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장 40절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성경에는 모든 역사가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하면 하나님이 주신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어 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1장에 나사로가 죽었을 때,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나사로가 죽었으니 그들의 마음에도 나사로가 죽어 있었습니다. 마르다 마음에도 ‘우리 오빠가 죽었다’고 믿으니까 오빠가 죽은 것이고, 친적들 주변 사람들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도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마음에는 나사로가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았습니다.
‘네 오빠가 다시 살리라.’ 성경을 보면 항상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되어 가고 있습니다.
열왕기하 5장에 아람왕의 군대 나아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아만이 문둥병에 걸려 있기 때문에 나아만의 마음에도 ‘나는 문둥병자야.’ 왕의 마음에도 ‘나아만은 문둥병자야, 참 안됐어.’ 나아만의 부인의 마음에도 ‘우리 남편이 문둥병에 걸렸어. 정말 지겨워.’ 주변의 모든 장군들도 ‘저 나아만 장군이 참 좋은데 문둥병에 걸려서 참 안됐어.’ 그들 모두의 마음에 나아만이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다 나아만이 문둥병인데 그 사마리아에서 잡혀 온 계집종의 마음에는 나아만이 문둥병자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장군님이 문둥병에 걸렸지만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 앞에 서면 저 병은 나아. 이제 문둥병자가 아니야. ‘ 그 마음에서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아람나라에 천명, 만명, 몇 만명이 나아만이 문둥병자라고 얘기했고 그렇게 믿고 있는데 선지자 생도의 아내는 ‘아니야, 우리 장군님은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 앞에 가면 나아.’ 그 마음 하나가 계집종의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에서 건지고 모든 사람의 입에서 ‘우리 나아만 장군은 이제 문둥병이 아니야.’ 하는 그 시점까지 도달하고 역사를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항상 그렇게 마음이 시작되죠. 문둥이 네 명이 아람 진을 걸어 갈 때, 그 전까지 그들은 사마리아 성문 밖에 있다가 ‘아람 진에 가면 양식이 풍족한데 우리가 거기 가면 양식을 먹을 수가 있어. ‘ 그 새로운 마음이 그들에게 일어나고 사마리아 성을 전부 구원하는 역사를 일으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큰 역사들은 전부 어디서부터 나오느냐 하면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서 그것을 전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빠 나사로가 죽어서 나흘이 되매 냄새가 납니다. 그러니까 마르다 마음에도 나사로가 죽었고, 마리아 마음에도 나사로가 죽었고, 친척들 마음에도 나사로가 죽었고, 이웃의 마음에도 나사로가 죽었고,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혼자, 예수님 마음에만 나사로가 살았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예수님 마음 안에 살아 있는 나사로를, 마르다 마음에도 죽어 있는 나사로를 살릴려고 하는 것이지요. ‘네 오라비가 살리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요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무덤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시니까 마르다가 말합니다.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이제 마르다는 여전히 주님이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하는 것을 믿지 않으니까 그 소리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아, 그렇구나. 내가 지금 주의 말씀을 안 믿고 있네. 내가 주의 말씀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데 내가 주의 말씀을 안 믿고 있네.’ 그래서 마르다의 마음에 예수님의 말씀이 ‘네 오라비가 살리라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그 말씀을 따라 이제 믿음이 들어온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은 마르다의 마음 속에 나사로가 있는데 마르다의 마음 속에 있는 나사로는 죽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기 이전에 마르다 마음에 있는 나사로를 살리기 위하여 ‘네 오라비가 살리라’ 그렇게 얘기했지만 마르다는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무덤에 가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니까 믿지 않는 마르다의 마음 속에서 ‘주여 죽은지 나흘이 되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우리 오빠 죽었습니다. 이제 더 옮기고 말고 해야 할 필요가 더 없습니다.’ 그런 말을 하는 거지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하지 아니하였느냐’. ‘참 그러셨지. 내가 믿으면 되겠구나. 그러면 우리 오빠가 살았네. 뭘 합니까? 빨리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잖아요. 옮겨 놓으세요.’ 예수님 마음에 살아 있는 마음이 나사로가 살았는데 그 마음이 마르다 마음에 전달되면서 마르다가 ‘우리 오빠 살겠다. 돌을 옮겨 놓으라고’ 돌이 옮겨졌습니다.
예수님과 나사로 사이에 돌문이 가로막혀서 예수님이 나사로를 만날 수 없고 나사로가 예수님을 만날 수 없었는데 그들에게 예수님의 믿음이 전해지면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마음에 전해지면서 돌문이 열려지면서 예수님이 나사로를 만나고 일을 하실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기도했습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님 말씀하시면서 “나사로야 나오너라.” 모든 사람의 마음에 죽어 있었는데 예수님 마음에 살아 있는 나사로, 그들 마음에도 살아 있는 나사로로 변했습니다.
저는 이런 복음 일을 하면서 불가능한 일들을 참 많이 겪었습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안될 것 같고 불가능할 것 같고 그런데 모든 사람의 마음에 불가능이 죽어 있었는데 예수님의 마음에는 살아 있어서 내가 예수님을 바라보고 내가 예수님과 같이 하고 있는 동안에 내 마음이 살아 나는 것을 느끼는 것이지요.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주님 부르셨던 것처럼 지금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들어 일을 하시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 들이는 사람은 그 사람 마음이 살아납니다. 죽어 있는 사람들은 ‘내가 전도해도 구원 안 받을거야. 내 속에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을거야. 하나님이 나를 돕지 않을거야.’ 그게 죽어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고,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아니야. 나사로가 죽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수님이 살리실 수가 있어. 살거야. 내가 병 들었지만 주님이 이 병 하나 고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안돼. 내 안에 예수님 계시니까 예수님이 고치실거야.’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런 마음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계집종이 “우리 장군님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그건 계집종이 한 말이지만 계집종이 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아 믿음에서 나온 말이고, 문둥이 네 명이 아람진을 향해 가는 그 마음도 하나님의 믿음으로 받은 마음이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살아 있는 그 마음을 마음에 받아 들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이 걸어 가는 곳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서 불가능한 일들이 이루어지고, 영혼이 거듭나고 그런 귀중한 은혜가 나타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도 거룩한 주님께선 여러분 마음에다 예수님의 마음을 넣어서 여러분이 죽었다고 하는 것을 살았다고 하게 하고 여러분 믿음이 그렇게 되었을 때, 여러분 주변에 형제 자매가 살아나고, 믿음이 살아나고, 기쁨이 살아나고, 교회가 살아나고, 복음이 살아나고 그렇게 죽은 나사로가 살아 나듯이 여러분 주변에 모든 것이 살아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그런 귀한 날들이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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