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장 8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 말씀인데도 우리의 자를 가지고 가능한 것인지, 불가능한 것인지 잴 때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왠만한 이야기는 믿어지는데 우리의 자로 볼 때 ‘38년된 병자가 어떻게 걸어가지?’ 38년된 병자가 생각해도 ‘아 내가 이런데 어떻게 걸어가? 내 다리는 다 말랐는데…’ 항상 우리의 경험이나 우리의 지식이나 우리의 자를 가지고 하나님도 우리의 자 안에서만 믿으려고 하니까 문제인데 사실 우리가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는 이 말씀, 너무 좋은 말씀이지요.
예수님이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시지 않고 ‘한번 일어나 볼래? 일어날 수 있을는지 몰라’ 그랬으면 우리 생각하고 가까워서 좀 마음에 와 닿을는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일어나 볼래?” 하는 이야기하고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고 어느 게 더 귀합니까? 비교할 수 없이 귀한 말씀인데도 우린 우리 생각의 세계에서 적당한 한계 안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38년된 병자보고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병자가 ‘아이구 내가 일어나다가 안 되면 어떡하지?’ 안되면 누구 책임입니까?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한 예수님의 책임이지, 우리 책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예수 안에 온 이후에 우리 삶 전부는 주인이 예수님이고 예수님에 의해서 되어지기 때문에 우리가 걱정하거나 염려해야 할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아 내가 다리가 말라서 못 걷는데?’ 예수님이 그것모르고 말씀하셨겠습니까? 다 알고 말씀하셨지요. ‘내가 일어나 걸어가다가 못 걸으면 창피하잖아? 그게 뭐야?’ 여러분 예수님이 그것 책임져야죠.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했으니까. 자리를 들고 걸어가려다가 안되면 예수님 책임이지 병자 책임이 아니라는 거지요.
그런 걸 생각하면 주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우리에게 감사하고 축복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하고 우리 인간의 말의 차이가 그겁니다. 야고보서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 형제가 헐벗고 굶주리고 있는데 평안히 가라, 배부르게 하라, 더웁게 하라 하고 쓸 걸 주지 아니한다면 무슨 말이 되겠느냐?” 말이 안되지요. 그런데 주님이 “평안히 가라” 그랬다면 평안히 갈 수 있도록 해 놓고 말씀하시는 분이고, 주님이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했다면 자리를 들고 걸어갈 수 있도록 다 해놓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이지, 준비도 안 해놓고 그렇게 하라고 하시진 않는다는 거지요. 주님께서 말씀하셨다면 그 뒤에 모든 받침이 다 준비되어 있으니까 그냥 걸어가면 되는 거예요. 뭐 38년된 병자가 약을 많이 먹었거나 연습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말씀이 걸어가라면 걸어가는데 하나님이 역사하는 걸 볼 때 너무 놀랍지요.
오늘 하나님께서 38년된 병자 말고 우리에게도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힘있게 복음을 전하라고 주님이 다 책임지시고 일하신다고 생각할 때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다 할수가 없습니다. 오늘도 그 주님이 우리가운데 행하고 계십니다. 주님이 자리를 들고 걸어갈 수 있도록 해놓고 걸어가라고 하신다는 말씀을 믿으시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