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4장 29절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었었더라’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을 향해서 가는데, 제일 먼저 홍해가 가로막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똑 같은 사람인데 홍해를 지나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지날 때는 홍해 물이 좌우에 벽이 되어서 이스라엘 백성은 잠기지 않았고 애굽사람이 들어 갔을 때는 바닷물에 휩쓸려서 애굽사람들이 다 빠져죽는 그런 광경을 성경에서 발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떻게 그 바다를 육지처럼 건널 수 있었을까요? 발이 빨라서 그런 것도 아니고, 수영을 잘한 것도 아니고, 똑똑하고 지혜로워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다를 육지처럼 지나는 것을 보고 애굽사람들이 따라서 자기들도 들어 갔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지날 때는 바닷물이 벽이 되어서 그들이 침몰치 않았고, 애굽사람이 들어 갔을 때는 그 바다가 옛날 바다처럼 되흘러서 애굽사람들이 전부 다 바닷물에 빠져 죽는 그런 사실을 성경은 우리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에 통신 훈련소라는 그 부대에서 16주 동안 교육을 받고 나머지 군생활을 거기서 마치게 되었는데, 저는 제가 생각할 때 얼마나 감사한지 저희 내무반에 불침번이 있어서 저는 늘 내가 말하기를 “나는 고정 말번 불침번을 서겠다.” 그러니까 제가 새벽 4시부터 6시까지 불침번을 서기 때문에 그때 혼자 성경 한 2시간씩 읽을 수가 있었고, 교육장에 나가면 교육준비를 하는데 한 1시간 여유가 있어서 벙커에서 1시간 기도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하나님과 더불어 군생활을 보냈는데, 우리 부대에 수 많은 장병들이 있지만 그들이 나보다 다 계급이 높고 소장님을 비롯해서 교관님, 장교님, 중대장, 대대장, 그리고 내부반장, 이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위에 하사, 병장 이런 사람들이 있었는데 전혀 그들하고 제가 삶이 다른 것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고통이 오면 고통에 빠지고, 어려움이 오면 어려움에 빠지고. 형편은 그들이 저보다 훨씬 더 좋았고, 저는 아마 교육생이니까 통신 훈련 중에 제일 어려운 위치 속에 있었는데 저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구원을 받고, 매주 토요일마다 후배들이 들어 오면 이런 점검을 해서 주일 날 그들을 모아서 예배를 드리고, 예배 후에 개인상담을 하고. 저는 통신훈련원 3년 근무를 하면서 한 번도 외출이나 외박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토, 일요일은 늘 바쁘니까요. 그런데 그들이 당하는 어려움이나 슬픔이나 고통이 내게 머물지 않고 그냥 지나가고, 그들은 군생활을 지겨워하고 고통스러워하고, 그 환경은 나보다 훨씬 더 좋았는데 그런 것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하나님 안에 사는 동안에 외형적으로 평안하고 안일하고 좋아서가 아니라 때로는 저도 어려움을 겪고 힘든 일이 있고, 정말 내게 벅찬 일이 있을 때가 있는데 실제로 제가 그런 일을 만나지만 내가 참 평안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어려움이 내 마음에까지 오지 아니하고 실제 닥쳐오긴 닥쳐 오지만 내 마음에까지 거기에 물들지 않고 주의 은혜 가운데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다 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사람들과 똑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이 바다에 들어갈 때 그들이 어떻게 들어갔느냐 하면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애굽사람들 속에는 하나님이 없고, 육신의 욕망이나 정욕들로 가득 차 있었지요. 이제 그들이 잘났거나 똑똑해서 바다를 지날 때에 바닷물이 벽이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이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셨으니까,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지켜야 하니까 하나님이 물이 벽이 되도록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애굽사람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기 욕망을 따라 사니까 똑같이 바닷물을 지나가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있었고, 애굽사람들의 마음에는 세상으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때때로 구속함을 받은 형제, 자매들이 죄 사함 받았다는 사실만 믿고 자기 마음 안에 예수님이 채워져 있어야 하고, 예수님의 그 말씀에서 그 음성이 들려야 하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야 하는데 예수님이 아닌 욕망이 차 있고, 세상의 쾌락이 차 있고, 세상의 정욕이 차 있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지내놓고 보면 흉흉한 바다에 빠지듯이, 세상 물결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면서 헤매이는 것을 볼 때 얼마나 안타까운지 말로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참 많은 그리스도인 가운데서 세상에 즐거움이 보이고, 쾌락이 보이고, 물질의 그 부요함이 보이지만 그들에게는 주님께서 주는 이 사랑이, 이 은혜가 너무 커서 자기 마음 안에 세상의 욕망이나 정욕을 채우기에는 너무 불편해서 정욕을 두고 예수님을 모실 수 없기 때문에 마음 안에 예수님을 모신 분들이 있습니다.
똑같이 바닷물에 들어 갔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갈 때는 바다가 벽이 되어서 정말 그들이 마른 땅을 건널 수 있었고, 똑같이 바다에 들어 갔는데 애굽사람들이 들어 갈 때에는 바다가 벽이 안되고 도로 흘러서 많은 사람들을 죽게하는 저주와 멸망이 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바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제가 사는 삶 속에서 많은 풍파가 오고, 고난이 오고, 시련이 오고, 두려움이 오고 하지만 내가 예수님과 함께 있는 동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나와 함께 걸어가는 동안에 예수님께서 벽이 되는 것을 다 물리쳐 주시는 것을 생각할 때에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다 할 수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동안에 제가 믿는 이 복음을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고, 대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와서 내 마음에 아픔을 주고, 두려움을 주고, 슬픔을 줘야 하는데 사랑하는 주님께서 정말 내 마음에 계셔서 정말 내가 옛날 주님이 안 계셨더라면, 내 마음에 욕망이나 이런 쾌락 때문에 물질에 마음이 빠져서 거기 휘말렸을텐데 정말 나를 건져 휘말리지 않게 하신 하나님이 너무 감사하고, 내가 정말 돈에 매이지 아니하고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하나님이 너무 감사한거예요.
생각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 나를 환란에서 건져 주시고, 두려움에서 건져 주시고, 대적에서 건져주시고 지켜주신 하나님의 손길이 너무 감사한 거예요.
오늘 정말 구원받은 형제, 자매들이 그 귀한 예수님을 마음에 모셨다면 바다를 지날 때 바다가 벽이 되었을 텐데, 어떤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는데도 마음에 예수님으로 채워져 있지 아니하고 물질이나 쾌락이나 그런 것으로 꽉 차 있으니까 바닷물이 벽이 안되고 정말 음몰해서 어려움 속에 빠져서 헤매다가 교회에 와서 호소하는 그런 사람들을 종종 만납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세상적으로 좀 흘러가도, 육신을 사랑해도, 육으로 흘러가도 괜찮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점점 더 내 마음을 가득 채우면 어떨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인지 애굽사람인지 구분이 안 가듯이,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지 세상을 믿는 사람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그냥 나는 좀 육신적이야’ 하고 육을 용납해서 괜찮을 것처럼 보이지만 큰 파도가 몰아칠 때 넘어지고 쓰러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 마음에 예수님이 계셔서 정말 불이 우리를 상치 못하고, 물이 헤치지 못하고, 정말 어려움이, 고난이 오지만 우리를 점령하지 못하고 물러가고, 정말 간음한 여자가 예수님과 함께 있고 그 마음에 예수님이 채워져 있는 동안에, 수많은 돌맹이가 날아오지 오지 못하고 떨어지듯이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동안에 그 많은 재앙이, 많은 두려움이, 많은 근심이 오지 못하도록 벽이 되고 담이 되게 하셨는데, 사람들은 그런 것을 볼만한 눈이 없으니까 예수님이 거해야 할 마음 중심에 자기 욕망이나 쾌락을 채우고 ‘이 정도면 괜찮겠네.’ 하고 이 정도는 더 하고 싶고 점점 더 그러다 보면 애굽사람처럼 신앙도 버리고 넘어지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홍해를 건널 때, 애굽사람들은 빠져 죽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른 땅처럼 건넜습니다. 물이 벽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있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정말 크고 놀랍고 귀한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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