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0회] 박옥수 목사 5월 3일 토요영상교제 말씀

요한복음 9 41절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요한복음 9장은 예수님께서 눈 먼 소경을 눈을 뜨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만났는데 예수님께서 그 소경의 눈에다가 진흙을 이겨서 바르신 후에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하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소경이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실로암 못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돌아 왔습니다. 소경이 눈을 떠서 밝게 보게 되니까 주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 이 사람 전에 구걸하던 그 사람인데?” “아냐. 그 사람과 비슷한 사람이야.” 이 소경이 , 내가 그 사람 맞다.”. “네가 소경인데 어떻게 눈을 떴느냐?” “, 예수란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해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유대인들 사이에 예수님이 안식일 날 눈을 뜨게 했으니까 죄인이다, 아니다, 그런 논쟁이 많이 벌어 졌는데 이 소경은 말하기를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사람의 눈을 뜨게 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데 이 사람이 하나님으로 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눈을 뜨게 하겠느냐.” 하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굉장히 밝은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비방하는 사람들과 같이 싸우는 모양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9장 제일 마지막 부분에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잡힌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느냐 하면 우리도 소경인가?” 하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소경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옛날 어떤 이야기를 보면 소경이 길을 가다가 진흙탕에 빠졌습니다. 앞을 못 보니까 아무리 헤매도 진흙탕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서 진흙탕에서 미끄러지면서 한발자욱씩 걸어 가면서 길을 찾고 있는데 저 쪽에서 어떤 사람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이 소경이 말하기를 여보세요. 누구신지 모르지만 내가 소경인데 길을 잃고 있는데 나를 좀 이끌어 내 주십시오.”하니까 그 쪽에서 하는 말이 , 참 안타까운데 나는 소경은 아니지만 내가 앉은뱅이라서 일어나 걸어 갈 수가 없습니다.” 소경이 뭐라고 말하느냐 하면 그러면 간단하지 않소. 내가 당신 앉은뱅이니까 걷지 못하니 내가 당신을 업으면 당신이 걸을 수가 있고, 당신이 나에게 길을 가르쳐 주면 당신의 눈을 내 눈 삼아 가면 벗어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 그것 참 좋은 생각이요.” 그래서 앉은뱅이가 소경의 등에 업혔습니다. 소경은 앞을 전혀 못 보니까 어느 쪽이 길인지 어디가 진흙탕인지 구분을 못하니까 아예 자기가 길을 찾는다는 것은 포기하고 뒤에 업힌 앉은뱅이가 두 손으로 소경의 머리를 잡고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끄는 그대로 그냥 가다 보니까 이제 진흙탕을 벗어날 수 있는 거지요.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성경이 어떻게 기록되었느냐 하면, 하나님이 아담 하와에게 처음에 눈을 주셨을 때 아담 하와가 그때 가진 눈은 지금 우리가 가진 눈하고 전혀 다른 눈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고 난 뒤에 성경은 눈이 밝아져서 그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무 잎으로 치마를 하였더라고 성경은 그렇게 되어 있는데 그때 밝아진 그 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눈하고 다른 눈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래 우리에게 주신 눈은 예수님과 같은 눈이었기 때문에, 지금 내가 보이는 형편도 보이지만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도 보이고 하나님의 은혜도 보이고 약속도 보이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어려운 형편 속에 있지만 하나님의 약속이 있고 믿음에서 정말 우리가 복되게 기쁘게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변해진 이 눈은 하나님의 약속이 보이는 것이 아니고 절망만 보이고 정말 세상에 유혹만 보이고 그런 눈을 가지고 계속 우리를 끌기 때문에 인간이 불행해질 수 밖에 없고 죄에 빠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정확하다고 생각하고 그 길을 따라가는데, 이제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갈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면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이 눈은 바른 눈이 아니야. 이 눈 가지고 따라가면 안돼.’ 마치 소경이 마치 자기가 소경으로 길을 더듬어 찾으면 점점 더 진흙탕에 빠질 수 밖에 없지만 자기가 앞을 못 보니까 자기가 길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앉은뱅이의 눈을 자기 눈으로 삼아서 앉은뱅이를 믿고 앉은뱅이가 인도하는 그대로 이끌림을 받으면 이제 그 사람은 진흙탕을 벗어날 수가 있는 거지요.

 

이 이야기는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고,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가 뭘 판단해서 뭘 열심히 해서 우리의 눈으로 보고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눈은 비뚤어졌기 때문에 예수님의 눈을 내 눈으로 삼고, 예수님의 판단을 내 판단으로 삼고, 예수님의 결정을 내 결정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의 눈이 내 눈이 되고, 예수님의 결정이 내 결정이 된다면 그때부터 내가 예수님에게 이끌림을 받으면서 내가 현재 어떠하든지 간에 예수님의 인도를 받을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그렇지를 않습니다. 오늘날 죄 속에 빠진 많은 사람들이 죄에서 구원을 받기 위하여 성경을 읽습니다. 성경을 보면 분명히 주님께서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했다고 기록되어져 있고, 그리고 또 다음에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하나님이 우리 죄를 씻으시고, 예수님이 우리 죄를 사하셨고 우리 죄를 깨끗하게 했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럼 내가 보고 느끼는 판단, 경험 그걸 다 버리고 마치 소경이 자기 눈으로 볼 수 없으니까 앉은뱅이의 눈을 내 눈으로 삼아 갈 때 진흙탕을 벗어날 수 있던 것처럼 우리도 그 소경인데 예수님의 눈을 가지고 내 눈으로 삼고, 예수님의 판단을 내 판단으로 삼고,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 들이면 되는데 우리는 내가 보고, 내가 눈을 뜨고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나는 죄인이야. 죄가 많아.’ 그렇게 내 생각을 받아 들인다는 거지요.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분명히 내 죄를 눈처럼 씻으셨다, 기억지 않는다고 했다.’ 그걸 안보고 내 판단을 가지고 보니까 너희가 본다고 하니까 죄가 그저 있느니라 하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된 신앙의 삶이라는 것은 어떤 삶을 이야기하느냐 하면 내가 지나온 모든 것이 정말 더럽고, 추하고, 악하고, 가증되어서 내가 내 판단으로 내 생각으로 길을 걸어가면 저주를 받고 멸망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더러운 인간임을 발견하고 이제 내가 보는 것을 따라서, 내가 느끼는 것을 따라서, 내 판단을 따르지 아니하고 예수님의 판단을 내 판단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소경이 앉은뱅이의 눈을 자기 눈으로 삼았을 때 벗어날 수 있는데 앉은뱅이의 눈을 자기 눈으로 삼지 않고 자기가 자기 결정을 따라가니까 잘못된 것처럼, 오늘날 신앙이 안 되는 것은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면서도 성경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받아 들이기 때문에 내 판단으로, 내가 바로 보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 판단을 따라가니까 죄에서 벗어 날 수가 없다고 성경은 이야기기하고 있습니다.

 

나는 구원을 받기 전에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나는 정말 착하고 깨끗하고 정말 정직한 사람으로 알았습니다. 내가 열 아홉살 될 때 내가 다시 나를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는데, 내가 결코 착한 사람이 아니고 깨끗한 사람이 아니고 내가 정말 바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바르고 옳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정말 잘못된 판단력을 가졌구나. 내가 이 판단력을 가지고 살면 내가 망하겠구나. 내가 가진 자가 틀렸고, 내가 가진 저울이 틀렸으니까 나를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전까지 나는 나를 신뢰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도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 보다 내 생각을 따라 살고, 내 형편에 맞는 것을 따랐는데 나를 신뢰할 수 없으니까 내 생각을 따를 수 없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집에 갔을 때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고 사람들은 말을 합니다. 예수님은 아니야. 네 딸이 자.”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보는 눈과 우리 눈은 달랐습니다. 나사로가 죽어서 썩어 냄새가 납니다. 마리아와 마르다가 오빠가 죽어 이제 못 살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아니야. 네 오빠가 다시 살아. 네 오빠가 잠을 자고 있어. 일어 날거야.” 우리 생각하고 다른 겁니다.

 

오늘 우리는 누구든지 우리가 가진 생각하고 에수님의 생각하고 절대 같지 않습니다. 참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소경이 앉은뱅이의 눈을 가지 눈으로 삼고 길을 걸어갔던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의 판단을 예수님의 눈을 내 눈으로 삼고 예수님의 말씀을 그냥 받아들여야 하지, 예수님의 판단을 듣고도 내가 생각해보고 이건 아니야. 이건 틀려.’ 그런 생각을 가진다면 나를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 지혜로 죄에서 벗어날 수 없고 내 방법으로 죄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보는 눈, 우리의 판단을 다 버리고 예수님께서 보신 것이 정확하고 예수님의 말씀이 정확하니까 내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소경 되었다면 보는 것이 없고 판단할 수 없으니까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데 내가 본다고 하니까 내 생각을 따라 가는 그것이 예수님을 거스리고 어긋난 것이 되기 때문에 정말 너희 죄가 그저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예수님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죄 사함 받을 때도 내가 볼 때 어떤 나 말고, 예수님이 보신 나를 보아야 합니다. 내가 인생을 살면서 내 판단보다도 예수님의 판단을 중히 여기고 내 눈을 믿지 말고 예수님의 눈을 믿고 내 생각을 믿지 말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면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과 살기 때문에 예수님의 거룩함이 예수님의 지혜가 예수님의 은혜가 내게 임해서 복되고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될 줄을 믿습니다.

 

우리 가운데 참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방탕하게 살았고, 음란하게 살았고, 술에 찌들려 살았고, 그런 사람들이 거기서 벗어 날려고 발버둥을 쳐도 안되었는데 자기 판단이 아닌 예수님의 말씀을 믿어 들인 뒤부터 자기도 모르게 술이 멀어지고 악한 생각이 멀어지고 밝게 사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우리가 선한 삶을 살기 위하여 예수님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고 우리 판단을 다 버리고 예수님의 은혜로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 들인다면 예수님에 의해서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게 되고 은혜롭고 복된 삶을 살게 될 줄로 믿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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