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희 우선 선교회 홈페이지를 ?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어떤 복음을 가진 분으로부터 말씀을 듣고 구원(거듭남)을 받았습니다.
저는 처음 구원을 받는 다는 것이 내(나의 육신)가 거룩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 나오는 니고데모 처럼...,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육신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 하셨고,(창1:27)사람을 흙으로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다고 하셨습니다(창2:7).
그렇다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다는데 우리 인간에게서 하나님의 형상과 같은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육신 일까요, 아니지요, 그것은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기(생령) 일겁니다.
그렇지만 아담이 범죄하면서 그 생령은 죽은영이 되었지요.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절의 말씀에 분명히 기록 되었으니까요.
분명히 말씀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셨는데 우리는 이렇게 살아있지 않습니까. 만일 그 당시 아담을 죽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태어 날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럼 하나님이 거짓말 쟁이냐? 그럴수는 없지요.
아담이 범죄할때 하나님 말씀대로 우리는 죽었습니다.
실감이 않나지만 우리 눈으로 확인 할수 없지만 우리는 분명히 죽은 영이 되었습니다.
물론 아담이 범죄한 후 육신을 저주 하시고 필경 흙으로 돌아간다고 하셨습니다.(창3:19)
서두에서 말한것 같이 하나님은 우리 육신에게는 관심이 없고 단지 우리안에 하나님 형상을 닮은 영혼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고 그영혼을 구원하시길 원하셨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요6;63)라고 하셨고 "마지막 아담, 살려주는 영"(고전15;45)으로 오셨습니다.
아담이 범죄한후 우리영은 사단(죄)의 소속이 되었고 그 대가로 우리는 지옥을 갈수 밖에 없지요. 우리가 도둑질하고 살인하고 하는 외형적인 범죄 말고 우리영이 사단(죄)에게 소속 되었다는 것으로 말미암아 지옥 갈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계명 잘지키고 선하게 산사람도 지옥 갈수 밖에없지요.
그가 예수그리스도의 영을 받아 드리지 않았다면...,
아담이 하나님앞에 벌거벗은 장면이 두번 나오는데 창세기2장 마지막절에서는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하지 않았지만, 3장10절에는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벌거벗은(허물)것을 문제 삼지 않고 우리의 영혼이 어디에 붙잡혀 있느냐라는 것입니다.
사단에게 붙잡혔던 우리의 죽은 영혼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산영혼으로 다시태어나는 것이 거듭나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고 거듭나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안에 계신 예수그리스도의 영이 나를 정결케 하는 것을 볼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끊어보려고 노력하던 담배도 끊게 하여주시고 술.놀음.등등 전에 내가 즐기던 세상것들을 차츰차츰 제하시고 성경보는것,남에게 복음을 전하는것,등등 주님이 원하시는 모양으로 나를 바꾸어가는 것을 볼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시험들어 교회를 떠나 말씀을 떠났을때 1주일도 못되어 내손에 소주잔이 들려져 있고 입에는 담배를 물고 있는 내모습을 보면서 깜짝놀래는 일도 있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돼지가 ?었다가 다시 구덩이에 누웠고 개가 토하였다가 다시 먹었다"는 것입니다.
개가 토한것을 다시 먹은것 같이 내모습이 형편 없이 변했다고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약속하신 말씀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방청객님은 정말 예수님을 만나셨습니까? 거듭났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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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청객님이 작성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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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전서인가 후서에 돼지가 ?었다가 다시 구덩이에 누웠고
개가 토하였다가 다시 먹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또 마태복음엔가 귀신이 그사람에게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보니 비고
청소되었거늘 친구 일곱과함께 들어와서 살으니 그 형편이 전보다
못하더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근본 나무가 변하지 않으면 좋은 열매를 맺을 수없다고하였고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가지마다 잘라 불에 던진다고 하였습니다.
모르고 짓는죄는 덜맞으려니와 알고 짖는 죄는 더 맞는다고 하였습니다.
일만탈란트를 빚을 탕감받은자가 자기에게 100데나리온 ?진자를 잡았을
때 그를 다시 옥에가두어 호리라도 남김없이 다 갚게 했다는 말씀도
있습니다.
38년된 중풍병자를 고쳐주고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도록 다시 죄를
짖지 말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마태복음에 형제가 죄를 짓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얼마든지 있지요.
작은 죄라도 자백해야 선한양심이 화인맞지 않고 사도 바울처럼
결국은 내속에 선이 없다고 탄식하는 경지에 가지가야 진정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아를 십자가에 못밖혔음을 시인하고 받아 드리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부분적으로 알든 것은 온전한 것이 올때에 폐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는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데 나아가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우지 마시요. 문제는 끝까지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문제는 계속해서 게재될 것이고 또
게시판을 열어놓는 명분도 없어 지는 것입니다.
대원군의 쇄국정책처럼 페쇄되면 발전과 성장은 없는 것입니다.
근본 성품이 변하지 않은자들이 천국에 갈 수있다면 그것은 천국이
아닙니다.
악한 자들이 사는 이세상과 다를바가 없지요.
선다싱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떤 정신병자가 살인을 해서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그 아버지가 왕에게
정신병 때문이라고 탄원을 하여 사면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정신병이 도져서 죽었습니다`
우리가 죄사함을 받아도 새로운 생명으로 새로운 성품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결국 그 죄의병(정신병)으로 인해서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말씀과 비유는 성경에 얼마든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산의 정상에 올라가면 모든 줄기와 모든 골짜기가 보입니다.
그러나 정상에 오르기 전에는 자신이 있는 위치에서만 보이게됩니다.
지금의 상태에서 왈가 왈부 해보아도 스스로 그곳에 올라 보기 전에는
모든 부분을 볼수가 없어요.
편파적인 이론을 전개할 뿐이지요.
계속 말씀을 먹고 묵상하여 자라 가서 장성한 자가 되면 단단한 것도
분별하고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젖이나 먹는 자들에게는 풀릴수 없는 의문들 이지요.
자라면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알게 될 문제들을 가지고 다퉈봐야
의문만 더욱 깊어지고 피차 감정적으로나가 상처만 입게 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