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5장 21절입니다.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우리가 교회 나와서 열심히 기도하고, 성경 읽고, 전도도 하고, 봉사도 하고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외형적으로 우리의 몸이 행동이 그렇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 않게 마음의 자세가 참 중요합니다. 교회 안에 와 앉아 있어도 마음이 세상에 가 있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세상에 와 있어도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나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디 있던지 간에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면 그게 너무 복되고 아름다운 삶 일줄 아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 이야기는 내가 수도 없이 해서 여러분이 귀가 아플 정도로 이야기를 했는데 여기 이제 둘째 아들이 아버지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와 아들이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까 아들이 하는 말이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그렇게 아들이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이 가정 문제가 뭐냐면 아버지는 아들이 집에 있을 때나 먼 나라에 갔을 때나 돼지우리에 있을 때나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아들을 향해 변한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마음은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한때는 아버지 밑에 자라기는 했지만 내가 아버지보다 잘났고, 내가 하면 잘 될 것 같고, 아버지 생각보다 자기 생각이 옳아 보였습니다. 아버지 생각보다 자기 생각이 옳다는 생각이 드니까 이제 아버지를 거역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생각보다 자기 생각이 옳으니까 이제 가서 아버지를 거역하고 나가서 먼나라에서 허랑방탕하게 지냈는데 결과는 돼지우리에서 돼지와 주려 죽을 그런 지경에 도달했습니다. 여기 성경에서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아버지 집에 많은 재산이 있고 양식이 있고 종들이 있는데, 아들이 아버지하고 마음이 막히고 마음이 다르니까 아버지가 그 양식을 종들도 먹고 그 다음에 품군들도 먹고 종들의 아이들도 먹고 다 배불리 먹는데 정작 아들은 돼지우리에서 주려 죽습니다. 왜? 아버지가 주리게 한게 아니라 아들 자기가 마음을 닫았기 때문에. 아버지께로 오는 모든 것이 막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기가 아들로서 아버지마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고 더 낫다는 자기 마음을 선택해서 이 마음이 아버지 마음과 다른 것을 알지만 그 마음을 선택했고 아버지를 거역했고 아버지를 대적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버지의 마음이 흘러 들어 올 수가 없고 아버지의 마음이 흘러 들어 올 수가 없고 아버지의 마음이 흘러 들어오지 않으니까 아버지께로 오는 모든 것이 다 차단되어서 아버지 집에는 풍성한 양식이 있지만 거기는 배가 주려야 했고 아버지 집에는 따뜻한 방이 있지만 거기는 돼지우리에서 자야 했고 아버지께는 정말 사랑이 있는데 거기는 고독하고 외로워야 했고, 두려워야 했고, 추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그리워서 아들이 아버지 집에 왔는데, 아버지를 대면한 이 부분이 아주 중요합니다. 아버지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 같은 아들이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볼 것 없이 그냥 끌어 안고 입을 맞추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 집에 좋은 의복들이 있는데 왜 더러운 의복을 입고 있습니까? 아버지 집에 음식이 많은데 왜 굶주려 있습니까? 아버지 집에 정말 화려하고 좋은, 영광스러운 것이 많은데 왜 그렇게 비참하게 지냈습니까? 아버지에게 마음을 닫고 자기 생각이 옳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같이 교제도 하고 많이 합니다. 그런데 우리 구원받은 형제 자매들이 딱 구원받고 나서 장성해서 믿음을 갖기 전에는 어려서 성경을 하나 알고 하면 자기가 최고로 많이 아는 줄 알고, 자기가 깨달은 줄 알고 그러면 다른 형제들을 무시하게 되고, 형제만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종도 무시하게 되고 교회도 무시하고 결론적으로 하나님도 무시하는 자기 생각대로 자기 옳은 생각대로 달려가는 그런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랬던 형제들이 아주 그 일로 말미암아 둘째 아들처럼 많은 고난을 겪고 와서 하는 이야기가 이 이야기입니다.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내가 진짜 잘못했습니다. 내가 제일 옳은 줄 알았습니다. 내가 잘난 줄 알았습니다.” 성경에서 인간보고 옳다고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 성경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우리 속에 악뿐인데 사람들은 사단에 속아서 자기가 옳고 똑똑하고 정직하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둘째 아들이 그렇게 하다가 자기가 틀린 걸 깨닫고 돌아가는 이야기가 첫 번째 하는 이야기가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습니다. 지금부터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둘째 아들이 그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아버지 앞에 회개하는 이야기이고 더 중요한 것은 아버지하고 둘째 아들 사이에 막힌 마음의 막힌 담을 허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내가 잘난 줄 알고 내가 옳은 줄 알고 내가 했던 것들이 다 잘못된 것입니다. 그걸 바꾸어 말하면 아버지가 옳았습니다. 아버지가 은혜로웠습니다. 아버지 하는 말이 정말 진리였습니다. 내가 정말 교만하고 악했습니다. 그 이야기지요.
성경 누가복음에 너무 잘되어 있는 이야기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그렇게 말하자 마자 아버지 입에서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 입혀라. 손에 가락지를 끼워라. 발에 신을 신겨라. 그리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라. 먹고 즐기자.”
이 아들이 아버지를 향해 마음을 열자 마자 아버지의 좋은 옷이, 아버지의 신발이, 아버지의 가락지가, 아버지의 송아지가, 아버지의 즐거움이 물밀 듯 흘러 들어오는 것을 봅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좀 어려울 때가 있고 문제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하나님보다 높아지고 하나님의 생각을 떠나 있을 때 그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고 둘째 아들이 돼지우리에 가는 그런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런데 어떤 형제들은 어려움을 겪지 않지만 둘째 아들이 처음에 재산을 주십시오 할 때 그런 형제들이 있습니다. 아직은 아버지 집에 있지만 마음이 아버지를 떠나 있는데 그 사람은 곧 돼지우리로 갈 사람이고 돼지우리에 있다가 돌아온 사람은 ‘내가 정말 아버지 앞에 내가 악했구나. 내가 교만했구나. 내가 틀렸구나.’ 그 사실을 깊이 마음에 깨닫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나는 하나님께 죄가 많습니다. 아버지를 그에게서, 하나님을 그에게서, 입으로 말하지 말고 마음으로 알고 깨달으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가로막혀 있던 담이 허물어져 버립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우리가 한마음이 되지요. 그때부터 아버지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으로 우리가 채워지기 때문에 제일 좋은 옷, 손에 가락지, 발에 신발, 그리고 살진 송아지 잡아 잔치하는 이 잔치.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흘러 들어온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요즘 사람들이 옛날 사람들처럼 생각을 많이 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 옳은 생각만 하지, 이게 틀렸는지 점검해 보지 않습니다. 마치 어떤 셈을 세고 난 뒤에 검산하지 않는 것처럼 그냥 자기 판단한 것을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우리가 신앙을 하면 할수록 우리가 악한 것을 깨닫고 추한 것을 깨닫고 내 부족한 걸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둘째처럼 어려움을 겪고 고통을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모든 것이 흘러 들어오듯이 만일 여러분 가운데 어려움이 있다면 둘째 아들처럼 마음을 돌이키고 아버지의 말씀을 받아 보십시오. 그러면 마음이 열리면 아버지로 오는 모든 것이 내 것이 되어서 하늘의 은혜를 얻게 될 줄로 확실하게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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