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장 22절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제가 성경을 읽어보면 특히 잠언에 지혜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훤화하는 길 머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 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가로되”
이제 그 지혜와 어리석음, 지혜와 거만함, 지혜와 미련함, 이런 것들이 있는데, 어리석음이 있는데 지혜가 있을 수 없고 지혜가 있는데 어리석을 수 없고, 거만함 가운데서 지혜가 있을 수 없고 지혜 있는 자가 거만해질 수 없다는 거지요. 어리석거나 거만하거나 미련한 것은 지혜가 없는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것이지, 지혜가 있을 땐 도저히 어리석을 수도 없고 지혜가 있으면 절대로 거만할 수도 없고 절대로 미련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타조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타조가 알을 낳고 난 뒤에 그 알을 생각해볼 여유가 없다. 그게 밟힐는지, 터질는지, 누가 잡아 먹을는지, 전혀 그걸 생각하지 않고 그냥 제 알이 아닌 것처럼 두고 달려가 버린다. 타조가 달려갈 때는 말과 그 탄 자를 가볍게 여긴다고 하는 말씀이 있는데, 그렇게 빨리, 바쁘게 달리는 타조인데 지혜가 없기 때문에 자기 알에 대해 생각할 수 없다는 거지요.
우리도 지혜가 없으면 생각할 능력이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생각을 해서 어떤 일을 이루는 게 아니고 마귀가 넣어준 생각에 이끌려서 그냥 따라가다가 멸망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런 우리 삶을 사는데, 지혜는 여전히 길거리에서 우리에게 부르고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고 훤화하는 길 머리에서나 성문 어귀나 성 중에서 계속해서 지혜는 이야기를 하는데, 어느 날 우리가 우리 자신을 믿고 탕자처럼 자기가 다 망해 돼지우리에 가서 밥을 굶고 배가 고파 굶어 죽을 그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그 어리석음이나 거만함이나 미련한 것 말고 다른 생각을 하게 될 때, ‘아 내가 정말 바보였다. 내가 어리석었다. 내가 미련했다. 내가 이렇게 미련할 수가 있나?’ 자기를 생각한다는 거지요.
그래서 그때 지혜가 내 속에 들어오면서 내가 어리석은 데서 벗어나고 거만한 데서 벗어나고 미련한 데서 벗어나서 지혜가 내 속에 들어오면서 나를 깊이 생각하게 하면서 ‘아 내가 나를 믿는 게 정말 바보였구나. 어리석었구나.’ 그러면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세계로 달려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고 난 뒤에 생각을 해보면 나는 구원받기 전에 내가 정말 악하고 추하고 어리석었는데도 나는 내가 잘난 줄 알고 똑똑한 줄 알고 내가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내가 잘난 사람이 아니고 똑똑한 사람이 아니고 괜찮은 사람이 아닌 걸 그냥 내 속에서 잘 난 줄 그냥 믿었지, 그걸 발견할 그런 지혜가 없었는데, 하나님의 지혜가 내 속에 들어오면서 나를 거기서 벗겨주고 은혜를 베푸는 걸 알 수가 있었습니다.
참 감사한 것은 내가 부를 때 너희가 듣기를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쳐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에게 책망을 받지 아니했다고 하면서 그런 우리 인간에게 지혜는 계속해서 길거리에서, 또 광장에서 틈이 있는 대로 우리에게 이야기해서 어느 날 우리가 망하고 실패하고 해서 그 지혜의 말씀이 들어왔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가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면서 이 놀라운 주님을 발견하게 되고 주의 은혜 입을 자로 나가게 되는 거지, 우리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데 주님이 지혜를 줘서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원받고 49년이 지났습니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깨달은 게 아니라 ‘아 그때 예수님의 지혜가 내게 말씀을 하셨구나. 내가 그 예수님의 지혜를 받아서 은혜를 입을 수 있었구나.’ 그걸 깨닫고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지금도 지혜가 없는 사람은 자기가 어리석음 속에 행하고 미련함 속에 거만함 속에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있고 참 지혜로운 자는 그 말씀을 받아 하나님의 지혜 안에 거하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