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장 3절입니다.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성경에 신령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요?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 전도를 열심히 하는 사람? 교회에 충성하는 사람? 여러가지 우리가 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가장 신령한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에게 얽매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려고 할 때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육신인데 내 육체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을 싫어하고 부담스러워하고 두려워하고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자유롭게 일을 하실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참 믿음의 사람들은 자기 몸을 온전히 주님께 드려서 자기가 판단하는 것이나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나 자기가 느낀 것 , 자기 경험 전혀 관계치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가는 그런 사람들이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사람일수록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적게 쓰고 육신적인 사람일수록 인간의 방법과 수단을 더 사용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인간이 하는 것이 하나님보다 더 크다고 믿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하나님을 찾지만 자기육신을 믿는 사람들이고 반대로 영적인 사람들은 자기생각과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사람들은 자기에게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를 넘는 사람이지요.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족보에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라 . 그렇게 시작이 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를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서 특히 유대인의 족보에는 여자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데 여기에 여자이름 첫 다말이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다말, 라합, 룻, 그리고 밧세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이렇게 여자들이 등장을 하고 있는데 첫 사람으로 등장하고 있는 다말은 유다의 며느리였습니다. 유다의 장자 엘과 결혼을 했습니다. 다말이 유다의 집에 시집을 와서 보니까 그 집은 굉장한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아브라함의 후손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네 씨로 천하만민에게 복을 얻으리라 약속하신 그 약속이 이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 전해졌고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의 씨라는 것이 전해졌고 그 다음에 야곱이 유다에게 갔는데 다말이 시집와서 보니까 이 집이 너무너무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가 있고 또 다말이 자기가 잘하면은 자기 후손가운데 그리스도의 족보를 잇는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자기가 들어가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말의 마음은 그랬지만 유다 가족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나갔습니다. 그래서 장자 엘이 죽었습니다. 엘이 죽고 오난이 있었는데 이 오난도 하나님의 뜻과 반대방향으로 갔습니다. 죽었습니다. 셋째 셀라가 있는데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셀라가 다말과 동침하면 셀라가 죽을는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셀라를 다말에게 주지를 않았습니다.
이제 다말은 하나님의 귀한 뜻을 따라서 예수그리스도의 족보를 잇는 놀라운 은혜를 입고 그걸 이루고 싶었는데 사단이 남편에게서, 시동생에게서 그 기회를 얻지 못했고 셀라에게서도 기회를 얻지 못해서 다말은 절망적이었습니다. 이에 다말은 깊은 절망속에 빠지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시아버지 유다로 말미암아 씨를 얻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다말은 도저히 인간적인 면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죠. 어떻게 내가 시아버지와 관계를 가져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는 하지만 예수님의 족보를 잇기는 하지만 어떻게 그럴수가 있어 . 난 그건 안돼 그랬고, 시아버지도 자기를 알면 누가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동침할려고 하겠습니까? 그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생각을 하면 너무너무 두려운일이었지요.
다말은 깊이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자기의 체면이나 자기의 자존심, 자기의 주장 다 비우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시아버지와 동침하기로 마음을 작정을 하는거지요. 저는 처음에 다말이 음탕한 여자로 알았습니다. 다시 생각을 해보면 다말이 음탕한 여자라면 뭐할려고 늙은 시아버지와 동침하기를 원했겠어요. 젊은 남자하고 재혼을 해서 그냥 잘 살 수 있는데 다말은 그 모든걸 위하여 자기의 자존심이나 체면이나 욕을 얻어 먹는거나 자기 자신도 용납할 수 없는 그런 경지까지 들어가면서 온전히 자기를 부인하고 시아버지와 동침해서라도 씨를 낳은 귀한 일을 이루고 싶었습니다.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예수그리스도의 족보 처음으로 오른 여자, 다말입니다. 그는 음탕한 여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귀한 예수님이 태어나는 귀한 일을 위하여 다말은 자기 체면이나 자존심, 자기자신 전체를 부인했습니다. 만일 다말이 자기자신을 생각한다면
절대로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는데 자기를 참 부인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겨도 내가 잘되고 내가
영광스러운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누가 좋아 안하겠습니까? 그러나 참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희생하고 자기가 싫어하는 일이라도 하나님 뜻 앞에서 감소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 참된 영적인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여자를 통해서 정말 예수그리스도의 귀한 족보를 잇고 예수그리스도의 태어나서 우리같이 더러운 인간을 구원하는 그 귀한 일을 이루신걸 생각할 때
참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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