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집에 가면 티브이를 시청한다.
영어공부한다고 디스커버리 채널을 보는데,
어제 곡물, 씨리얼에 관한 내용을 잠깐 보았다.
고대로부터 산다는 것은 곡물 전쟁이었다 한다.
곡물이 있어야 살 수 있었다는 얘기다.
틀림없는 얘기다.
육식을 하다 채식을 하고, 다시 농경을 시작하게 되었고.
곡물을 그대로 먹었는데,
먹기가 불편했고 나중에는 갈아 먹게 되고.
그러다 물에 불려 먹기도 했는데,
이 때 발아한 낱알에서 단 맛이 나는 것을 발견하여 오트밀이 생겼다 한다.
결국 그 단맛이 맥주를 만들어 냈다 한다.
곡물은 보관이 관건인데 나중에는 신전이 보관창고였으며
그 신전에서는 담보를 잡고 곡물을 나누어 주었다 한다.
원시적인 형태의 은행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로마와 카르타고는 시실리의 넓은 농경지를 놓고 150년 동안 전쟁을 했다 한다.
한 그릇 곡물죽으로 끼니를 떼운 로마군이 결국 전쟁을 이겼다.
종자를 보관하는 내용의 자막을 보면서
오늘날 나라간 치열한 전쟁 중 하나인 종자전쟁이 떠올랐다.
영적인 의미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종자를 보관하려면 영하 18도시를 유지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 종자는 증식용 종자이며 분양용 종자는 4도시를 유지해야 한단다.
말씀이 씨다.
마태복음 13장의 씨뿌리는 비유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말씀이 종자다.
문제는 영구한 보존과 보전이다.
씨 즉, 종자가 상하면 안된다.
다음 해 쓸 종자도 마찬가지요
멸종위기종이든 외래종이든. 분양종이든 증식용이든 변함없는 보존이 커다란 관건이다.
상온에서의 온전한 보관은 사실상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온도유지를 위해 얼음동굴을 파서 그 속에 보관하기도 하고
핵폭발의 충격도 견딜 콘크리트 동굴을 지어 보관하기도 한단다.
우리 마음에서도 마찬가지다.
말씀이 변질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튼튼한 창고를 지어야 하고
온도를 유지할 창고를 지어야 한다.
교회가 또 그렇다.
말씀이 상하지 않는 4도시나 영하 18도시를 유지할 수 있는 교회!
북극 스발바르 섬의 천연동굴 국제 저장고와 같은 교회!
우리 마음이 그러해야 하겠지만
한계가 있기에 교회에 기대를 건다.
말씀이 모조리 부패한 교회들이 너무 많다.
온도유지가 안되기 때문이다.
아니 온도유지가 무엇인지 조차 모른다.
신자들의 마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말씀이 말씀 그대로 보존되질 못한다.
온도가 안 맞고 조건이 안맞기 때문이다.
자기 마음따라, 형편따라 말씀을 믿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 복음이 온전히 보존되서
손자들 세대에서도 구원의 역사가 여전히 일어나기를 바라시는
종의 음성을 떠올려본다.
영하 18도시를 유지하고 있는 노르웨이 스발바르 천연동굴과 같은 교회가 있어 참 감사하다.
그 안에 있어 말씀이 상하지 않고 보존되고 있으니 또한 감사하다.
내 마음을 상하지 않도록 늘 적정온도로 유지시켜 주시는 교회와 종의 은혜가 또한 감사하다.
종자 전쟁이다.
말씀 전쟁이라는 말이다.
지금까지 이기게 하신 주께서
앞으로의 이 전쟁에서도 넉넉히 이기게 하시리라 기대한다.