것을 이기려고 했을 때 우리가 그 어떤 죄와 싸우고 잘못된 성격과 싸우고, 악한 게임중독이나 마약과 같은 것과 싸울 때 부족하면 내가 처음부터 싸워나가다가 부족하면 그때부터 하나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을 구하면 여기 성경에서 말씀하시듯이 예수님이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보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님이 여기 누워계셨다가 살아 나셨다. 그 이야기지요.
그러니까 우리 마음 안에 예수님이 계시면, 그 예수님이 살아 계시면 나를 대신해서 싸움을 대신해 주시니까, 내가 예를 들어 술과 싸울 때, 내가 술을 이기지 못해서 늘 술에 끌려 다니고, 미움이나 절망이나 슬픔이나 고통을 이기지 못해서 끌려 다니는데 이제 어느 정도 다니다 보면 ‘아, 내가 술을 못 이기겠구나. 도박을 못 이기겠구나. 내가 정말 마약을 못 이기겠구나. 죽음을 못 이기겠구나.’ 그런 마음이 우리 마음에 서서히 자리를 잡게 되면 원하던 원치 않던 간에 죽음에 끌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그냥 자살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마음 속에서 자꾸 죽고자 끌어 가는 어떤 힘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만난 분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자세히 성경을 가지고 설명을 해서 그런 마음을 이기는 데에는 예수님 밖에 없다. 당신이 예수님을 모시면 내가 죽어야겠다, 죽고 싶다, 끝내고 싶다. 그런 마음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그런 성경 이야기를 해 주곤 합니다.
어린 아이들이 오줌을 쌉니다. 보통 주로 새벽에 오줌을 싸는데 밤에 자고 일어나면 밤새도록 오줌이 마려울 때가 되면 일어나서 오줌을 누고 다시 누우면 되는데 일어나 오줌 누기가 잠이 많아서 귀찮은 겁니다. 그래서 그만 버티다가 자기도 모르게 이불 안에서 오줌을 싸지요. 그런데 그 오줌 싸는 아이를 보고 부모가 ‘이 놈의 자식, 오줌을 쌌구나.’ 진지하게 설명을 해 주거나, 소변을 봐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를 하고 무섭게 때리고 그러면 아이들이 ‘아이구, 내가 오줌을 누기 싫지만 아빠가 날 때릴는지 몰라. 두려워.’ 그러니까 일어나서 오줌을 누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냥 아이가 몸이 약하다고 아이에게 약점이 있다고 불쌍히 여겨서 그냥 봐주면 열 다섯, 열 여섯, 스무 살까지 오줌을 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오줌을 싸지 않고 나가서 소변을 보는 것이 귀찮으니까 그냥 오줌을 싸는 그런 쪽으로 선택을 하는 것이지요.
우리들 마음 가운데 죽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죽긴 왜 죽어. 얼마든지 내가 살아서 해결할 수 있는데 이렇다고 내가 죽어야 할 필요가 뭐가 있어?’ 마음에 죽고 싶은 마음과 싸우면 그게 내 마음에 확 차고 들어 오지를 못하는데, 그런 마음이 아니고 그냥 내가 약해서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 그 마음으로 자기 자신의 마음을 뺏겨 버리지요. 그런데 내가 내가 그 싸움을 싸우기 어려워도, 내가 정말 싸울 때 연약한 걸 보면서 예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을 신뢰하면서 주님을 찾는 겁니다. 그럴 때, 죽고 싶을 때, 절망적일 때, 괴로울 때.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팔고 난 뒤 예수님에 대해 정죄되는 것을 보고 죽고 싶다는 마음이 막 일어 납니다. 그래서 마귀가 유다의 마음 속에 예수 팔려는 생각을 넣고 죽고 싶은 마음을 넣는 거지요. 대부분 사람들이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끌려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자꾸 속에서 죽고 싶은 마음이, 죽으라고 그런 마음이 일어난다고. 그것을 이제 내가 용납해 주면 결국 그것이 나를 죽음으로 끌고 가는데 ‘나는 안 죽어. 내가 왜 죽어. 하나님, 내 죽고 싶은 마음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지금도 사셔서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하고 예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을 때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역사하셔서 힘을 주어서 죽고 싶은 마음을 이길만한 기쁨을 주고 소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망을 이기고, 게임중독에서 이겨가고 그런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은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번에 저희들 캠프 때 피지에서 오신 장관님 사모님이 계시는데 그 분은 40년 동안 고공공포증에 시달렸습니다. 높은 데 올라가면 다리가 힘을 잃어 버리고 고통스럽고 그래서 그냥 쓰러지는 그런 분인데, 부산 벡스코 저희들이 월드캠프 할 때 장관님 사모님이 백화점 4층에 올라갔다가 창 밖을 바라보다가 그만 쓰러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장관님 사모님 마음 속에 하나님 말씀을 듣고 IYF행사에 참석하면서 하나님의 평안이 마음 속에 들어 왔습니다. 어느 날, 내 마음에 평안이 고공공포증을 이겼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시청 앞 광장에서 음악회가 있을 때 저녁 식사를 장관님들이 호텔에서 하셨는데 31층 호텔에 이 분이 가셨어요. 우리 수행원을 보고 ‘내 자리를 창 곁으로 해줘라.’ 그래서 시청하고 부각 사이에 내려다 보이는 그 쪽 창문 앞에 서서 밖을 내려다 본 것입니다. 아무렇지도 않고 너무 평안했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사진 좀 찍어 달라고, 31층에서 내가 지금 서 있다는 것을, 밖을 내다 보고 있는 사진을 찍어 달라고. 40여 년 동안 고공공포증에 있다가 이기셨습니다. 왜? 그 안에 예수님의 평안이 오고 예수님이 오신 뒤에.
자, 여기 예수님은 죽으신 게 아니고 부활하셨습니다. 그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예수님이 우리께 주셨으니까 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죽음의 공포도, 죽음의 생각도 이기고, 두려움도 이기고, 유혹도 이기고, 절망도 이기고,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 살아계신 그 예수님이 모두 이기고 살게 되는 거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우리는 절망이나 고통이나 유혹을 이기지 못하지만 예수님이 능히 이기시니까 예수님을 힘입어 거기서 벗어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번에 저희들이 월드캠프를 마쳤는데 그 동안 역사하신 하나님께 감사 드리고 여러분도 함께 많은 협조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리면서, 이제 우리가 어떤 문제 앞에 정말 마음이 죽어서 절망에 빠진 사람이 아니라 어떤 것이 생겨도 이기고 믿음으로 달려 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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