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장 3절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이야기가 너무너무 아름다운 이야기인데 요한복음 8장에서 간음한 여자 이야기가 나올 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뭐라고 말했느냐 하면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평범한 이야기같지만 그 이야기가 간음한 여자의 문제를 예수님께로 넘기는 이야기가 됩니다. “모세는 이렇게 말했는데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선생님의 의견, 예수님의 뜻, 예수님께 넘기는 문제지요. 지금까지 예수님은 그 여자를 위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는데 간음한 여자가 간음을 하고 잡혀 돌에 맞아 죽기 위하여 끌려가다가 그 문제가 예수님의 손에 맡겨지면서 그때부터 예수님에 의하여 그 일이 아름답게 정리가 되고 간음한 여자가 살아서 은혜롭게 집으로 돌아오는 그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늘도 여기 요한복음 2장에서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 집에 포도주가 모자랐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의견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하지? 포도주가 모자라는데? 포도주를 좀 적게 주지… 아이 그래도 안 될 것 같애. 좀 구해올 수 없어? 여기에는 포도주 사는데가 없어. 그래도 좀 준비를 미리 해 놓지 그랬어? 아이 불평한다고 지금 될 일이 아니잖아.’
막막하게 염려만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는 것을 보고하는 순간 포도주가 모자라는 문제가 신랑의 문제도 아니고 신부의 문제도 아니고 또 연회장의 문제도 아니고 더더욱 예수님 어머니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의 문제로 넘어가고 있다는 거지요.
우리가 닥치는 크고 적은 일들은 늘 있을 수 있습니다. 결혼식을 하는데 포도주를 준비했겠지요. 그러나 예상보다 포도주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 많이 마셔서 모자랄 수도 있겠고 또 생각보다 많은 손님이 와서 모자랄 수도 있고 그렇겠지만 이런 일은 항상 우리 주변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정확하게 그 일의 결론이 예수님에게로 넘어가지면 그때부터 예수님이 일을 하시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간음한 여자가 돌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을 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말했습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는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했습니다. 선생님은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그때부터 이 여자의 문제가 예수님께 넘어가고 예수님의 문제가 되니까 인간적인 면으로 볼때는 도저히 살아날 길이 없고 방법이 없는데도 예수님은 그 여자를 살리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한복음 2장의 이야기도 똑같습니다. 포도주가 모자라는데 인간의 방법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포도주에 물을 좀 탈까? 적게 마시게 할까? 어떻게 할까? 더 구해 올까? 사올 수 없어?...’ 그런 여러가지 방법들이 다 지나가고 난 뒤에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께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고 포도주가 모자란 사실을 정확하게 예수 그리스도께 넘어갔고 옮겨졌다는 거지요.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이 문제가 정확하게 예수님께 옮겨진 그때부터 예수님이 일을 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막연하게 그냥 예수님 우리를 도와달라고 기도하고 구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한다고 해서 막연하게 되는게 아니라 우리의 문제가 예수님을 믿고 정확하게 예수님께 넘어가져야 한다는 거지요.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는데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확실하게 그 문제가 예수님 손으로 넘어갔고 포도주가 모자라는 이 문제도 예수님의 손으로 넘어갔습니다.
선지자 엘리사 시대 때 그 여자가 자기 아들이 죽었습니다. 그 여자 아들이 죽었는데 그 아들을 정확하게 선지자 엘리사의 침대에 갖다 눕혔습니다. “이제 내 문제가 아니라 당신의 문제입니다. 당신이 이 문제를 해결하시기 전에는 침대에 주무실 수가 없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됩니다.” 하고 정확하게 그 여자의 죽은 아이 문제가 엘리사에게 넘어갔을 때 엘리사가 그 여자의 아이를 살리는 걸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인간들이기 때문에 포도주가 모자랄 수 있고 이런저런 실수도 할 수 있고 아이가 죽는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내 손에 쥐어져 있느냐? 예수님 손으로 건너갔느냐? 그게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든지 정확하게 예수님 손에 넘어가서 예수님 문제가 된다면 그 때는 어떤 문제도 문제가 안 되고 복되게 될 줄 믿는 것입니다.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예수님 그때부터 일을 하시기 시작했습니다. “항아리에 물을 채워라.” 채우니까 “이젠 떠다 주어라.” 그래서 그 물이 포도주가 되는 귀한 일을 통해서 포도주가 모자라는 문제를 해결하시는 것처럼 주님은 우리의 모자라는 모든 것이 정말 주님의 것이 되었을 때 정확하게 그걸 처리해 주시고 은혜로 복을 베푸시는 걸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 형제 자매들이 당하는 문제가 여러분 손에 있습니까? 예수님의 손으로 넘어갔습니까? 정확하게 예수님의 손으로 옮겨지면 그때부터 예수님이 일을 하시기 시작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