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6장 12절입니다. (이헌목 목사님 말씀)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오늘 말씀에서 겁장이 기드온에게 하나님께서 ‘큰 용사여’ 하신 내용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번 월드캠프 기간에 제 마음 속에 몇 몇 가지 잊을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부산 월드캠프에 금요일날 우리 학생들 민박을 보내고 장관님, 또 대학총장님, 포럼을 마치고 저녁 만찬이후에 장관님들과 대학총장님들의 감사패 수여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 진행부는 식순을 짜기를 그라시아스의 음악과 그리고 회고영상, 그리고 한 분의 장관님의 발표, 또 한 분의 대학총장님의 발표, 그리고 목사님의 말씀, 그리고 이어서 감사패 수여식, 이런 순으로 짰습니다.
목사님께서 이 순을 보시더니 “아, 이렇게 하지 말고 그라시아스 음악 이후에 내가 한 시간 말씀 전할께. 그리고 뒷부분은 진행부에서 다 알아서 하라고” 그러시면서 그라시아스 음악이후에 한시간 말씀을 전하셨는데 그날 성령께서 너무나도 놀랍게 그 시간을 마련하셨다는 마음이 들어집니다. 우리 장관님들께서, 또 대학총장님들께서 그 동안에 계속 말씀을 들었지만 목사님의 그 날 한시간의 말씀은 마치 복음반의 요점정리를 하는 듯한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그 시간에 참가했던 장관님들, 또 차관님들, 대학총장님께서 다 마음을 여시고 그 날 복음을 받아 들이는. 그래서 저는 이것은 목사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다는 그런 생각이 들어졌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월드캠프에 여러 순서들이 있지만 항상 복음을 전하는 쪽에다가 초점을 맞추고 또 지금까지 그렇게 지내셨습니다. 그래서 대통령님을 만나든 영부인님을 만나든 또 총리님이나 장관님들을 만나든 항상 복음 전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셨는데 그 다음날 목사님께서 부산에서 전주를 가는데 그 승용차 안에서 케냐에서 온 케냐타대학 총장님을 그 차 안에 동승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서 어제 밤에 이어서 복음을 풀어 주셨는데, 그 날 승용차 안에서 케냐타 총장님께서 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너무 기뻐하시고 감사해했습니다.
그리고 또 전주에서 대전까지는 인도 마드라스에서 온 대학교 총장님께서 또 역시 목사님 승용차에 타셔서 또 복음을 풀어 드렸는데, 그 분도 또 이 복음이 마음에 이루어지면서 감사해했습니다.
또 대전에서 서울에 오는 차 안에서는 부룬디 청소년부 장관께서 또 등승하셨는데 역시 목사님께서 풀어주신 이 복음을 듣고 또 구원을 받으셔서 참 너무나도 기뻐하시고 감격해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진행부에서는 참 부끄러웠습니다. 우리는 감사패 수여식, 여기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목사님은 무얼 하시든지 복음 전하는 쪽으로 마음을 가지시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목사님에게 사사기 6장 12절에 말씀처럼 ‘큰 용사여’ 하는 것처럼, 목사님께서 큰 용사가 되셔서 월드캠프에 누구를 만나든 복음을 전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목사님께서 큰 용사로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는가?
한번은 3년 전에 월드캠프를 마치시고 한국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우리 몇 몇 사역자들과 함께 사역자 기도회를 하는데 목사님께서 그 전 월드캠프에도 놀라운 역사로 너무나도 감격스러운데, 목사님은 그 날 오셔서 “내가 앞으로 70까지 복음의 일을 한다면 3년이 남았는데 남은 3년 동안 내가 타락 안 할 자신이 없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랬습니다. ‘목사님이 왜 타락을 하시지? 앞으로 남은 3년을 이제까지 한 것보다 더 잘할 자신이 없다 하면 제 상식에서 이해가 되는데 남은 3년을 타락 안 할 자신이 없다 하는 것은 목사님이 50여 년 동안 이렇게 복음 하나만을 위해서 오셨는데 왜 목사님이 타락하실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그 후로 저는 많은 부분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 목사님께서 50여 년 동안 한결같이 하나님의 귀한 복음의 손에 잡혀서 일을 하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저 마음이구나.’ 마치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 목사님은 항상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시고 또 ‘우리 인간은 항상 악해.’ 하시면서 목사님 당신에 대하여 조금도 신뢰하거나 세우거나 믿는 마음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오늘 성경 사사기 6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했습니다. 무슨 악이라고는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신상을 섬겼다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그러나 오늘 우리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이 사사시대의 가나안의 전쟁은 구원받은 이후의 우리의 신앙생활인데 구원받은 이후에 있어서 우리가 가장 범하기 쉬운 하나님 앞의 악이 뭐냐 하면 우리가 잘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정받고 싶고 또 남들보다도 더 잘하고 싶고, 자랑하고 싶고 이런 마음이 뭐 그게 크게 문제가 되겠나, 하나님 잘 섬기겠다는데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마음에는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가 없습니다. 도리어 ‘나는 쓰레기야,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다 대적하는 악한 자야.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인 그들과 다를 바가 없어. 난 정말 악해’ 하고 자신에 대하여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인정하고 무익한 자라는 것을 시인하게 될 때에, 그때 더 이상 그는 자기를 믿지 않게 되고, 이제는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우리에게 주신 그 마음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 강한 미디안 사람에 의해서 7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들이 파종할 때가 되면 메뚜기 떼처럼 쳐 올라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양식들을 다 뺏어가고, 또 그리고 짐승들을 다 뺏어가고 그래서 미디안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미약함이 심했고 그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 망해 보이고 이제 어디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을 받을 수 있고 미디안 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아무런 조건이 없을 때, 하나님은 포도주 틀에서 타작을 하고 있는 겁쟁이 기드온에게 나타나셔서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그러면서 이 미디안의 사람들을 기드온을 통해서 진멸하시고 그 미디안 사람들을 기드온의 손에 붙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드온과 함께하는 군인들은 처음에는 삼만 이 천명이 모였지만 두렵고 떨리는 사람, 이만 이천 명을 돌려 보내고, 또 시냇가에 내려가서 물을 움켜쥐고 개가 물을 핥는 것처럼 핥아 먹는 삼백 명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돌려 보냈습니다.
겁쟁이 기드온과 그 삼백 명은 너무나도 초라해 보이고 약해 보이고, 숫자가 많고 강하고 거친 미디안의 군사에 비해서 기드온과 삼백 명은 너무나도 미약하고 부족하고 마치 패전자와 같은 그런 모습을 연상할 수 있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에게서 조금도 내 자신을 기대할 수 없고 내게서 어떤 것도 내세울 수 없을 때, 하나님은 우리 속에 들어와서 역사를 하십니다.
기드온에게 “큰 용사여” 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기드온 자신에 대해서 조금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저에게서 나오는 것을 조금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그 속에 예수님께서 역사할 수 있으니까 그 안에 있는 예수님이 일을 하시니까 그 예수님을 보고 “큰 용사여” 라고 이야기를 하신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의 말씀대로 기드온과 삼백 명을 통해서 수십만의 그 미디안 사람들을 다 진멸했습니다. 그리고 승리를 했습니다.
이 가나안 전쟁의 이야기는 영적으로 다시 말하면, 오늘 우리 육신은 세움을 입고 싶고, 뭔가 육신은 인정 받고 싶습니다. 잘나고 싶고, 자랑하고 싶고, 잘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 잘난 것은 하나님 앞에 악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를 믿고 주를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원 받은 성도에게서 잘해 보려고 하는, 뭔가 율법적으로 흘러가는 우리의 마음을 반대로 우리를 심히 미약하게 했습니다. 죄 아래 가두었습니다. 불순종 안에 두었습니다. 우리를 실수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 실수, 그 부족함을 통해서 강해 보이는 미디안 사람들처럼, 도리어 내가 잘할 수 있다는 그 생각을 깨뜨리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마치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다른 어떤 제자들보다도 그는 항상 자신을 세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난 다른 제자들과 달라. 난 모든 걸 버리고 주를 좇았어. 그리고 나는 주와 함께 끝까지 따라 갈거야.’ 남들에게 없는 베드로는 자신을 믿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그 베드로에게 ‘너희들이 목자를 치리니 양떼가 흩어지리라’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너희들이 다 나를 버리리라’ 그때 베드로가 “다 버려도 주님, 저는 아닙니다. 내가 모든걸 다 버리고 왔는데 이제 뭘 버린단 말입니까? 저는 버리지 않습니다. 저는 다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세 번 부인한다고 하실 때,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절대로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마치 베드로의 마음에 세워지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자기를 믿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사 시대에 가나안 전쟁의 그 자신을 믿는 강한,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악을 행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되면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닌 자가 되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다른 신을 섬기게 되면 이 육체에 대하여 신뢰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세상을 당신의 말씀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한없이 한없이 낮아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우리가 뭘 잘하는 것이 아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흙의 자리, 무능한 자리에 내려가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베드로가 자기를 믿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그 마음은 악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부인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을 떠나게 했습니다. 못나게 만들었습니다. 초라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을 욕을 하고 거절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베드로의 자신의 연약함, 마치 기드온과 함께 한 삼백명의 모습처럼 그 연약한 모습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그 연약한 베드로를 통해서 이제 하나님이 ‘내 양을 먹이라’ 하시는 그 말씀은 다시 말하면 ‘큰 용사여’ 하시는 말씀과 같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더 이상 자기를 믿지 않는 자가 되어서 큰 용사처럼, 성전 미문에 앉아 있는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죽은 사람을 살리고, 힘있게 복음을 전하는 큰 용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삼십팔 년 된 병자 그도 역시 그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를 못에 넣어 줄 사람도 없습니다.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누가 봐도 다 망한 사람이고 어떤 병자 가운데서도 버림받은 병자 같은 그 삼십팔년된 병자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그 병자에게 마치 사사기 6장에 큰 용사여 하는 것처럼, 그 삼십팔년된 병자를 보실 때, 큰 용사로 보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이 삼십팔년된 병자에게 그대로 들어 갈 수 있을 만큼 삼십팔년된 병자는 자기가 끝이 나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말씀이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는 그 말씀이 삼십팔년된 병자에게 그대로 나타나서 더 이상 삼십팔년된 병자가 아니라 예수가 되어서 그 말씀대로 그가 일어나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큰 용사가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 평생을 복음 앞에 사셨는데 목사님 당신 스스로 한없이 한없이 낮아지시고, 작아지시고, 초라하시고 조금도 자기를 믿지 않는 그 마음이기 때문에, 말씀 하나만 세우시기 때문에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힘있게 복음을 전하시는 큰 용사가 되셨습니다. 우리가 겉으로 볼 때는 큰 용사 같으면 인간이 뭔가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게 아니고 도리어 인간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초라한 자리,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흙의 자리에 내려가 있을 때 그 큰 용사가 되고 주님이 그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번 이 가나의 월드캠프 위에 또 베넹의 월드캠프, 또 이어서 탄자니아, 카메룬, 케냐, 이 5개국에, 아프리카에 캠프 가운데에서도 종은 심히 미약한 가운데에 캠프에 임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큰 용사가 되셔서 그 캠프 위에 마음껏 복음 전하게 하시고 역사를 이루어 나가시는 것을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전세계에 있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 모두에게 이 말씀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큰 용사여”라고 합니다. 우리가 보잘 것 없는 그 위치,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위치가 될 때에 바로 큰 용사가 되셔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그 주님이 오늘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말씀으로 여러분이 위로를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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