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장 40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이 말씀 여러분이 잘 아시는대로 나사로가 죽어서 무덤에서 썩어 냄새가 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마르다, 그리고 많은 유대인들이 나사로의 무덤에 찾아갔는데, 똑같이 그들이 걸어서 베다니에서 나사로의 무덤까지 갔는데, 걸음은 똑같이 걸어갔지만 생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건져내기 위하여 걸어가셨고 다른 사람들은 그냥 예수님이 무덤을 방문하고 둘러보러 온 줄로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생각과 다른 가족들의 생각이 달랐기 때문에 예수님 그 일로 인하여 심령에 통분히 여기셨다는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어 있는데 예수님께서 무덤에 오셔서 “돌을 옮겨 놓으라” 하고 말씀하셨을 때, 마르다가 말했습니다. “주여 죽은지 나흘이 되어 썩어 냄새가 나나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생각하고 마르다의 생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제가 이 성경을 읽으면서 내가 목사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지만 종종 내가 생각하는 생각하고 주님의 생각이 다르다는 걸 참 많이 느낍니다. 때때로 형제자매들이 저에게 상담을 하러 옵니다. “목사님 저에게 이런 어려움이 있습니다.”
“저는 이혼을 해야할 것만 같아요.”
“저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절망적입니다.”
“이건 안 됩니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 내가 옆에서 자세히 사정을 듣고 보면 나도 이해가 가니까
‘정말 이거 안 되겠구나. 어렵겠구나.’
‘자매님 그럴만하네요.’
‘형제님 그럴만하네요.’
내가 그렇게 말을 하고 싶을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은 이천년 전 유대땅에 계실 때 그때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태어난 그 몸 안에서 일을 하셨고 지금 이 시대는 예수님께서 우리 몸 안에서 일하시기 때문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또 다른 성경 말씀에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생각은 그 어떤 형제나 자매가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들으면 ‘아 정말 어렵구나. 참 안되겠다. 절망적이다. 어떻게 해야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돌이켜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은 뭐라고 생각하실까?’ 똑같은 나사로의 무덤에 왔을때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기 위하여 “돌을 옮겨 놓으라” 이야기하고 마르다는 “아 죽은지 나흘이 되어 썩어 냄새가 납니다. 이젠 늦었습니다. 안 됩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내가 목회를 하면서 자주자주 느끼는 것이 난 마르다와 너무 같다는 것이죠. 내 형편을 보고 문제를 보고 어려움을 보고 “아 이건 안됩니다. 이건 절망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안 됩니다.” 그 이야기가 내 속에서 막 올라오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 것이라.” 그럼 내 안에 계신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시겠느냐? 그렇게 생각해보면 제가 내 속에 있는 내 생각에서 나온 결정으로 대답을 해야 하는게 아니라 예수님이 뭐라고 하실까? 그걸 따라서 제가 대답을 해야 하지요. 예수님은
“자매님 그거 아무 문제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시면 그거 뭐가 문제가 됩니까?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정말 전갈에 물려 다죽어가는 학생을 내가 볼 때 막 절망적인데 내 안에 계신 예수님도 그렇게 보실까?
“아니지. 예수님은 그렇게 안 보실 거야.”
“자매님 그거 아무 것도 아닙니다.”
“형제 그거 뭐가 문제가 돼?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시는데!”
이제 우리는 우리 안에 예수님 모시고 있는데 옛날에 유대땅에 계셨던 그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태어난 그 몸 안에서 일을 했고 오늘 예수님은 우리 안에서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 몸을 예수님께 드렸기 때문에 어떤 사실이나 형편을 볼 때 내 판단을 가지고 이야기하려고 하지 말고 예수님께서 어떻게 판단을 하시겠는가 그걸 보는게 중요하지요.
생각해보면 예수님은 전혀 다릅니다. 나사로의 무덤에 갔을 때 마르다의 판단은 “안 됩니다. 죽은지 나흘이 되어 벌써 썩어 냄새가 납니다. 돌을 옮겨 놓으면 냄새 더 나지요. 더 고통스럽습니다. 그만둡시다” 이게 마르다의 판단입니다. 예수님은 “아니다. 돌을 옮겨 놓아라. 나사로야 나와라.” 그런 예수님이 저와 같이 계시는 걸 생각할 때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저는 때때로 신앙상담을 할 때 많은 형제자매들이 저에게 찾아와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그 형제처럼 ‘이건 절망입니다.’ ‘이건 안 됩니다.’ ‘이건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럼 내 안에 계신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실까?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은 절대로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다.’
“아 이거 예수님이 계시는데 예수님이 하시면 뭐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아무 문제 안됩니다. 예수님이 이끄시니까.”
저는 그렇게 여러 번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에게 문제가 됩니다. 그러나 내가 아닌 내 안에 계신 예수님에게는 문제가 안되지요. 풍랑이 쳤을 때 제자들에게 문제지, 예수님께는 문제가 아니었고요, 떡이 모자랐을 때 제자들에게 문제지, 예수님에겐 문제가 아니고, 38년된 병자 자신에게 문제지, 예수님께는 문제가 아니었고, 어떤 일을 당해도 예수님께는 문제가 안 되지요. 난 그 영광스런 예수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내 이름으로 사는게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내 안에 예수님이 일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거지요.
나사렛 예수를 통해 역사하던 그 예수님의 영이 동일하게 오늘 우리를 통해서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나사렛 예수님의 그 몸은 예수님의 마음을 따랐지만 때로 우리는 예수님 말씀이 아닌 내 생각을 따라갈 때가 참 많은데 우리가 예수님 말씀을 받아들여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이 문제는 주님이면 해결합니다.”
그렇습니다. 제게 참 크고 적은 많은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난을 하고 거짓말을 하고 했습니다. 내가 일일이 해명할 수도 없고 남들이 오해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풀이할 수 없는데 예수님이 계셔서 그 문제를 너무너무 아름답게 이끄는 걸 봤습니다.
우리가 지난 두 주간 월드캠프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참 많은 역사를 하시고 많은 학생들이 구원받고 장관님이나 또 외국의 귀빈들이 구원을 받아 변화되는 걸 볼 때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다 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도 우리 앞에 닥친 큰 문제 앞에 내가 내 자신을 바라보면 실망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데 “이건 나는 아니야. 이건 예수님의 일이야. 자 이 일 예수님이 어떻게 하시는가 보자.” 그때마다 소망과 믿음을 가질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예수님 우리 안에 일하고 계심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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