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2장 4절입니다.
네 형제의 나귀나 소가 길에 넘어진 것을
보거든 못본체 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형제를 도와서 그것을 일으킬찌니라
며칠 전에 어떤 형제가 교회를 떠나 시험에 들어 있던 형제가 돌아 왔는데, 암이 걸려 아주 중하게 병이 중했어요. “목사님 제가 병이 중한데 기도를 좀 받고 싶어서 왔습니다.” 제가 형제 내외를 앉혀 놓고 “형제 우리 기도하기 전에 말씀 좀 나누자”고 예수님 이야기를 했습니다. “형제 만일에 형제하고 자매하고 여기 있는데 내가 건너편에서 말씀을 전하다가 문이 쓱 열리면서 예수님이 들어 오신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형제 가만 있어 내가 형제 곁에 앉고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도록 내가 이 자리를 내드려야 겠지요?” “네. 그렇지요” “그래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한 한시간이나 두시간 동안 말씀을 다 전하시고는 예수님이 어떻게 하시겠는가?” 내가 할 얘기 다 했네. 잘 있게. 하시고 그냥 가시겠는가?” 형제 “ 안 가시지요.” “어떻게 하시겠는가?” “날 고치시지요.” “어떻게 알아?” “예수님의 마음을 아니까요.” 대화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옛날에 교회를 다닐 때, 우리 교회 목사님이 “ 목사님 이렇게 믿으면 천국 갈 수 있습니까? “하고 물으면 목사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냐면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그건 아무도 모른다고. 천국가는 것은 하나님밖에 아무도 모른다고.” “그러냐고.” “예” “그럼 어떻게 믿어야 합니까?” “그러니까 온 마음을 다해서 믿어야 하는거 아니냐고.” 그렇게 배웠습니다.
구원을 받고 난 뒤에 성경을 한부분 한부분 읽다가 보면은 예수님의 마음이 보이고 내 마음에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 드리워지게 되는 거예요. 분명히 내 마음 속에 전에 없었던 마음이 일어나고 전에 없었던 평안이 오고 자주 자주 느끼지만 ‘이 마음은 전에 내겐 없었었어.’ 성경을 볼 때 내 마음이 달라지고 기뻐지고, 내가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예수님의 마음을 받고 그러면서 예수님하고 마음이 가까워지면서 자주자주 예수님과 나하고 한 마음이 된다는 걸 느낄 때가 참 많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내가 주님
앞에 기도를 할 때, 배가 고파 양식을 달라고 기도했는데 한참 기도하다보면 하나님, 꼭 내가 하나님 보좌에 앉은 것처럼 느껴지고 하나님하고 둘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하나님 저 태평양 많은 섬들이 있는데 그 섬들에는 어떤 민족들이 삽니까? 그들은
무얼 먹고 삽니까? 그들은 이 복음을 압니까? 누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겠습니까? 저 북극에는 에스키모들이 많은데 그 에스키모들은 얼음 집에 산다고 합니다. 하나님, 그들은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합니까? 누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겠습니까? 아프리카 정글에서 숲 속에 사는
그 주민들이 이 예수님을 아십니까? 누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겠습니까?
하나님 선교학교를 시작해서 선교사를 보내도록 해 주십시오. 하나님 방송국을 세워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하나님 책을 출판해서 많은 사람들의 손에 들려져 그 책을 읽고 구원을 받도록
해주십시오.’ 그런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기도하고 눈을
떠보면 다시 싸늘하고 추운 마루장 위에 앉아 있는데 너무 나에게 허황된 꿈이었습니다. 지금 쌀이 없어서
연탄이 없어서 이런데 방송국은 무슨 방송국, 선교사는 무슨 선교사, 책은
무슨 책을 출판해. 그런데 내가 할려고 안했는데 한번 두번 그렇게 내가 기도를 하다 보니까 어느날 무슨
생각이 드느냐면 ‘이 기도는 내가 하는게 아니야. 내가 하는게
아니야. 하나님이 하시는거야. 나를 인도하시는 거야.’ 이건 분명히 내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 내 마음을 끌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날 내가 기도하고 눈을 떴을 때, 쌀이 없고 연탄이 없고 춥고
그랬지만 마음 속에 어떤 마음 하나가 탁 생겨지냐면 ‘내가 앞으로 방송국을 세울 수 있겠구나. 전세계에 선교사를 보낼 수 있겠구나. 책을 출판 할 수 있겠구나.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건 내 마음이 아니고 하나님의 마음이 분명해.’
저는 땅을 여러 번 샀습니다. 대구 교회 예배당도 샀고, 대덕 수양관 땅도 사고, 대전 있을 때도 우리 교회 앞에 여러 필지 땅을 샀습니다. 내가 한번도 어떤 욕심을 가지고 땅을 살려고 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땅을 주고 싶으면 땅을 안 사면 안되도록 환경을 끌어 가는 거예요. 예배당을 지을 때도 그랬습니다. 나는 땅을 안 살려고 했는데 난 이 집을 지을려고 안했는데 하나님이 나를 끌어 가시는 구나. 그러면 되겠다. 내가 대구에 갈 때, 김천에 갈 때 , 서울에 갈 때, 내가 할려고 하지 않았고 하나님이 끌어가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나는 아직 안죽었습니다. 하늘 나라 안가봤습니다. 내가 죽으면 하늘나라 갈까요? 지옥 갈까요?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가봐야 알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압니다. 왜? 내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바 되었거늘. 내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바 되었거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린 이 책에서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간음한 여자를 보고 다 돌로 쳐 죽일려고 비난하고 그랬는데 그 여자를 살리려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하신 그 예수님. 내 많은 죄를 보고 예수님도 그렇게 하실 것을 확실히 믿고, 탕자가 돌아 왔을 때 가장 궁금했던게 아버지의 마음인데 아버지가 과연 나에게 어떻게 하실까? 이런 죄를 지은 나쁜 인간을 그 탕자가 저는 나라고 생각을 합니다. 내가 아버지 집에 가면 아버지가 나를 어떻게 하실까? 궁금해 하실 것 같아 하나님이 . 누가복음 15장에 탕자를 대하는 마음을 그대로 기록해 놓았습니다. ‘내가 너 죄지은 때로 이렇게 내가 받을께.’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탕자를 받으신 아버지께서 허물 많은 나도 받으실 줄을 확실하게 믿습니다.
형제한테 얘기했습니다. ‘형제야, 예수님의 마음을 찾아봐라.’ 신명기 22장에서 나귀나 소가 길에 넘어진 것을 보거든 못 본체하지 말고 반드시 도와서 일으키라. 반드시라는 이 단어가 너무 좋은거예요. 나도 넘어질 수 있고 길을 잃을 수 있는데 이 말씀은 양을 위해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소를 위해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인지 확실히 믿습니다. “형제야. 형제. 예수님께서 형제에게 어떻게 하시겠냐.” “고치시지요.” “그래 고쳐. 못본체 하시지 않아. 고치셔.” “예.” “확실히 믿는가.” “믿습니다.” “그래서 그러면 자네 그걸 믿어. 고치는 예수님의 마음과 자네가 하나가 되면 그때부터 예수님이 일을 해.”
오늘도 우리 부부가 있는데 자매가 좀 시험에 들었는데 암에 걸렸는데 아주 중한 암에 걸렸습니다. 자매가 시험에 들어서 교회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그랬는데 형제가 나한테 전화를 했어요. 찾아갔습니다. 자매가 막 우는 거예요. “자매 울지 마세요.” 또 이야기했어요. 신명기 22장 4절에 소나 나귀가 길에 넘어진 것을 보거든 못본체 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형제를 도와서 그것을 일으킬찌니라 . “자매 넘어질 수 있습니다. 자매, 잘못 할 수 있습니다. 이 인간입니다 우리. 돌아 오세요. 자매 괜찮습니다.” 당장 집 팔아 교회 옆으로 이사 올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이야기했습니다. “예수님이 자매에게 어떻게 하겠습니까?” 막 눈물을 흘리면서 그냥 예수님께서 그 자매 너무 사랑해서 고치시겠다는 마음도 들고 못본체 하지 않으시겠다, 반드시 고치시겠다. 내가 막 나오는데 “목사님, 교회에서 봬요. 그동안 시험들어 교회 안나왔었는데 내가 이런 일을 안당했으면 이런 마음 못가졌을거예요.”
여러분 우리 가운데 잘난 사람도 없고 온전한 사람도 없고 깨끗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게 우리 모양입니다. 길을 잃고 넘어지고 정말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길을 져버리고 내 길을 가고 넘어지고 그런 인간들인데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늘 길 잃은 우리를 못본체 아니하시고 넘어진 우리를 못본체 아니하시고 반드시 일으키시리라고 믿습니다. 이런 하나님이 곁에 계셔서 내가 서 있지 안그랬으면 나도 백번 천번 넘어졌을텐데 그때마다 주님 나를 잡으신걸 감사하고 형제 자매 모두를 보시고 일으키시고 계신 하나님이신걸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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