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5장 35절입니다.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가로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항상 두 가지 음성을 듣습니다. 하나는 사단의 음성이고 하나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아담이 에덴에서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뱀은 전혀 다르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열왕기하 7장에 사마리아 성에서 아람군대들이 와서 포위를 해서 굶주려 아이를 삶아 먹는 그런 비참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은 선지자 엘리사를 통해 말했습니다. ‘내일 이 맘 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 하리라’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그 사람들에게 장관은 뭐라고 말하느냐 하면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으리요.” 항상 하나님 말씀이 우리 속에 들어 오면 사단도 반대 이야기를 하지요. 하나님이 노아에게 세상을 물로 심판한다고 하셨을 때 사단은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비가 안 올거야. 오긴 뭘 와.’ 하는 그런 음성을 통해서 많은 사람을 멸망으로 이끌어 갔습니다. 그러한 일은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전 세계 어디든지, 언제든지 성행하고 있는데요.
오늘 읽은 말씀은 마가복음 5장에 야이로라는 회당장이 있었는데 그 회당장이 자기 딸이 아파 거의 죽어가고 있어서 고칠려고 백방으로 노력해봤지만 어떤 방법이 없어서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선생님, 오셔서 내 딸을 고쳐 주시옵소서.” 예수님이 야이로를 따라 가는 동안에 열두 해 혈루증 걸린 여자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고 병이 낫고 그런 것 때문에 시간이 많이 지체가 되었는데, 그때 야이로 회당장의 집에 사람들이 와서 뭐라고 말하느냐 하면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그 이야기가 야이로의 귀에 들렸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자기 딸을 살릴 것 같은 그런 꿈을 가지고 가다가 그 소리를 듣고 모든 것이 절망으로 바뀌었고 슬픔과 고통으로 잠겼습니다. ‘아, 하나 밖에 없는 딸이 죽었구나.’ 갑자기 야이로의 마음에 어두움이 찾아왔고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때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느냐 하면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이런 상태에서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무슨 수가 있으랴. 믿는다고 무슨 별다른 수가 있으랴. 그런 마음이 우리 속에 일어나겠지요. 야이로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야이로가 이제 어떤 음성에다 자기 마음을 싣느냐 하는 것이 문제지요. 만약 ‘당신의 딸이 죽었습니다.’ 하는 말에 마음을 실었으면 그때부터 죽음의 고통이, 절망이, 슬픔이 야이로의 마음을 가득 채우게 되는데 반대로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해라.’ 그 이야기를 받아 들인다면 절망이 다 도망을 가는 거지요.
38년 된 병자가 베데스다 연못가에 왔을 때 똑같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정말 참 놀랍게 걸어갈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드는데 자기 속의 생각은 ‘내 다리가 다 말랐는데. 전에도 안됐는데. 어떻게 걸어. 힘이 다 빠졌는데 말도 안돼.’ 이 두 가지 음성이 항상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려고 할 때마다 우리 마음에 싸움을 합니다.
자, 여기서 우리가 우리 생각을 믿고 우리 판단을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 들여서 그 말씀이 우리 마음에 임하면 그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와 일을 하면서 우리 마음에 두려움도 내 쫓고, 슬픔도 내쫓고, 절망도 내쫓고 기쁨으로 살게 되어진다는 것이지요.
그래, 야이로가 “당신의 딸이 죽었습니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시려나이까.” 그 이야기를 받아 들였다면 야이로의 마음은 죽음이 왔고, 절망이 왔고, 슬픔이 왔기 때문에 통곡해야 하고 슬픔 속에서 그 마음을 건질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야이로는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모시고 집으로 갔습니다. 사람들이 막 통곡을 합니다. 야이로가 ‘아, 정말 딸이 죽었구나.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셨지. 그렇게 믿으면 하나님께서 일하시지.’ 예수님께서 들어가셔서 그 딸을 보고 달리다굼, 소녀야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라. 그 딸이 벌떡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한테 불가능하였지만 이루어졌지요. 우리는 오랫동안 사단이 주는 세계 속에 살아서 절망적인 사단의 일이 훨씬 더 우리 마음에 가깝고 예수님의 말씀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들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 말이 아니고 예수님의 말이기 때문에, 예수님 말씀은 우리 볼 때에 불가능해 보여도 예수님이 볼 때 가능하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이기에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그 분이 우리가 아니고 예수님이기 때문에 그 말을 믿을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죽은 소녀을 보고 살아나겠다. 믿기만 해라. 그러면 우리가 죽은 것을 어떻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그 죽은 딸을 능히 살릴 수가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해라.’ 야이로는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현재 우리들이 어려움 속에 빠지는 것은, 물론 우리 삶 속에 이런 크고 적은 문제들이 있고 어려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님도 계시고 주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만일 그 주님의 약속을 받아 들이고 주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다면, 내 마음 안에 주님의 마음이 가득차면 바로 이 일을 능력을 행하실 수 있는 예수님의 마음이 내 마음에 온 것이지요.
로마서 8장 11절에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를 믿음으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살리신 하나님의 영이 말씀을 믿어 우리 마음 안에 거하시는 거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 안에 받아들였을 때 하나님의 영이 우리 마음 안에 들어 오셔서 말씀 안에 있는 하나님이 그때부터 우리 안에 일을 하시기 때문에 그 때부터 우리 속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는 우리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문제가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슬프하고 고통하고 절망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사단의 음성을 듣고 우리 판단을 따라 보았을 때 슬픔과 절망적인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 슬픔과 절망 속에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은 능히 해결하실 분이고 그 분이 하신 그 말을 내 마음에 받아 들이면 내 마음에서부터 슬픔이 물러가고, 두려움이 물러가고, 절망이 물러가고 평안과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다시 평안이 오면 또 현실도 그렇게 다가와서 우리 삶을 많이 바꾸는 것을 보았습니다.
눈 먼 소경이 그렇게 눈이 떠졌고요, 다음에 마리아와 마르다가 그런 믿음 안에서 나사로가 사는 것을 보았고 38년 된 병자가 걸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 들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삶 속에 일을 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어려운 문제가 많이 일어나는데 그 문제를 가지고 절망만 하지 말고 그런 문제를 어떻게 말씀하는지 성경 말씀을 보고 그 마음에 받아들이면 그 말씀되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일을 하셔서 우리를 거기서 건져내고 기쁨으로 바꿀 것입니다.
간음한 여자가 예수님 말씀을 들을 때 그 마음이 바뀌었고, 사마리아 여자가 바뀌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바뀌어지면서 그들의 삶이 모두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여러분의 마음에 받아 들이십시오. 말씀이 여러분의 안에 들어 오시면 예수님이 일하셔서 여러분이 어떤 어려운 문제를 당하여도 그 문제가 여러분의 문제가 아니고 예수님의 문제가 되고, 우리는 쉬고 예수님이 일하셔서 기쁨과 평안을 얻으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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